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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Feb 05. 2023

불안, 걱정의 심연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법 (중)

오늘은 먼저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를 소개해 보겠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시에서 풀은 원래 민중을 뜻해. ‘민초’라는 단어가 있어. 백성의 질긴 생명력을 지닌 잡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지. 여기에서 풀은 민중들의 생명력을 뜻한다. 풀의 특징은 아무리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야.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민중시가 나와 당황스럽겠지만 걱정,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풀에게 배울 점이 많다. (문학의 해석은 독자의 자유다) 이 시에서 풀을 우리 자신으로, 바람은 걱정이나 불안으로 대입해 보면 불안에 대한 좋은 처방전이 될 수 있다. 


바람이 불 때 눕는 풀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보이겠지만 바람이 지나가기 전에 먼저 일어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면도 있어. 태풍이 불 때 버티는 나무들은 모두 부러진다. 걱정의 태풍이 불 때 버티지 말고 풀처럼 잠시 누워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다고 마냥 누워있으면 곤란하다. 바람이 지나가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다윗 왕의 반지에 새겨진 문구야. (이 문구는 솔로몬 왕자가 지었다고 한다) 모든 태풍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되듯이 걱정도 결국 소멸되지. 표풍부종조(飄風不終朝), 취우부종일(驟雨不終日). 노자 23장에 나오는 글이야.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하루 종일 오지 않는다.”라는 뜻이지. “시간이 약이다”라는 속담과 일맥상통한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새가 울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 참고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새를 울게 만들겠다”라고 말하였고 오다 노부가나는 “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백 년이 넘는 일본의 혼란기를 통일한 사람은 ‘인내의 화신’ 도쿠가와 이에야스였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언을 하나 더 소개해볼게. “인생은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먼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라.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으니 불만을 가질 이유도 없다.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근본이고 분노는 적이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지고, 달도 차면 기울기 마련이니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일을 모른다면 몸에 화가 미친다. 자신을 책할지라도 남을 책하지 말라. 부족함이 지나침보다 낫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불안할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어서 멀쩡한 손톱이 없었다고 해. 그는 불안을 느끼지 않는 초인이 아니었어. 자신의 때가 오기까지를 묵묵히 기다린 기다림의 명수였을 뿐이다. 불안은 인내 앞에서 소멸됨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주짓수’라는 브라질 유술이 있어. 주짓수는 ‘여자도 남자를 이길 수 있는 무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주짓수의 기술은 상대의 힘과 체중을 역으로 이용하는 ‘지렛대의 원리’를 활용한다. 주짓수 사범들은 버드나무처럼 휘어지라고 가르친다. 태풍이 불 때 버티는 참나무는 부러지지만 유연한 버드나무는 바람에 순응하지. 불안이 나를 덮칠 때 주짓수 기술처럼 불안의 힘을 이용하여 업어치기를 해보자.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 Michel De Montaigne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은 일어나는 일에 상처받는 게 아니라 일어나는 일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에 상처를 받는다.” 불교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다.  ‘잡아함경’이라는 불교 경전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연이어 화살을 맞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고, 지혜로운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 여기서 첫 번째 화살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두 번째 화살은 그 사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뜻해. 예를 들어 연인과 헤어졌을 때 헤어진 일은 첫 번째 화살이야.  이별은 누구에게나 슬프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일이지. 헤어진 이유가 다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거나 계속 슬퍼하고 우울해한다면 이는 스스로에게 쏘는 두 번째 화살이 되는 것이야. 우리는 천재지변이나 타인으로 인해 숱하게 넘어지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고통의 대부분은 벌어진 사건 그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감정적 반응 또는 해석으로 더 악화된다. 


첫 번째 화살에 맞았을 때 바로 조치할 수 있는 응급조치가 있어. 바로 심호흡을 하는 것이야. 우울하거나 불안하면 호흡이 얕아지고 가빠진다. 기도와 가슴에 공기가 갇히고,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온몸의 근육과 힘줄이 긴장되고 팽팽해진다. 심호흡을 하면 평소 호흡보다 많은 양의 산소가 체내에 유입되고 뇌로 확산되어 혈액 순환을 촉진시킨다. 심호흡은 또한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준다.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멈추게 하여 우리 몸을 평온한 상태로 진입하게 한다. 또한 충분한 산소 공급은 젖산 등의 피로 물질을 분해하기 때문에 피로할 때 심호흡을 하면 피로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심호흡은 또한 엔도르핀을 분비한다. (엔도르핀의 효능은 브레인 오케스트라 편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심호흡은 신경계를 조절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진정이 되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감정적으로 나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는 일을 줄일 수가 있다. (마치 심호흡이 만병통치약 같구나)


‘손절매’라는 주식 용어가 있어. 앞으로 주가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단기간에 가격상승이 보이지 않는 경우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을 말하지. 주식은 확률 게임이야. 본인이 예상한 대로 주가가 진행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과감히 손절매를 해야 손실을 줄일 수 있지. 주식의 고수가 되는 지름길은 이 손절매를 잘하는 것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손절매를 잘 못한다. 


‘콩코드 오류’라는 경제 용어가 있어. 콩코드는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의 이름이야. 영국과 프랑스의 합작품으로 프랑스어로 화합과 협력을 의미한다. 파리에서 뉴욕까지의 소요 시간을 대폭 단축하였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목을 집중받았다. 하지만 곧 최악의 여행기로 전락하고 만다. 몸체가 좁아 수용인원이 제한적이었고 연료 소모량이 많아 탑승비용이 증가되어 기존 여객기 대비 비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세계적인 불황과 오일 파동으로 인해 실용성과 경제성이 낮은 콩코드기를 외면하여 인기가 급하락 했다. 하기만 영국과 프랑스는 끝까지 콩코드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국가의 자존심이 상하고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2000년 콩코드기 폭발 사고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되고, 적자가 계속 누적되자 결국 버티지 못하고 2003년에 운항을 중단하였다. 콩코드 오류는 잘못된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정당화하기 위해 밀고 나가는 행동을 말하며, 본전 생각에 노름판을 떠나지 못하는 도박꾼과 같은 심리 현상이야. 본전 생각에 벗어나지 못하는 이 심리 때문에 일반인들은 손절매를 하지  못하는 것이지. 그럼으로써 손실은 점점 커져만 간다. 

  

걱정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돌멩이만 했던 걱정이 멈추지 않게 되면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만 간다. 걱정 방지법으로 주식의 손절매를 응용하면 좋은 처방전을 만들 수 있어. 주식은 가격에 대한 손절매이지만 걱정의 손절매는 시간에 대한 손절매야. 예를 들어 주식을 10,000원에 매입하고 손절매 기준을 10% 기준으로 하면 9,000원이 되면 과감하게 손절매를 하는 것이야. 걱정에 대한 손절매도 마찬가지로 일정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이 지나면 걱정을 멈추는 것이지. 걱정 타임을 30분으로 정했다면 30분이 지나면 걱정을 멈추는 거야. 걱정을 멈추겠다고 마음먹어서 걱정이 멈춰지면 무슨 걱정이겠냐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일단 걱정을 멈추고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이야. 걱정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걱정이 많아지면 종이와 펜을 꺼내어 나의 걱정들을 적어본다. 왜 걱정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왜 이런 일이 발생했으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지금의 솔직한 감정 등 사소한 것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적어본다. 적어보면 알겠지만 막상 적으라고 하면 적을 게 별로 없다. 걱정은 실체가 없는 허상의 감정이기 때문이지. 심호흡을 하여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줄어들면 그만큼 불안의 크기도 작아진다. 그리고 쓰다 보면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두려움은 항상 과장되고 그 형체가 모호하다. 어떤 때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 채 두려워하지. 두려움을 이겨내려면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자세히 파악해야 해. 쓰는 것은 점을 찍는 것과 같다. 점을 찍고 그 점들을 연결하면 그 형체가 드러나지. 형체가 드러나면 전략을 세우고 대응을 할 수 있다. 커다란 갈기를 휘날리던 사자 같았던 두려움이 막상 확인해 보니 귀여운 고양이였음을 알 수 있다.


하루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걱정타임’을 만들어 그 시간에 나의 걱정을 적어 보자. 시간은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30분을 넘긴다면 작가로서의 소질이 있다) 이 30분의 시간이 ‘걱정의 손절매’이다. 규칙은 걱정은 ‘걱정타임’에만 하는 것이다. 걱정타임이 끝나면 다음 걱정타임이 될 때까지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걱정을 글로 쓰면 객관적으로 더 쉽게 분석할 수 있어. 그리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확률도 높아지지. (걱정 쓰기는 일기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습관이 되면 걱정과 불안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의지를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결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고 그것은 우리의 의지를 넘어선 것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주여,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아빠 고등학교 다닐 적 화장실 벽에 붙어 있었던 문구다. (아빠는 미션스쿨을 다녔다) 미국 정치사상가 라인홀트 니부어 Reinhold Niebuhr 가 어느 교회에서 설교한 기도문이라고 한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말했어.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그의 의지를 벗어난 일이고 나무를 심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걱정하지 말고 오늘 하루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오늘도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 주제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생기는구나. 아빠도 걱정이 많은 편이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보다. 다음 편에도 계속 불안의 파도를 넘는 법에 대하여 이야기할게.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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