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란 무엇인가? 에너지의 사전상의 정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야. 그럼 일은 무엇인가? 일은 ‘물체에 힘을 가했을 때 힘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거리’ 즉 힘 x 거리이다. 그렇다면 힘은 또 무엇일까? 힘은 자연계에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4가지가 있으며, 이를 매개하는 입자에 의해 전달되는 작용이라고 한다. 에너지에는 종류도 많아. 태양에너지, 핵에너지, 석유에너지, 수소에너지, 재생에너지, 운동에너지, 위치에너지, 열에너지, 빛에너지, 활성화 에너지, 자유 에너지 등등이 있어. 인간도 힘을 들여 거리를 움직이는 존재인 만큼 에너지가 필요하지. 인간은 필요한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을까?
식물은 광합성을 해서 스스로 에너지를 만든다. 태양의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포도당과 산소를 만들지. 포도당은 모든 생물들이 에너지로 삼는 원료이다. 광합성을 할 수 없어 스스로 양분을 만드지 못하는 동물(인간도 포함해서)은 식물에게서 양분을 빌려 온다. 동물은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서 다시 식물에게 돌려주니 빌린다는 표현이 틀리지는 않는 것 같다. 풀을 못 먹는 동물은 어쩔 수 없이 초식 동물의 양분을 빼앗는다. (육식 동물은 초식 동물을 잡아먹고 돌려주지는 않는다. 지구가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이유는 뺏어 먹기만 하고 돌려주지 않는 존재가 많아져서 그러지 않을까?) 게다가 동물은 식물에게서 양분도 얻지만 숨 쉴 때 필요한 필요한 산소까지 얻는다.
인간은 식물과 동물의 살을 빼앗아 태양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면서 미안해하지 않는다) 육체에 필요한 에너지는 다른 존재의 육체를 빼앗아 해결하면 되지만, 그것만으로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얻을 수는 없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마음의 에너지도 필요하지.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야. 관계는 마음들의 연결로 유지된다. 태양과 지구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중력 에너지가 필요하듯 인간 사이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음의 에너지는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타인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타인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를 ‘사랑’이라 부르며 이는 강제로 뺏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짝사랑은 힘들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며 그래서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2세 황제가 특이한 실험을 했어. 왕은 태어난 아기에게 아무런 반응이나 자극을 주지 않으면 최초로 하는 말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왕은 실험에 필요한 신생아들을 모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필요한 영양과 잠자리는 제공해 주되 아기가 울더라도 절대 안아주거나 말을 하지 말아라.” 이 실험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실험의 대상이 된 아기들은 수개월내에 모두 죽었다고 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사랑받지 못해서이다.
신생아 때의 사랑은 피부 접촉을 통해 전해진다. 20세기 초 대다수의 심리학자들은 사랑은 형이상학적 개념이라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 이런 학계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증명하려는 학자가 있었지. 위스콘신 대학의 교수로 근무했던 해리 할로우 Harry Frederick Harlow 박사는 붉은 털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진행했어. 갓 태어난 새끼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격리한 후 깨끗한 환경과 영양이 풍부한 먹이를 준다면 야생에서 자란 원숭이보다 더 건강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실험 결과 예상대로 새끼 원숭이는 또래의 야생 원숭이보다 신체적으로는 훨씬 건강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매우 불안정했으며 심지어 자해행위를 하기도 했어. 특히 우리 밑에 깔아 둔 수건에 강한 집착을 보였고 수건을 빼앗으려고 하면 비명을 지르면서 뺏기지 않으려고 저항했지. 할로우 박사는 수건에 대한 집착에 착안하여 두 번째 실험을 진행했어.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새끼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격리시키고 우리 안에서 키우는데, 첫 번째 실험과 다른 점은 두 가지 우리에 각자 다른 어미 인형을 준비하는 것이었어. 한 우리의 어미 인형은 철사로 만들고 젖병을 달아준다. 다른 우리에는 젖병이 없는 부드러운 천으로만 만든 어미 인형을 준비한다. 할로우 박사는 갓 태어난 새끼 원숭이가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젖병이 달린 철사 인형을 선호할 것이라고 예상했어. 하지만 새끼 원숭이는 배가 고플 때만 철사 인형에 가서 젖을 먹었고 그 외의 모든 시간에는 천인형에게 매달려 있었어. 게다가 새끼 원숭이는 천인형에 얼굴을 비비는 등 천인형에게 강한 애착을 보이는 행동을 보였다. 새끼 원숭이에게 갑자기 놀라게 하거나 찬물을 끼얹고 송곳으로 찌르는 등의 고통을 주어도 모든 새끼 원숭이들은 천인형 어미에게 달라붙었어. 심지어 천인형 어미에 바늘을 꽂아 놓아도 찔려가면서 천인형 어미에게 안겨 있었지. 할로우 박사는 이 실험을 통해 사랑은 배고픔과 같은 욕구 충족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신체적 접촉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했어. 실험 결과는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지. 아이들에게 깨끗한 환경, 좋은 영양 그리고 훌륭한 교육만 제공하면 최고의 양육이라고 생각했던 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었다. (그 당시 부모들은 아이에게 너무 잘해주면 나약해진다고 생각했다)
해리 할로우 박사는 1905년 미국 아이오와주 페어필드에서 태어났고 엄격한 부모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면서 평생 우울증을 앓았다고 해. 그래서 그는 사랑과 삶의 상관관계를 필사적으로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실험을 통해 할로우 박사는 사랑은 단순히 음식이 아닌 스킨십으로부터 자란다는 것을 입증했어. 스킨십, 움직임, 그리고 놀이가 영장류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지.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 가지 키워드의 공통점은 결국 신체 접촉을 통한 소통이야. 결국 시간을 함께 하고 자주 부대끼는 것이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애착은 어릴 적 주양육자와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문으로는 사랑애(愛), 붙을 착(着)을 쓰지. 이 착은 착륙할 때의 착과 같아. 사랑의 착륙인 셈이지. 인생 초기에 사랑이 내 마음에 정착륙하면 건강한 마음의 기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착륙이 잘 안 되었을 때, 즉 사랑이 불시착되면 이를 애착 손상이라 부른다. 어릴 적 반복적으로 애착 손상을 입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애착을 갈망하게 된다. 유년기의 맺었던 최초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우리 인생을 지배하게 되지.
하지만 완벽한 애착 형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세균, 바이러스와 싸우는 과정에서 면역력이 길러지듯이 적절한 애착 손상이 우리 마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도 한다. 애착 손상 정도에 따라 내 인생의 담장의 높이가 달라지지. 나의 담이 너무 높으면 타인과 연결될 수 없다. 이들의 방어기제는 투사이다.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상대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나르시시스트가 있어. 반대로 담장이 너무 낮으면 나와 타인을 분리하지 못해. 이들은 불안이 크기 때문에 애착 욕구가 남들보다 강하다. 그래서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관심받을 만한 행동을 계속 하지. 역애착이라 할 수 있어. 타인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해 무조건 순응한다. 담장을 높이 쌓는 것에 비해 그래도 인간관계를 하니까 좀 더 나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겉보기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 같지만 정작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라 착각하지. 이들의 방어기제는 내사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 등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소위 말하는 따라쟁이이다. 타인의 취미, 스타일, 취향을 맹목적으로 따라 한다. 이들은 타인의 요청을 거절할 줄 모른다.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보다 그냥 내가 불편한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하지. 역시 이들의 자존감은 무척 낮아. 스스로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평판에 매우 예민하다. 그래서 본인의 의견이나 감정을 잘 표출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고통의 근원에는 언제나 사랑이 불시착한 경험이 있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는 전혀 다르다) 그저 돈만 많으면 행복하고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마약 등을 탐닉하는 걸 보면 물질적 풍요가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어. 내가 어떤 고민이 있다면 이는 틀림없이 누군가의 사랑의 부재가 숨어있다. 회사나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는 그곳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야. 불안의 근원도 그나마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랑의 잔고가 바닥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인간의 삶을 좌우지하는가? 햇볕을 잘 받는 식물은 잘 자라고 그렇지 못한 식물은 말라죽듯이 인간도 사랑이라는 빛이 없으면 말라죽는다. 식물이 햇빛을 향해 굴절되듯이 인간도 사랑을 찾아 본능적으로 굴절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의 정의만큼 정의가 많은 것은 없을 것이다. 가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을 노래하고 작가는 자기만의 정의로 사랑을 쓴다. 드라마도 온통 사랑이야기뿐이야. 예술 자체가 사랑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변에 사랑은 넘치지만 아이러니하게 온통 사랑이 불시착된 사고현장들 뿐이다. 햇볕은 넘쳐나지만 나무가 자라지 못한 곳이 있어. 바로 ‘사막’ 이지. 인간 사회도 먹을 게 넘쳐흐르지만 반면에 굶주리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사막 같은 것일까? 사랑의 비는 골고루 뿌려져야 한다. (한곳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면 홍수가 난다) 가뭄과 홍수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 사랑의 성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사랑은 범위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나 혼자 하는 사랑이 있고 남녀가 나누는 사랑이 있으며 친구들 간의 우정이 있지. 더 나아가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랑이 있고 인류 전체를 향한 사랑도 있다. (심지어 우주를 향한 사랑도 있다) 사랑을 종류별로 이야기해 보자.
나 혼자 하는 사랑에는 방향에 따라 두 가지의 사랑이 있어. 내가 나만을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이 있고 나 혼자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짝사랑이 있다. 나르시시즘이 생기는 주된 이유는 영아기 때 방치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아이는 성장을 해도 어릴 적 방치되었던 기억이 무의식에 남아있게 된다. 보호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신이 수치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보상을 받기 위해서 타인에게 우월함을 과시하려 하지. 나르시시스트를 자기애성 인격장애라고 표현하는 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르시시스트는 자기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사랑을 빼앗아 자신의 잔고를 채우려 하는 이기주의자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서열과 등수에 민감하도록 교육받은 사회적 영향도 크다. 나르시시스트는 우열을 가를 수 있는 서열에 집착한다. 나르시시스트가 서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자신의 우월한 격차에서 만족을 느끼고, 자신보다 못한 희생양을 찾기 쉽기 때문이지.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가 이런 나르시시스트를 양산한다. 나르시시트가 부모가 되면 또다시 자녀들에게 등수만을 강조하면서 나르시시스트는 계속 양산된다. 한국사회가 갑질사회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짝사랑은 슬프고 외롭고 아프다. 아빠는 짝사랑 전문가였다. 아직도 이정하 시인의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다’라는 시를 기억한다. 그리고 가수 K2의 ‘그녀의 연인에게’를 들으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으로 눈물이 난다. 그 고통을 겪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오지 않는 완행열차를 기다리는 고통은 무간지옥에 비해 결코 덜하지 않다.
짝사랑도 중독이 된다. 짝사랑을 할 때에도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이지. 자신의 이미지를 영화 속의 비련의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혼자만의 상상에 빠지게 된다. 사실 짝사랑도 자존감이 낮아서 발생하는 현상이야. 고백하자니 퇴짜 받을 것 같아 두려우니 혼자만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이지. 성을 높이 쌓고 혼자서 가공된 상상의 인물과 같이 영화를 찍는다.
어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98%의 사람들이 살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경험한다고 해. 확률적으로 너도 누군가를 짝사랑할 수도 있으니 아빠가 미리 조언을 해두겠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냥 고백해라. 잘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할 수 없는 거다. 안되면 빨리 잊어야 한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처받기 두려워서이다. 가뜩이나 낮은 자존감마저 없어져 버릴까 봐 두려운 것이야. 매는 먼저 맞는 것이 낫다. 거절의 아픔은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자기만의 세계로 도피하면 안 된다. 한 번 도망치게 되면 영원히 도망치게 되니까. 성공할 가능성도 있으니 용기를 내지 않으면 그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진다. 인간관계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 우선 용기를 내어 고백해야 한다. (아빠도 엄마를 만나게 된 이유가 용기를 내었기 때문이다)
경우의 수에 따라 퇴짜 맞을 경우에 대비해 전문가의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겠다. (잘 안 되겠지만) 우선 잊어야 한다. 절대 주변을 맴돌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상대를 미화하지 말아야 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은 더 환상적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처럼 그 사람을 ‘신포도’라고 생각해야 한다. ‘얼굴은 잘 생겼지만 성격이 안 좋다는 소문이 있더라’라고. 치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아빠는 엄마가 화장실도 안 갈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줄여야 한다. SNS를 차단하고 가능하면 전화번호도 없애야 해.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 마련이다. 시간이 약인 법이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와 공유해야 한다. 고통은 나누면 줄어드니까. 아빠는 전문가이니까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엄마는 상위 2%에 해당되는 사람이라서 공감을 못할 수도 있다. 만약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걱정이라면 엄마는 훌륭한 조언자가 될 수 있다)
바둑이 끝나면 복기를 하듯이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도 복기가 필요하지.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 때문에 내 진심이 전달되지 않았는지 자기만의 성찰이 필요하다. 절대로 자신의 결점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안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나 보아야 한다. 세상의 반이 이성이다. 새로운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일에 몰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몰입은 내 마음의 우울을 몰아내니까.
네 마음에 아빠의 사랑이 정착륙했는지 궁금하구나. 너의 마음에 있는 공항 관계자는 정착륙 여부를 아빠에게 무전을 보내길 바란다. 다음 편지에는 가장 관심이 많을 만한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