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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나다 Oct 03. 2023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순간, 따라오는 일들

밥벌이는 밥벌이다.



흔히 성공한 사람들의 단골 멘트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관심분야를 찾아 도전하세요.'

'즐기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그렇고 그런 조언들





사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

적극 찬성하는 쪽이었다.





수면시간 다음으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게

일하는 시간인데

앞으로 소비할 무구히 많은 시간들을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생계도 유지하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한

낙관적인 조언들로 가득하다.




과연 그럴까?




나의 경우

비교적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준비과정 2년 + 실제 일한 기간 2년

의 행적들에 의지해 얘기해 보자면,




일단 초반엔 꿈만 같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비록 큰 벌이는 되지 않았지만

그 당시 취미로만 생각했던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라는 행위 자체가 일단 감격스러웠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난 정말 행운아야!

우주야 고마워!!




일하러 갈 때마다, 일하고 돌아가는 와중에도

종종 고무되어 허공에다 외쳤다.




좋아하는 일인 만큼 내 에너지를 마구 쏟아부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시간에 쫓겨 압박감을 느꼈지만 잘하고 싶었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실수 없이 끝내고 싶었다. 준비하는 과정이 괴롭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처우에 지쳐갔다.

일하면 일할수록 마이너스가 되어가는

상황 자체를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억울함이 커져갔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수록

상처가 더 컸다.

낮은 페이가 나의 가치와 비례하는 것 같아서

자존감은 한없이 무너졌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더 돈을 버는 일처럼 느껴져

나의 쓸모를 알 수 없어

구겨진 종이처럼 한없이 우울해졌다.




돈은 벌지 않았지만

취미로 온전히 즐기며

아이처럼 행복해했던 충만감은

마치 전생에 일어났던 일처럼 아득해졌다.




그 일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이젠 취미로라도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딱 그만큼의 애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좀 더 그 일에 열정과 애정이 있었다면

다른 방안을 모색하며 어떤 식으로든

그 일을 직업으로 끈질기게 잡고 있었을 거다.




여하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해

크게 환상을 가지지 말라'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도

밥벌이가 되는 순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해야 하는

수많은 다른 밥벌이와 다를 바 없이

고달프긴 마찬가지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좀 덜 괴롭고

좀 더 버틸 수 있을 뿐이다.




좋아하는 일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는

근거 없는 장밋빛 희망을 가지며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지 말자.

그러다 인생 끝난다.




아 여기서 찾기 위해 하는 노력에는

여러 형태가 있는데,

찾기 위해 하는 노력 자체를 만류하는 건 아니다.

이것이 나을까, 저것이 나을까, 끊임없이

재고 따지며, 행복 회로만 돌리는

'상상 속의 찾기 위한 노력'을 지양하라는 것이지,

나와 맞는 일이 무엇인지 이런저런 일을 해보며

경험을 쌓는 것은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정리해 보자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고

취미로만 할 경우의 최대 장점은

그 일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것




아이유도 말했다.

직업이 가수가 되고 나서부터

그토록 좋아했던 음악 듣는 일을

온전히 즐길 수 없게 되었다고.

계속 분석하고 생각하며 듣느라

예전처럼 그저 즐기며 들을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경우의

최대 장점은

일할 때 비교적 행복하고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




인간은 기본적으로 노동을 싫어하기에

기왕 싫어하는 노동을 할 거라면

좋아하는 노동을 하는 게 낫다.

그런 점에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어찌 보면 행운아라고 할 수 있겠다.




운이 좋아 좋아하는 일로

능력도 인정받아 성공한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삶이 또 있을까.




(편의상 운이 좋았을 경우라고 써놓긴 했지만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고 싶진 않다.

사실 난 '운이 좋았다'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보통 사람들이 하지 않은 수십 배의 노력과 극강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인내의 시간들이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것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삶의 형태는 아니다.




누구나 이런 삶을 누릴 행운이

주어지진 않는다.




(끌어당김의 법칙에 따르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끌어당기기만 하고 행동력은 제로라면

그 결괏값은 제로로 수렴된다고 본다.)




일단 보통 사람들은

이 경지까지 갈 불굴의 의지와 끈기가 없고

(성공한 사람보다 화력이 현저히 딸림)

사실 좋아하는 걸 찾지 못해

어리둥절, 우왕좌왕하다

삶이 끝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뭐 어떤가?




이게 성공한 위치가 아니다 보니

약간 자기 합리화? 신 포도 이론처럼

비쳐서 어쩔 수 없긴 한데




나에게도 성공하고픈 욕구가 만렙이라

자기 계발서와 실용서적만 주구장창 읽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감안해 주시라




꼭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야 할까?

꼭 좋아하는 일로 성공해야 할까?




밥벌이는 따로 분류해 두고

취미로 실컷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엄마와 길을 걷다가

동네에서 요구르트 아줌마를 지나쳤다.




'저분 시인이야.'




나는 영문모를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았는데,

엄마의 설명에 따르면




저분은 요구르트 아줌마이긴 하지만

시집도 몇 권 낸 시인이라는 거다.




나는 이런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시인은 골방에 틀어박혀 시만 쓰는 줄 알았다.

뭔가 특별한 사람들이 시인인 줄 알았다.




엄마의 설명을 듣는 순간,

평범했던 요구르트 아줌마라는 직업이

서브나 부캐처럼 느껴졌다.

그분의 진정한 직업은 시인이었다.

요구르트 아줌마라는 캐릭터에

시인이라는 다른 정체성이 덧붙여졌다.




아, 꼭 시를 써서 돈을 벌어야 하는 건 아니구나.




좋아하는 시를 써서 돈을 벌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생계를 위한 일은 다른 일로 두고

좋아하는 시를 내 맘대로 마음껏 쓸 수 있다면

잘 팔리는 시를 쓰기 위해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도록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그 일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모순에

봉착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고군분투해 봤고,

그 결괏값도 짧게나마 겪어봤으니,

좋아하는 일은

마음껏 할 수 있게

한편에 남겨두고 싶다.




밥벌이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온갖 눈치와 조율을

하나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좋아하는 일들이 꽤 많은데,

그것들을 하는 순간순간이 그저 행복하다.





어찌 됐든 지금

나의 최대 관심사는

나의 행복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최고의 방법은

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주는 게 아닐까.




거창하고 큰 행복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단편적인 조각조각의 행복들이

멀리서 봤을 땐 대체적으로 행복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들은 그 자리에 남겨두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밥벌이는 따로 하고 싶다.




직업을 갖기 위해 너무 오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보다 쉽게 투입될 수 있으면서 그럭저럭 벌 수 있는,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단순노동이 더 끌리는 요즘이다.




요새 유튜브를 보면 나 빼고 모두들 쉽게

월 1000 버는 세상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나는 유료모임을 만들어 수익을 내고, 미끼로 전자책을 만들어 뿌리고, 단톡방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의 강의를 팔고 싶지 않다.

(재테크나 경제공부는 꾸준히 하고 싶다.)




그저 미련하게 몸을 움직여 일하고 그에 따른 보수를 받고 싶다.

노동하는 순간만큼은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잡생각도 사라질 테니까.

그리고 여유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마음껏 즐기고 싶다.  




(표지 : 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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