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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Jan 29. 2023

불안, 걱정의 심연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법 (상)

티베트에 이런 속담이 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걱정을 한다고 해서 걱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지만 걱정이 해일처럼 밀려올 때에는 정말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걱정이 누적되면 불안이 된다. 불안이 누적되면 각종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가슴이 답답하고 두통이 생기며 소화도 잘 되지 않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며 심하면 공황장애가 생길 수도 있어. 불안이 심해지면 일상생활에서 여러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삶의 질이 대폭 떨어지게 된다. 플라톤은 의학이 발달하지 않는 그 시절에 이미 정신과 육체의 상관관계를 깨우치고 있었어. “의사들은 정신을 고치지 않고서도 육체를 고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정신과 육체는 하나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병원을 찾는 위궤양 환자의 70퍼센트는 걱정이 병의 원인이라고 해. 걱정은 사람을 신경을 긴장시켜 위액을 비정상적으로 분비되게 만들지. 비정상적으로 분비된 위액들이 궤양을 일으키는 것이야. 걱정이 우리의 위를 갉아먹는 셈이다. 


영화 <사일런스>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을 받는다. 귀 뒤쪽에 조그만 상처를 내어 피가 한 방울씩 떨어지게 한다. 피가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공포가 점점 커져 며칠 안에 죽게 된다. 피가 부족해 죽는 게 아니라 공포 때문에 죽는 것이다. 걱정은 끊임없이 똑똑 떨어지는 피와 같아. 그 걱정이 점점 증폭되어 공포가 되어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고 심지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이 너무 없는 것도 문제야. 걱정은 미래에 대한 감정이다. 앞으로 닥쳐올 위기가 감지될 때 느끼는 감정이지. 걱정이 없으면 이솝 우화에 나오는 베짱이 신세가 될 수도 있어. 겨울이 다가와도 아무 걱정이 없는 베짱이는 마냥 놀다가 결국 굶어 죽게 되지. 걱정을 많이 해도 문제이고 아예 안 해도 문제다. 이전 편지에서 중용을 얘기했듯이 걱정도 중용이 필요하다.


걱정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좋은 방법이 있어. 그것은 ‘오늘 하루만’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걱정은 오늘보다 다가올 내일이나 미래에 대한 일들이야. 그러니 오늘 하루만 집중해서 산다면 대부분의 걱정을 없앨 수가 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야. 미래에 대한 계획은 꼭 필요해. 계획을 세우되 걱정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야. 계획은 세부적으로 철저히 세운다. 그리고 오늘의 할 일이 정해졌으면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오늘은 오늘 할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지. 예를 들어 다가올 시험이 걱정된다면 우선 시험에 대비한 전략과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매일 공부할 분량을 정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정해진 분량의 공부를 충실히 하면 된다. 내일 할 공부를 미리 걱정하거나 시험 결과를 미리 걱정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길가메시 서사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바빌로니아의 서사시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통해 옛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는 반신반인의 영웅이었다. 잘 생기고 총명한 데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절친한 친구 엔키두가 죽자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자신도 결국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자 밤낮으로 불안에 시달렸다. 그래서 그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불멸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기 위해 긴 모험의 여행을 떠난다. (우트나피쉬팀은 신의 선택을 받아 영생을 부여받은 유일한 인간이다)


여정 중에 ‘신두리’라는 여인이 운영하는 주막에 들르게 되었다. 그녀는 길가메시에게 조언을 한다. “인간은 죽음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고 세상은 하나의 여인숙이며 죽음은 여행의 끝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 기뻐하고 행복해야 한다.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춤과 노래를 즐기고 친구와 가족과 행복하라.” 삶을 축제로 여기라는 여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길가메시는 다시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고 불로초를 얻게 되지만 돌아가는 길에 깜빡 잠이 들었고 그때 뱀이 그 불로초를 훔쳐 먹는다. 이에 좌절한 길가메시는 빈손으로 우르크로 돌아갔지만 결국 그는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길가메시 Gilgamesh는 ‘노인이 청년이 되었다’라는 뜻이야. 이는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당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개방된 지형과 강사이를 끼고 있는 비옥한 토지 때문에 전쟁과 정치적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았어. 그래서 오늘에 집중하고 소중히 여겼던 삶이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되었지. 길가메시는 남은 여생을 신두리의 조언을 되새기며 살았을 것이다. 삶을 축제로 여기라는 신두리의 조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카르페 디엠'이라 할 수 있어. 이 가르침은 시대에 따라 변화되었지만 반복되면서 내려오고 있어.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이 가르침이 걱정을 최대한 줄이고 행복하게 지내는 비결이야. 충실하고 걱정이 덜 한 하루들이 쌓이면, 그 누적된 총량이 나의 행복한 인생이 된다.


현대 문명은 컴퓨터가 없으면 작동되지 않는다. 1936년 앨런 튜링은 현대 컴퓨터의 원형이 되는 ‘튜링머신 turing machine’이라는 추상적 계산 기계를 고안했어.  튜링 머신은 순서에 따라 계산이나 논리 조작을 행하는 장치로, 적절한 알고리즘이 주어진다면 어떠한 계산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 튜링머신의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기다란 테이프가 있고 거기에는 0이나 1이 길게 이어져 있어. 한 번에 테이프 한 칸을 읽는 스캐너가 있는데 이 스캐너는 테이프의 숫자를 읽은 후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이동한다. 0이나 1을 읽은 스캐너는 그 상태를 해석하고 그 명령을 수행한다. 이 방식은 현대의 컴퓨터와의 동일하다. 차이점은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것뿐이지. 스캐너에는 프로그램 명령어들의 집합이 저장되어 있어. 특별한 목적을 가진 명령어 집합을 ‘알고리즘’이라고 한다. 이 알고리즘은 상수와 변수를 정의하고 이들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함수를 나타내는 것이지. 결국 컴퓨터의 원리는 ‘하나씩 하나씩’이다. 단지 그것을 매우 빠르게 수행할 뿐이다. 


모래시계는 중력에 의하여 서서히 아래로 떨어지는 모래의 부피로 시간을 재는 장치이다. 인생도 모래시계와 같아. 모래가 하나씩 떨어지듯이 시간도 순간순간 흘러가고 인간은 한순간에 따라 하나씩 만을 실행할 수 있어.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생에서 차지하는 걱정의 부피는 어마하게 크겠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씩 하나씩’이야. 이런 컴퓨터 알고리즘을 인생에 대입하면 도움이 된다. 걱정이 생기면 그 신호를 감지하여 사실을 파악하고 분석한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고 실천에 옮기면 된다. 하지만 걱정은 순간적으로 증폭되어 바이러스처럼 알고리즘을 멈추게 하지. 


심리학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한 순간에 ‘하나’ 이상을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어. 지금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다음 주 시험 걱정을 동시에 할 수는 없어. 감정의 영역에도 똑같은 법칙이 적용된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는 동시에 걱정을 같이 할 수는 없다. 하나의 감정은 다른 감정을 몰아내기 때문이야.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매일 18시간씩 일했다고 해. 누군가 처칠에게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무 바빠서 걱정할 시간이 없습니다.” 몰입이 불안이라는 감정을 몰아내는 것이지.


동물은 식물과 달리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그래서 인간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몸이 바쁘지 않으면 미래에 대한 감정을 부르게 되지. 불안이 다가오는 것이다. 


기우라는 고사성어가 있어. 옛날 기나라에 한 사내가 살았다. 그는 평소에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늘 불안에 떨면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걱정이 된 그의 친구가 그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하늘은 공기가 쌓여서 만들어진 것 일세. 우리는 하루 종일 공기 속에서 생활하고 숨을 쉬며 살고 있는데 하늘이 무너져 내릴 거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늘은 그렇다 치더라도 땅이 꺼지면 큰일이 아닌가?”

“땅은 흙이 쌓이고 굳어져서 만들어졌다네. 조그만 틈도 없이 흙으로 꽉 들어차 있지. 우리는 하루 종일 땅 위에서 걷고 밟으면서 살고 있지 않나.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이제 그만두게.”

그 말을 들은 기나라 사내는 비로소 안심을 할 수 있었고 걱정을 그만둘 수 있었다.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보면 내가 걱정했던 문제들 중 90퍼센트 이상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교통사고가 날 확률은 존재하지만 그 확률이 매우 낮기에 우리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 (심지어 비행기도 탄다) 중요한 것은 어떤 확률이 발생할 경우에 따라 미리 대비를 하는 것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보험’이라는 상품에 가입한다. 하지만 이 만약의 경우가 발생하는 확률이 매우 낮기에 보험 회사는 계속 호황을 누리고 있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확률은 매우 낮아. 기나라 사내가 확률의 법칙을 알았다면 진작에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야. 불안은 앎으로써 극복할 수 있어. 걱정은 형체가 없는 안개와도 같아. 걱정의 안개는 지식의 빛 아래에서 사라지기 마련이지.


‘타개’라는  단어가 있어. 바둑에서 상대방 돌에 몰려 위험한 상태의 돌을 살려내는 것에서 유래되었어. 이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매우 어렵거나 막힌 일을 잘 처리하여 해결함”이야. 바둑을 두다 보면 타개해야 할 위급한 상황들이 많이 생긴다. 여기에도 두어야 할 것 같고 저기도 급하고 두어야 할 곳이 점점 많아진다. 하지만 바둑은 한 번에 한 수만 둘 수 있어. 프로 기사들은 한 수를 두기 위해 대략 3~40수를 내다본다고 해. 3~40가지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것이지. 그리고 그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수를 먼저 두는 것이야. 중요한 순서를 잘 계산하여 두는 사람은 고수가 되고, 감정적으로 두게 되면 영원한 하수가 되는 법이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 칼 포퍼 Karl Raimund Popper는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라고 말했어. 인생도 바둑과 같아. 위급한 상황이 많아질수록 침착하게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하지. 바둑 두다가 화를 낸다고 묘수가 떠오르지 않아. (알파고는 절대 화내지 않는다) 고수일수록 차분히 계산할 뿐이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한자성어가 있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이야. 걱정이 밀려온다면 바둑 고수처럼 감정을 억누르고 침착하게 계산하여 한 수, 한 수씩 최선을 다하여 두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걱정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방법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방법이 있어. 최악을 받아들이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지. 그러면 결국엔 얻을 수 있는 것만 남는다. 최악의 경우에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길가메시가 깨우친 것처럼 어차피 인간은 언제나 죽는 존재다. ‘필사즉생(必死則生)’. 죽고자 싸우면 산다는 뜻이야. 1597년 명량에서 왜군과 결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이 휘하의 장수들을 불러 이른 말이다. 죽을 각오로 임하면 실제로 죽을 확률은 매우 낮아지고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확률은 더 높아진다. 이순신 장군은 이 말의 뜻을 깨우쳤고 스스로 실행하여 진리임을 보여주었다. 


오늘도 얘기가 길어졌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 Kierkegaard가 이런 말을 했다. “불안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궁극의 진리를 배운 것과 같다.” 다음 편에 계속 걱정의 파도를 넘어 궁극에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볼게.


이전 15화  분노, 마음의 태풍이 몰려올 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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