봄꽃과의 약속을 지켜요
6시도 안 되었는데 벌써 해가 저물고, 꽤 쌀쌀해진 날씨에 옷을 꽁꽁 싸매는 순간부터 나는 비시즌에 들어간다.
직장에 다닐 때는 똑같은 6시 퇴근인데도 해가 빨리 저무는 겨울은 꼭 야근을 한 것 같아 심술이 나기도 했다. 오늘 뭐 했냐는 지인들의 물음에 “오늘 하루 종일 침대가 되었어.”라고 답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따뜻한 장판 속에서 하루 종일 누워있어도 전혀 무료하지 않은 날들을 보내며 나의 비시즌을 보낸다.
집순이이기 때문에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크게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비시즌일 때는 더더욱 이불속 동굴로 들어간다. 충분한 휴식을 보내고, 다가오는 봄날에는 또 열심히 돌아다니며 에너지를 쏟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쉬어간다.
며칠 전 따뜻해졌다는 소식에 밖을 나와 카페를 가던 중 활짝 핀 매화를 발견했다. 이미 입춘이 한 달이나 지났지만, 봄이 되었음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살랑거리는 매화에 정말 ‘봄이 왔구나’를 깨달았다. 꽃샘추위도 잠시, 어느덧 포근해진 날씨가 자꾸만 밖으로 나와 보라며 나를 끌어당긴다.
그렇게 나의 비시즌이 끝나고, 시즌이 되었다.
좋아하는 꽃을 마음껏 볼 수 있고, 꽃이 지면 푸릇푸릇한 초록잎들이 여름의 뜨거움을 싱그럽게 만들어준다.
5시, 5시 30분에 저물던 해는 점점 길어져 6시 30분, 7시 30분에 지게 되고, 해가 떠있는 시간만큼 나의 활동도 길어진다.
계절 영향,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따뜻해진 봄날이 반갑다. 답답하고, 우울한 날들이 이어져 오다가 따스한 햇살이 나를 감싸는 순간 이 순간을 위해 추운 겨울을 버텨왔나 싶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계절은 약속을 어기지 않아.”
벚꽃 잎이 떨어지는 날, 눈꽃처럼 아름다운 모습도 잠시. 곧이어 아쉬움이 몰려오지만, “다음에 또 만나자”며 내년을 기약한다. 내년에는 더 오래 내 눈에 담겠노라고. 더 자주 예뻐하며, 이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겠노라고 다짐하며 작별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날이 다시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꽃들을 선물하며, ‘잘 지냈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 지켰지?’라며 인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