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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Feb 20. 2023

자존감(상), 내 마음의 기둥

오늘은 자존감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 한다. 자존감이란 무엇일까?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평가이다.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며 자아존중감이다.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존중하는 능력이야. 자존감은 ‘나를 세우는 기둥’이다고 할 수 있어. 그 기둥 위에 ‘나의 마음’이라는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지. 인생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튼튼한 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튼튼한 기둥 위에 집을 지어야 온갖 인생의 태풍이 불어도 잘 견디며 내 삶을 지킬 수 있단다.


자존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자존감이 가장 충만한 때이고, 가장 불행한 때에는 자존감이 가장 낮았을 때이기 때문이야. 한 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가장 행복할 때는 하는 일마다 잘되어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 자존감이 충만할 때이다. 반대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이 드는 때는 자신감이 떨어져 땅바닥에 굴러 다닐 때이며 나를 사랑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 같은 외로움이 들어 자존감이 붕괴될 때일 것이다. 이렇듯 지금의 내 자존감의 척도가 나의 행복으로 바로 이어진다. 


요즘 자존감에 대한 이슈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그 이유는 그만큼 자존감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겠지.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항상 타인과 비교되는 환경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어. 사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비교당하면서 살게 되지. 매스 미디어와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비교의 대상이 한정되었어. 예전에도 서로 비교하며 살았겠지만 그 대상은 마을 주민이 전부였다. 옛날에 어떤 마을에 갑돌이가 가장 잘 생겼다면 외모는 갑돌이와만 비교하면 되었다. 그런 갑돌이를 보며 ‘나는 갑돌이보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키는 내가 더 크지’라며 스스로 위안을 얻을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발달된 네트워크 기술 때문에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미남들과 비교되니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미남들은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돈도 많다) 어쩌다 기적같이 모든 걸 갖춘 사람이 간혹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매일 그런 기적과 비교당하면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항시 비교가 가능한 이런 환경이 자존감에 악영향을 미친다. 비교는 세상에서 가장 쉽게 불행해지는 방법이야. 끊임없는 비교는 열등감을 조장하고 그 열등감은 자괴감으로 연결되지. 그 자괴감이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그렇게 우묵해진 기둥 위에 지어진 집은 점점 위태로워지기 마련이다. 마음의 집이 무너지면 내 인생도 무너진다. 자존감은 내가 지켜야 할 내 인생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어. 상어가 가라 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헤엄을 쳐야 하듯 나의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를 소개해 볼게. 비영리 기부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브래드는 유일했던 직원이 그만두자 지나온 삶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 직원이 그만두면서 했던 말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제가 성공해서 기부를 많이 하는 것이 사회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자신이 멋진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직원이 남긴 한 마디에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자신의 대학 동창들을 생각해 보니 그 직원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닉은 할리우드 거물 감독이 되어 화려한 삶을 살고 있다. 제이슨은 헤지펀드사 대표이고 집이 세 채나 있고 기부도 많이 한다. 빌리는 마흔에 IT회사를 팔아서 섬에서 화려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다. 크레이그 피셔는 백안관에서 일하다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화려한 셀럽의 삶을 살고 있다. 그의 대학 친구들은 모두 잘 나가고 있는데 비해 나만 시골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이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진다. 브래드는 아들 트로이가 진학할 대학 캠퍼스 투어를 위해 보스턴으로 떠난다. 공항에서 아들을 위해 좌석 업그레이드를 하려 하지만 카드 잔액이 부족하자 또다시 자괴감에 빠진다. 항상 일등석만 타거나 전용기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모든 게 가능한 그들만의 세상, 늘 귀하고 특별하고 우월한 그들의 인생. 그들에게 세상은 전쟁터가 아니라 놀이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아들과 저녁을 먹던 중에 아들이 하버드에 지원 자격이 있음을 알고 매우 놀란다. 계속 자괴감에 빠져 있던 그는 아들의 성공을 상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지난 17년 동안 루저로 산 것이 아니라 아들을 훌륭하게 잘 키웠다며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곧 아들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동일시하는 자신이 한심해진다. 나중에 아들이 성공해서 자신을 무시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또 괴로워진다. 하버드를 다니고 있는 아들의 고등학교 친구 아난야와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그때 아난야가 예전에 수업을 받았던 크레이그 피셔를 험담하자 묘한 쾌감을 느낀다. 브래드는 이상주의적인 꿈을 가지고 있는 아난야에게 성공한 친구들의 성공한 모습과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비교하며 돈이나 많이 벌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지만 아난야는 브래드에게 실망한다. 아난야는 나이 50살이 되어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어 하는 브래드에게 충고한다. 브래드에게 쓸데없는 경쟁은 하지 말고 이미 잘하고 있고 충분히 많이 가졌음을 알려준다. 


브래드는 아들 트로이에게 때때로 사람들이 자기를 실패자로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트로이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 생각해서 아빠가 실패자인지 아닌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트로이는 자기 의견만이 중요한 것이라며 아버지 브래드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브래드는 트로이의 말에 감동하며 고마움을 느낀다.


타인과 비교하는 삶이 어떻게 자존감을 무너뜨리는지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어. 브래드는 자신이 이룬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한 채 끝없는 타인과의 비교로 인해 자신을 끝없는 구렁텅이로 몰고 있었다. SNS의 발달로 보여주기 식의 행복이 범람하는 우리 시대의 시대상을 대변해주고 있어. 찰리 채플린이 이런 말을 남겼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SNS 사진 한 장만 보면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브래드의 불면으로 시작되고 역시 브래드의 불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는 끝이 나지만 브래드의 불면도, 우리들의 불면도 같이 끝나기를 기원해 본다.  


튼실한 자존감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인생은 간혹 기차여행에 비유되지. 승객이 기관사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듯이 내가 내 마음을 믿어야 즐거운 인생 여행을 할 수 있어. 일단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내 인생의 기관사는 바로 나이니까. 앞서 자존감을 기둥에 비유했다. 내 자존감이 없으면 타인에게 기둥을 빌려와야 한다. 타인의 기둥이란 무엇일까? 그건 타인의 인정이야. 그래서 자존감이 낮으면 항상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게 되지. 구멍 난 자존감을 명품 같은 과소비로 메꾸려 한다. 


니체는 “모든 문제는 해석의 문제이다”라고 말했어. 나를 믿지 못하면 타인의 생각을 따를 수밖에 없으며 타인의 해석에 구속되기 마련이야. 나의 괴로움은 누군가의 해석된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외모에 대한 열등감은 어디까지나 타인과의 비교와 주관적 해석으로 인해 만들어진 감정이야. 비교되는 타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얼굴이 못 생겼다는 이유로 고민하지 않아.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은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나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타인의 주관적 해석과 나의 나약한 수용력에서 비롯되는 법이니까. 타인의 평가에만 신경을 쓴다면 결국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된다. 내 마음의 기둥을 타인에게 빼앗기면 남의 집에 살 수밖에 없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인도 정벌을 가는 도중에 디오게네스를 방문하였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자신의 집이자 휴식처인 나무 항아리 앞에 누어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 초라한 나무 항아리 앞에서 세상에서 모든 걸 자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알렉산더가 디오게네스에게 말한다. “소원을 말해 보시오. 내가 그 소원을 들어주겠소.” 그때 디오게네스가 말한다. “조금만 옆으로 비켜 주십시오. 당신이 햇빛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디오게네스가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상대는 현존하는 최고의 권력자였고 잘못 말했다가는 목이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디오게네스가 그렇게 당당했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그의 높은 자존감 때문일 것이다. 디오게네스의 정신에는 타인의 권위와 해석 따윈 존재하지 않았어. 알렉산드로스는 세상을 정벌하였지만 디오게네스의 자존감까지는 정복하지는 못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 “내가 만일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난 저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불안’ 편에 이야기했었던 에틱테토스의 말을 다시 인용해 볼게. “우리의 의지를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결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고 그것은 우리의 의지를 넘어선 것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자존감도 마찬가지로 타인의 생각과 해석은 나의 의지를 벗어난 일이야. (타인의 생각에 간섭하는 것을 우리는 ‘폭력’이라 부른다) 누가 나의 외모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그건 타인의 영역이므로 나의 의지를 벗어난 일이지. 나의 의지를 벗어난 영역에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이 내 자존감을 지키는 법이야. 세상에서 절대 바꿀 수 없는 일들 중 하나가 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야. 누군가 나에게 못생겼다고 말한다고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그래, 그건 네 생각일 뿐이니까. 너의 생각은 너의 영역이니 내가 상관할바는 아니지.” 타인의 생각을 내가 업고 갈 필요는 없어.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두면 된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경계가 있듯이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경계가 필요해. 나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에는 시니컬해질 필요가 있다. 마치 디오게네스처럼 말이야.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드로스를 만났을 때 속으로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그래, 너 겁나 잘 나가는 왕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사람들은 주변 사람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출근을 하거나 외출을 할 때 무엇을 입을지, 화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신경을 많이 쓰지.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기우일 뿐이야. 우리는 어제 아침에 길을 가다 지나쳤던 사람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네 엄마가 항상 입을 옷이 없다고 말할 때 아빠는 이렇게 말했었지. “여보, 그 옷 아무도 보지 않는다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하게 되면 사람들이 나의 실수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험담할 거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이 역시 반대로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어. 내가 한 달 전 누군가의 실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험담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치 메뚜기 떼와 같아서 금세 다른 험담거리를 찾아 떠나간다.  


자존감을 지키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몰입’이야. 몰입에 빠지면 타인의 생각 따위 생각할 틈이 없지. 몰입은 나 자신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일이어서 타인에게 에너지를 뺏기지 않으니까. 몰입의 과정을 거치면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상처받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남기기 때문이야. 자존감은 나 자신에 대한 만족감에 대한 표현이다. 그래서 타인의 평가보다 자신에 대한 평가에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자는 말했다. “마음이 우울하다면 과거를 사는 것이고 마음이 불안하다면 미래에 사는 것이며 마음이 평온하다면 현재에 사는 것이다.” 자존감에 비유한다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현재에 살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과거나 미래에 사는 것이야. 몰입은 나를 항상 현재에 살게 해 준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고 말했어. 인생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야.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 존중한다면 자존감은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해.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 여러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뒤로 미루거나 타인에게 결정을 맡겨버리는 선택 장애를 ‘햄릿증후군’이라고 해. 햄릿은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제목이다. 덴마크 왕자 햄릿은 아버지를 죽인 숙부 클로디우스에게 복수를 결심하지만 이를 실행하지 못하고 갈등과 고민만 거듭한다. 그 갈등의 과정에서 나온 햄릿의 대사가 그 유명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이다. 자신의 갈등에 대해 결정을 미룬 햄릿은 결국 자신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오필리아 등 자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죽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완벽한 선택이란 없어. 남이 내려준 결정은 편하고 책임감도 적다. 하지만 결정이 나의 존재감을 좌우한다. 결정을 못하거나 미루면 이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이어지게 마련이야. ‘나는 왜 이럴까?’ 이런 질문들이 누적되면 역시 나의 자존감이 건강할 수가 없지. 의사결정의 크기가 그 사람의 크기라고 할 수 있어. 조직의 리더가 되려면 의사결정을 잘해야 한다. 리더의 덕목은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지. 자신의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자존감이 튼튼한 사람은 자신의 결정에 만족한다. 앞서 말했지만 그들은 몰입에 충실한 과정에 만족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엄마 아빠는 가능한 한 네 일은 네 스스로 결정하게 했다. (네가 공부하기 싫다고 해서 공부도 별로 안 시켰다) 


이성과 감정의 조화가 좋은 결정을 하게 한다. 이는 어릴 적부터 연습이 필요해. 이성과 감정의 조화는 결국 전두엽과 변연계의 조화이다. 예술 활동이 전두엽과 변연계의 조화에 도움을 준다. 예술은 감정을 이성적으로 표현하는 활동이니까.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는 것도 수많은 결정의 연속이야. 무엇을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 어떤 물감을 써야 할지, 어떤 색깔을 그려야 할지 수많은 계산, 선택, 결정의 과정을 거친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정짓는 능력을 연습할 수 있어. 엄마, 아빠도 이런 의미로 너에게 어릴 적부터 미술, 음악 등을 가르쳤다. (너는 심지어 전국 꽃꽂이 대회에 최연소로 참가했었다)


내 선택의 결과가 나쁠 수도 있어.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모든 일이 성공할 수 없다. (인생과 엔트로피에 대해서 다음 기회에 다시 다루겠다) 성공이란 실패를 딛고 올라가는 법이다.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영화 <밀정>에서 나온 대사야. 실패를 딛고 올라서는 힘도 결국 자존감에서 나온다.


자존감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겠다고 결심하는 거야. 트라우마 안정화 기법으로 '나비포옹법'이 있어. 나비포옹법은 두려움과 불안이 느껴질 때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방법은 먼저 양손을 나비 모양으로 교차한다. 양손을 교차하여 가슴 위에 올려놓는다. 눈을 감고 호흡을 천천히 깊게 한다. 호흡과 함께 양손 바닥으로 번갈아 다독인다. 나비포옹법은 자존감에 상처 입었을 때에도 효과가 좋다. 나 스스로를 토닥이며 긍정의 만트라를 외워보자. 나 자신에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다른 사람도 다그래, 넌 최선을 다했어, 넌 충분히 멋진 놈이야. 사랑한다.” 이런 말들을 내 마음에 뿌리면 심연으로 가라앉아 내 무의식에게 영양을 공급한다. 그리고 나의 자존감을 서서히 회복시키고 성장하게 하지.


빅터 프랭클린의 ‘죽음의 수용소’를 읽어 보면, 끔찍한 수용소 안에서도 양치 잘하고 옷차림이 깨끗한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다고 해. 자신에게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킨 사람들이 지옥 같은 수용소 생활을 버텨낸 것이지. 어떤 재난이나 고통을 겪더라도 마음의 집이 무너지지 않은 사람이 반드시 승리하는 법이다. 그 튼튼한 마음의 집은 자존감이라는 기둥 위에 지어진다.


오늘은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했어. 하지만 자존감도 불안과 마찬가지로 나 혼자 잘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야.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환경이 우리들의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음 편에 사회와 나의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 


아빠는 낮은 자존감 때문에 오랜 시간을 심적으로 고생하며 살았다. 인생의 눈보라가 몰아 치면 마음의 집이 금세 무너져 눈보라를 그대로 맞으며 항상 벌벌 떨었었다. 그 아픔을 알기에 너에게만은 튼튼한 자존감을 세워 주려 했는데 아빠 뜻대로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구나.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주춧돌 하나 정도 세워주는 것이야. 나머지 기둥을 세우는 일은 너의 몫이다. 아무쪼록 튼튼한 자존감을 세워 그 위에 너의 마음, 너의 인생을 멋지게 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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