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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Jun 02. 2023

사랑, 나의 반쪽을 찾아서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가톤이 비극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아가톤을 축하하기 위해 아가톤의 집에서 향연을 벌였어. 향연은 함께 sym 먹고 마시다 posium이라는 의미로, 함께 술을 마시며 토론하는 것을 말해.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두 사람 이상의 전문가가 각자 의견을 발표하고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토론회를 심포지엄 symposium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그리스 시대의 향연에서 유래되었다) 그들은 사랑의 신 에로스에 대해 토론하기로 했어. 플라톤의 ‘향연’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벌인 향연을 대화 형식으로 꾸민 책이야. 그중에 네 번째로 등장한 연사가 당시 희극작가로 명성을 떨치던 아리스토파네스였다. 그의 사랑론을 들어 보자.

 

 태초에 인간들은 둘이 서로 등을 맞대고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8개의 팔과 다리로 걷거나 빙글빙글 돌면서 굴러 다녔다. 그 당시 인간들은 지금의 인간보다 힘이 훨씬 강했고 점점 오만해져 급기야 신들에게 제물도 바치지도 않고 그들의 자리를 넘보기도 했다. 이에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을 멸망시키고 싶었지만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낼 인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방법을 고안한다. 인간이 오만한 이유는 두 사람이 붙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 제우스는 인간들을 둘로 나누기로 결심한다. 그러면 인간들의 힘도 약해지고 또한 그 숫자도 두 배가 되어 제물도 두 배가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제우스는 번개를 사용하여 인간들을 반으로 쪼개었고, 한 번 더 신에게 도전을 하면 또 쪼개어 외다리로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아폴론은 쪼개진 인간들의 살가죽을 꿰매어 주었고 그 자국으로 배꼽이 남았다. 그 이후로부터 반으로 쪼개진 인간은 자신의 나머지 반쪽을 찾으려 헤매게 되었다. 반쪽을 찾아 헤매는 동안 신에게 도전할 생각은 잊게 되고 나머지 반쪽을 그리워하며 찾아다닌다. 그러다 자신의 짝을 만나게 되면 예전처럼 다시 합쳐서 과거의 완성된 모습을 회복하려 노력한다. 이것이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하는 사랑의 기원이다.


 이렇듯 사랑이란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야. 헤라클레스는 12가지 모험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했듯이 인간도 자신의 반쪽을 찾는 여정을 거치면서 성장하게 되지. 그 모험(?)을 앞둔 너에게 사랑에 대한 (아빠만의) 조언을 해보려 한다.


 사랑의 여정을 떠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랑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는 것이야. 현대의 사랑은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온갖 환상으로 겹겹이 쌓여있지. 포장을 벗겨내어야 그 안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선물을 받을 때 기쁜 이유는 선물 포장지 때문이 아닌 것처럼. 그 안에 담겨있는 상대방의 진심과 애정이 담겨 있어 기쁜 것이지. 사랑은 자연이 인류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야. 그래서 선물을 잘 알기 위해서는 먼저 포장을 벗겨 내어야 하지. 본질을 찾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이 시간을 돌려 그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 보는 것이다.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그 근원으로 접근할 수 있지. 인간도 다른 살아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강물을 따라 흘러왔어. 그 강을 거슬러 사랑의 근원을 찾아가 보자.


 아리스토파네스의 주장은 생물의 역사로 비추어 보아도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최초의 생명체는 대략 40억 년 전쯤 시작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최초의 생명이라고 불리는 루카는 ‘세포’였다. 세포란 생물의 기능적, 구조적 기본 단위를 의미하지. 이 태초의 세포들은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면서 무성생식을 하며 번식했어. 무성생식은 암수 개체가 필요 없이, 한 개체가 단독으로 새로운 개체를 형성하는 방법이야. 즉 하나가 쪼개어져 둘이 되는 것이지. (마치 제우스가 번개로 인간을 둘로 쪼갠 것처럼 말이야) 태초의 세포들은 무성생식을 반복하며 그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무성생식의 단점은 다양성의 결핍이야. 무성생식으로 태어나는 자손은 모체와 동일한 유전정보를 갖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붕어빵 찍어내듯 똑같은 개체가 반복 생산된다. 이때 환경이 급변하면 쉽게 멸종에 이를 수 있어. 태초의 지구 환경은 매우 불안정했어. 수십억 년 전 어느 때에 바닷속 양분이 부족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급변한 환경 때문에 생존의 위기에 닥쳤던 세균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루카로부터 시작된 생명의 그물이 지금까지 이어진 걸 보면 그때에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때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클라미도모나스’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어. 녹조 세균 클라미도모나스는 암수의 구별이 없는 단세포 생물이며 무성생식을 한다. 클라미도모나스의 특징은 환경이 척박해지면 두 개의 개체가 하나로 합쳐진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 세포가 합쳐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지. 이렇게 합쳐진 세포에 변화가 생긴다. 서로의 유전자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야. 그리고 이 세포가 다시 분열하면서 전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세포가 탄생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유성생식이 시작되었어. 즉 남과 여라는 성이 탄생하게 된 것이야. 살기 위해 어쩌다 합쳐졌는데 그 결과 유전적 변이가 일어나게 되면서 생물의 다양성이 증가되었지. 성은 자손이 급변하는 환경에 새로운 조합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 준 게임체인저가 되었어. 유성생식은 서로 다른 성의 조합으로 돌연변이를 빠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무성생식에 비해 급변하는 환경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지.

 

 예를 들어볼게. 두 집단이 있는데 A그룹은 무성생식을 하고 B그룹은 유성생식을 한다. 두 집단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지면 어떻게 될까? A그룹은 유전적 다양성이 없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이겨낼 방어기제를 갖추지 못하고 결국 모든 개체가 전멸하게 되지. B그룹도 많은 수가 바이러스에 의해 희생되겠지만 유전적 다양성이 높기 때문에 일부는 면역 유전자를 가질 수 있게 되어 생존할 수 있어.

 

 1982년에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 William Donald Hamilton은 성의 탄생을 ‘기생충 가설’로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했어. 숙주가 기생생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성을 진화시켰다고 주장한 것이야. (여기서 기생생물은 기생충은 물론 세균, 바이러스까지 포함한다) 유성생식은 무성생식보다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며 번식 속도도 느리지만, 매우 커다란 유전적 다양성을 가져다준다. 암수가 만나 짝짓기를 통하여 유전정보가 뒤섞이면서 새로운 방어기제를 지닌 자손이 탄생할 수 있어. 인류도 유전적 다양성이 없었다면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이미 멸종했을 것이야.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할 때 인구의 1/3이 사망하였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흑사병에 대한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인류는 역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어.


 심지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이 무성생식을 하는 존재들도 (기회가 되면) 유리한 유전 정보를 교환하며 환경에 적응하려고 한다.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슈퍼박테리아나 백신을 무력화시키는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처럼 말이야. 다양성은 진화의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생물에게 꼭 필요한 조건이 되었고, 성은 생물에게 다양성을 부여해 생존과 영원성을 제공하는 자연의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진화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유성생식이 시작되면서 생명의 사랑도 시작되었어. 사랑은 지옥 같은 (초기 지구의 모습은 지옥 불과 같았다)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의 결과이다. (그래서 지옥 같은 세상에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급변하는 환경을 견뎌낸 존재들만이 자신의 유전자를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그 조상들의 후손이 되었다. 사랑은 생명의 역사를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사랑은 매우 치명적이기도 하지. 사랑은 산소와 같아. 산소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지만 반대로 우리 몸을 늙고 병들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지. 호흡을 통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 산소는 우리 몸 구석구석으로 운반되어 에너지를 만들어. 인체의 에너지 발전소라 할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발생시키고 이 과정에서 활성산소 free radical라는 부산물이 같이 만들어진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연료를 태우며 달리는 과정에서 부산물인 배기가스가 나오게 되는 것과 같아.


 적정량의 활성산소는 세균과 독성물질을 막아주어 인체 면역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활성산소가 적정량을 넘어서면 정상 세포까지도 공격한다. 산소 분자는 전자가 쌍으로 이루어진 상태가 되어야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전자 하나를 잃게 되면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되지. 불안정한 활성산소는 잃어버린 전자를 되찾기 위해 다른 상대방의 전자를 빼앗으려고 해. 이런 현상을 ‘산화’라고 한다. 사과가 갈변하고 쇠가 녹스는 이유도 산소로 인한 산화작용 때문이야. 이처럼 우리 몸도 활성산소로 인해 산화가 되며 이 때문에 각종 질병과 노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지. 1991년 존스홉킨스대학 의과 대학에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질병은 약 3만 6천 가지이고, 이 질병의 대부분의 원인이 활성산소 때문이라고 발표한 바 있어. 과잉 생산된 활성산소는 세포에 산화 작용을 일으켜 세포막을 공격하고 세포의 구조를 무너뜨리며 DNA까지 손상시킨다. 활성산소에 의해 손상된 세포는 돌연변이 세포로 변이 되고 결국은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된다.

 

 인체 내에는 활성산소의 공격에 대항하는 항산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나이가 들면서 발생되는 활성산소의 양은 많아지고 항산화 능력은 점점 떨어지기 때문에 세포의 노화가 촉진된다. 자동차가 연식이 오래될수록 연비가 나빠지며 배기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는 것과 같아. 활성산소가 증가하는 이유로는 과식, 스트레스, 운동 부족, 흡연, 음주 등이 있어. 장수하는 사람들이 소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활성산소와 관련이 있다.


 활성산소의 존재를 몰랐던 진시황은 자신의 노화를 막고 영생하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 노력했어. 하지만 진시황은 49세에 죽었다. (노력한 것에 비하면 다소 일찍 죽었다) 주요 사망 원인으로는 수은중독으로 추정하고 있어. 수은이 불로초의 역할을 하리라 믿은 것이지. 진시황이 차리리 소식을 했더라면 활성산소의 산화 작용을 줄여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사람을 제물로 바쳐 기우제를 지냈다. 날씨가 급변해 농사를 망치면 힘없는 사람을 마녀 사냥했어. 이렇듯 본질을 모르면 괜한 사람들이 희생된다. 사랑도 마찬가지야. 사랑을 모르면 남녀 사이를 비롯하여 모든 인간관계를 왜곡하게 되지. 잘 모르면 진시황처럼 쓸데없이 수은을 마셔 스스로 수명을 단축하게 된다.


 사랑은 자연의 선물이자 미끼이다. 행복 편에서도 설명했듯이 행복의 파란 신호등을 따라가게 되면 그 종작지엔 가족이 있지. 짝을 만나 자식을 낳았다는 것은 생물학의 입장에서 유전자의 명령을 잘 수행했다는 뜻이야. 사랑은 파란 신호등이자 미끼인 셈이다. 과연 누가 놓은 미끼일까?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지구의 주인은 유전자라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했어. 인간은 유전자를 보관하고 운반하고 전송하는 생존 기계일 뿐이다는 것이지.

 

 단순함만 있었던 태초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분자가 생겨났어. 이들 중 일부는 우연히 스스로 복제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 복제자들이 스스로를 복제하던 중 어떤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오류 된 복제자는 다시 복제를 반복하면서 또 다른 오류를 낳게 된다. 이렇게 누적된 자기 복제자의 오류가 개량으로 이어지면서 진화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개량된 복제가가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생존에 유리한 것을 ‘자연선택’이라 한다. 예를 들어보면 초원에 기린들이 있어. 기린은 나뭇잎을 먹으며 산다. 기린이 조상들은 원래 목이 길지 않았어. 그중에 돌연변이가 생겨 목이 더 긴 기린이 태어났다. 그 기린은 다른 기린들보다 목이 더 길어 남들이 닿지 못하는 높은 곳의 나뭇잎을 먹을 수 있어서 생존에 더 유리했어. 목이 긴 기린들의 자손이 더 많이 번성하면서 현재와 같이 목이 긴 기린이 나오게 되었다.

   

 도킨스는 여러 가지 현상을 예로 들며 유전자의 힘을 설명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보살피는 이유도 단지 그렇게 프로그래밍된 것이라고 말하지. 부모의 자식 돌보기는 유전자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야. (아빠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유전자의 힘일 수도 있겠다) 협력도 유전자의 이기적 전략이다. 인간의 부모 자식사이의 근연도는 50%이지만 형제 벌의 근연도는 75%라 한다. 일벌은 평생 번식을 하지 않고 오직 여왕벌의 자식만을 봉양한다. 일벌의 행동도 이기적 유전자가 만들어낸 이타적 행동이라 할 수 있지.

 

 그렇다고 우리가 유전자의 맹목적인 기계라는 뜻이 아니야. 도킨스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모두가 협력해 나간다면 우리의 유전자도 보다 안전하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연애를 하기 전에 먼저 인간은 생물학적 원리에 지배받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남녀의 욕망이 다름도 이해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각자 가지고 있는 생식세포의 차이로 인해 유전자로부터 받는 명령이 다르다. 유전정보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세포를 생식세포라 하며 체세포는 이런 생식세포를 지원한다. 남자의 생식세포는 정자라고 불리며 특징은 희소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얻어진다(??). 여자의 생식세포는 난자라고 불리며 태어날 때 미리 정해진 개수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희소성이 매우 높다. 남자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정자가 계속 생산(???)되기 때문에 씀씀이가 헤프다. (마치 로또 당첨자가 돈을 헤프게 쓰는 것도 같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자신의 생식세포를 소비하려 한다. 반면 여자는 가뜩이나 많지 않은 난자를 일정 시점이 지나면 한 달에 하나씩 잃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난자를 소중한 데만 쓰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여성은 아이를 가지게 되면 열 달 동안 자기 뱃속에서 키워야 하고 또 출산 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자식을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난자를 사용하기 전에 매우 매우 신중하다. 자연에서도 암컷은 얼마나 가족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할 수 있는지 수컷을 정밀하게 관찰해서 배우자를 결정한다. (고등한 동물일수록 화려한 외모보다는 행동을 본다) 남성은 기회만 되면 자신의 생식세포를 사용하기 위해 마치 외판원처럼 부지런히 자신을 홍보한다. 그러면 여성은 그런 남성의 홍보 자료를 꼼꼼히 체크하며 자주 충성도를 테스트한다. 그래서 남성은 끊임없이 구애를 해야 하는 성별이 되었고 여성은 거부하고 선택하는 성별이 된 것이다. 


“네? 사랑이 유전자가 던진 미끼이고 세포의 유성생식이 사랑의 시작이라고요? 그럼 사랑은 그저 짝짓기에 불과한 것인가요?...”  무척 실망한 너의 표정이 상상되는구나. 아빠는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장을 뜯어 내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 이유는 사랑은 동화가 아니기 때문이야. 포장에 현혹되어 본질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에 사랑도 생물학적인 현상이다. 원인을 알아야 우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고 인간의 행동으로 이루어진 문화, 역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질병에 걸리면 신에게 기도했고 비가 오지 않으면 사람을 제물로 바쳤어. 병에 걸리는 것이 신의 노여움을 산 것도 아니고 제물을 바친다고 해서 갑자기 비가 오지 않는다. 사랑을 알지 못하면 사랑에 속게 된다. 신화를 걷어내야 실화를 볼 수 있다.

 

 별이 움직이는 이유가 천사가 보이지 않는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별이 아름다움이 강등되지 않는다. 사랑의 실체가 유전자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사랑은 여전히 아름답다. “생명 하라.” 생명은 모든 것은 ‘살라’라는 명령이야. 이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사랑이다. ‘살라’라는 명령을 충실히 받드는 사랑이 있어서 이 적막한 우주에 지구라는 푸른 행성이 탄생하게 되었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은 우리의 조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생존하는 모든 사람들은 수백만 년 동안 끊이지 않는 사랑의 그물 끝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사랑은 생명의 순환을 이어주게 만들지. 인간은 자신의 반쪽을 찾아 떠나는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운명의 돌을 매고 여러 여정을 거치면서 많은 희로애락을 느끼게 된다. 그 희로애락이 생명이라는 소명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이지. 먹고 분열하는 단순함을 반복하는 무성생식의 삶에는 이야기가 없다. 운명이 선사하는 희로애락으로 인해 우리는 이야기가 있는 행성에 살고 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이 우주 끝에 있는 너를 불렀고 그렇게 너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사랑의 기본을 이야기했다. 다음 편지에는 사랑의 용용 편을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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