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 제주 포도뮤지엄과 빛의벙커

너와 내가 만든세상 제주전, 케테 콜비츠 전(~22.05.23)

by pig satisfied

1. 포도뮤지엄

포도뮤지엄은 작년 4월에 개관한 따끈따끈한 박물관이다. 요즘 신혼여행지로 핫한 제주도 포도호텔과 이름이 같아 찾아보니 역시나 SK 자회사인 휘찬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었다. 제주도에 같이 오게 된 친구가 알려줘서 담아둔 장소였는데, 방주교회 건축물 구경갔다 멀지 않아 들리게 됐다. 지금 하고 있는 전시는 포도뮤지엄 개관전인 <너와 내가 만든 세상_제주전>과 독일 작가인 <케테 콜비츠 전>이 전시중이다.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은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였던 전시인데, 주제를 표현하는 아이디어들이 정말 탁월하다고 느꼈다. 혐오와 차별을 주제로 하는 <너와 내가 만든 세상_제주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 차별, 적대, 편견을 폭로하고, 이러한 혐오가 얼마나 왜곡된 생각에서 기인하고,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보여준다. 인상 깊었던(+그나마 사진을 찍어 놓은) 작품들을 후기를 남겨본다.

포도뮤지엄 입구(왼), <너와 내가 만든 세상_제주전> 포스터(오) 출처: https://www.podomuseum.com/ex1#lg=img_lg&slide=0

<Us and Them(우리와 그들)> 전시장에 들어가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작품이다. 영국 밴드 Pink Floyd의 Us and Them의 노래를 배경으로 하는 설치미술 작품이다. 노래 덕에 마치 콘서트에 온 것처럼 전시가 시작된다. 이 작품에서는 새빨간 앵무새들이 서로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끝없이 줄지어 있다. 이 앵무새들은 남의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게 소문을 옮기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연예인 가십을 소비하는 사람들, 학교/직장 내 동료에 대한 뒷담화하는 사람들, 배달 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그들을 비방하는 하는 사람들, 조선족이나 이민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를 신나게 맞이했던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우리와 그들을 구분짓고 서로를 전쟁으로 이끄는 편견과 선동, 혐오를 비판한다. 전쟁까지는 너무 거창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도 있지만, 혐오와 적대로 가득한 전쟁 또한 수많은 앵무새들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한마리의 앵무새였던 적을 없었을까..

<us and them>앞에서 나(왼), <소문의 벽>을 관람중인 베프(오)

<소문의 벽>

소문의 벽에는 구멍들이 나 있는데, 구멍을 들여다 보면 우리 흔히 접하는 루머부터 언론에까지 퍼졌던 가짜뉴스들이 들어있다. 많은 이들이 성별, 문화, 종교, 인종, 신념, 성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집단이 되고, 이들을 둘러싼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혐오가 만연하게 되는 우리 사회를 정말 잘 표현했다. 대게 이들은 위험하고, 비위생적이고,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취급받는다. 단지 그가 여자란 이유로, 그가 이슬람을 믿는단 이유로, 그가 중국인이란 이유로.. 소문의 벽에 가면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배경으로 나오는데, 구멍 속 내용들과 버무려져, 혐오와 편견이 퍼지는 과정이 리얼하게 느껴졌다.

소문의 벽에서 코로나 시대 만연했던 중국인 혐오, 크게는 아시아인데 대한 혐오가 많이 생각이 났다. 지금은 모두가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칭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초기, 코로나가 우한에서 발견됐다는 이유만으로 ‘우한폐렴’이라고 뉴스에서 보도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명명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우한 폐렴이라 불렀다. 설사 코로나가 우한에서 발발했다고 해도 질병명은 인종차별로 이어질 수 있기에 언론에서 ‘우한폐렴’이라고 명명했어서는 안됐다.실제로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생활이 불편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증오의 화살은 중국인에게 쏠렸고, 머지않아 전 세계적인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번졌다.


뉴스에서 ‘우한폐렴’이란 말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안 그래도 중국인 혐오가 만연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우한폐렴이란 명명은 불난 집에 부채질 한 것과 같았다. 사적 모임에서 만난 주변인들조차 중국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서슴치 않고 했다. 그들은 좋았겠는가. 1918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더 유명한 인플루엔자 독감유행이 떠올랐다. 사실 스페인 독감의 발원지는 미국 캔자스였다. 캔자스 지방은 돼지 등의 가축들과 사람들이 밀접하게 접촉하며 생활하는 곳으로, 당시 캔자스에서 유행한 인플루엔자 독감은 지역민 간 잠시 유행이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문제는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전세계 국가들의 청년들은 징집되었고, 국가 간 군대 이동이 많은 시기였다. 캔자스 지역에서 바이러스를 보유한 청년들이 군대에 입대하고 이동하면서 인플루엔자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요즘 코로나 팬데믹이 엄청난 규모라고 하지만 당시 인플루엔자 독감에 비하면 애송이라고 한다. 인플루엔자 독감 감염자는 당시 5억명, 사망자는 1억명에 달한다고 하니 얼마나 심한 전염병이 었는지 상상이 안 간다. 사실 당시 독감은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이런 비극을 낳았다. 그런데 이 인플루엔자 독감이 캔자스 독감이 아닌 스페인 독감으로 불린 이유는 전쟁 중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이 언론통제가 없었기에 다른 국가에 비해 감염병에 대해 자유롭게 보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에 참여중인 국가들은 강력한 언론통제를 하면서 독감에 대한 보도 또한 하지 않았는데, 그 결과 스페인이 인플루엔자 독감 진원지인 것처럼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오해는 당시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로 이어졌고, 훗날 스페인이 아닌 미국에서 발생한 팬데믹이라고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독감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코로나는 우한 폐렴으로 기억하듯이. 한술 더 떠 정치인들은 코로나 팬데믹의 책임을 묻는다며 선동적이고 차별적인 발언들을 서슴치 않는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차별과 혐오가 자리 잡는줄도 모르고.(아니면 그들은 차별과 혐오가 자리잡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로스트 #13, 2020 (쿠와쿠보 료타)

이 작품은 특별히 암실에 들어가서 감상한다. 조용한 암실 속에 들어가면 주변의 일상적인 용품들이 조명 달린 기차를 통해 큰 그림자로 벽면에 나타난다. 장난감, 클립, 주전자, 집게 등등.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물건들을 왜곡된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는데, 해석은 개인의 자유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일상에서 우리가 접하는 사실이라는 것들이 실제 모습과는 다르게 왜곡된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포도뮤지엄에서는 두 개의 전시가 진행중인데, 두번째 전시는 케테 콜비츠 전이다. 케테 콜비츠는 독일의 여성 작가로 그녀의 작품은 전쟁, 죽음, 모성에 대해 다룬다. 콜비츠는 가난한 동네에서 살아가며 노동자와 하층민의 현실을 화폭에 담았다. 한국의 박수근 작가가 떠올랐다. 차이가 있다면, 박수근 작품이 전후 한국 사회의 서민들의 애환을 작품 속에 따듯하게 그려냈다면, 콜비츠 작품은 하층민의 아픔을 더욱 극대화 시켜 그들의 아픔과 현실을 고발한다. 소외계층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1,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슬픔과 부조리로 옮겨간다. 그녀는 전쟁으로 아들과 손자를 모두 잃는 슬픔을 겪는다. 작품에는 자식을 잃은 슬픔과 전쟁에 대한 분노,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증오 등이 담겨 있다. 주제가 어둡다보니 작품을 보는 게 버겁고 마음이 무거웠다. 한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많이 생각나는 전시다. 작가가 힘든 기억과 슬픔을 작품으로 옮긴 데에는 더 이상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불필요하다는 걸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독일 작가 케테 콜비츠의 사진



2. 빛의 벙커 <지중해로의 여행: 모네, 르누아르, 샤갈> <Paul Klee_음악을 그리다> (2021.04.23~2022.09.12)

성인이 된 이후로는 제주도에 여행을 오지 않아 그 유명한 빛의 벙커를 처음 가 봤다. SNS에서 빛의 벙커 게시물을 보면서도 화면 속 그림이 원화보다 멋지면 얼마나 멋지겠냐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좋았다. 이것만 보러 제주도를 올만하다는 생각을 할만큼 눈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빛의 벙커는 원래 국가기간 통신시설로 사용되던 비밀벙커였다. 900평 면적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오름 안에 건설하고, 위에 흙과 나무로 덮어 오름처럼 보이도록 지었다. 이후 사용을 다해 버려져 있던 벙커는 개조되어 현재 제주도 문화예술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방어의 목적으로 지어진 벙커는 벙커 특성 상 미디어아트 전시공간으로 최적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넓고 깊은 공간감은 물론이고 자연 공기 순환 덕에 늘 쾌적한 온도가 유지될 뿐더라 외부로부터의 빛과 소음이 완전 차단되어 관람에 몰입감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폐건물을 이렇게 멋지게 활용할 수 있다니.. 옛 비밀벙커에서 이런 미디어아트를 즐긴다는 것 자체가 관람객들에게 묘한 쾌감을 주는 것 같다.

빛의 벙커 입구에 마련된 포토존. 벙커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다.

올해 9월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인상주의에서 모더니즘에 이르는 작가들의 지중해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끌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시냑, 앙드래 드랭, 라울 뒤피, 마르크 샤갈 등 약 20명에 달하는 작가들의 명화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은 지중해로의 여정이 약 35분, 파울 클레 작품이 약 10분으로 총 45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넋 놓고 화면 속에 빠지다 보면 금새 2-3시간이 지나간다. 전시장 중앙에 가장 넓은 대형 스크린 앞에 앉아 한참을 관람하다 온 것 같다. 명화 미디어아트를 처음 접한 나로써는 정말 신선했고, 넋이 빠진듯이 봤다. 작품 내내 같이 나오는 음악도 몰입에 한 몫 하는 것 같다. 작품들은 굉장히 대중에게 익숙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항상 고정된 모습으로만 보던 작품들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을 활용해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는 찰나들이 정말 자연스러웠다. 영화 러빙빈센트의 전시버전이랄까. 빛의 벙커의 첫 전시는 모네, 두번째 전시는 고흐였다는데 얼마나 멋있었을지.. 놓친 게 굉장히 아쉽게 느껴졌다.ㅎㅎ 매년 빛의 벙커 전시를 보기 위해서라도 제주도에 오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네의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왼), 르누아르의 <풀밭 위의 점심>(가운데), 글쓴이(오)
라울 뒤피(왼), 마르크 샤갈 <에펠탑의 신랑 신부>
폴 시냑의 <콘카뉴에서의 요트 경주>
라울 뒤피 <카우즈 해안의 보트 경주>

[여담]

제주도 빛의 벙커를 간다하니 친구가 아르떼 뮤지엄을 추천해줬다. 최근 새로 생긴 핫한 미디어아트 박물관이라며 추천해줬다. 인터넷 서칭을 해보니 아르떼는 명화위주는 아니고, 착시효과를 이용한 미디어아트에 가까웠다. 아르떼는 동선도 안 맞고, 빛의 벙커가 더 끌려 빛의 벙커만 갔다. 그리고 얼마 후 여수여행을 갔는데, 여수 엑스포에 아르떼가 생겨 방문하게 되었다. 물론 여수 아르떼는 제주 아르떼와는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르떼보다는 빛의 벙커가 훨씬 좋았다. 아르떼의 경우 빛의 벙커에 비해 규모도 더 크고 섹션도 좀 더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착시효과를 이용한 미디어 아트가 주를 이뤘다. 나는 조금 산만하고, 큰 흥미를 느끼진 못한(?) 그런 전시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미디어아트 자체에 끌렸다기 보다는 고전의 새로운 재해석에 끌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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