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희망찬 새해의 뽕'에 취한다. 2021년 12월 31일의 어제와 2022년 1월 1일의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건만 ‘새해’가 주는 열정적 분위기는 게으른 사람조차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조바심을 내게 한다. 그리하여 너도나도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 평소엔 하지 않았던 일들을 이것저것 시도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새해 목표(미라클 모닝, 운동, 독서, 영어 공부, 다이어트 등)와 신년운세 보기 등이 있다.
나도 새해를 맞이하여 평소에는 하지 않을 몇 가지 행동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신년운세 보기였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고픈 나머지,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하고 누군가 대신 결정해 주기를 원한다. 스스로의 선택에 확신이 없어서 검증된 확답을 받고 싶어 한달까.
굳이 그러한 두려움이 없더라도 각자 타고난 ‘사주’에 맞게 올바른 선택으로 최적의 결과를 내고 싶었다. 그러한 이유로 두 군데에서 ‘신년운세 및 사주풀이’를 보게 되었는데,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분은 뜬금없이 나보고 ‘사주 명리학’이나 ‘심리’쪽을 배워서 그 길로 나가보라 했고, 다른 분은 평생 관심도 없었던 ‘공인중개사’를 준비해 보라고 했다. (있는 부동산도 우후죽순 문 닫고 있는 마당에 시대를 역행하는 ‘공인중개사’가 웬 말인가!)
한 분은 나보고 일반인 사주도 아닌 ‘서민 사주’라서 평생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비우고 마음공부를 하라고 했고, (아직까지 머릿속에 ‘서민 사주’가 맴돈다.) 다른 분은 사주에 재물복을 타고났으니 말년까지 돈 걱정은 말라고 했다.
내 사주가 분명 여러 개가 아닌 한 가지 사주일 텐데 이토록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걸까?
내가 하고픈 일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으니 어떤 분은 그쪽 분야가 잘 맞을 거라 했고 다른 분은 재능이 없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라 했다.
이런 말들을 듣다가 든 생각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이분들의 확답이 필요한가?’였다.
문득 내 꼴이 우스워져 두 번의 신년운세 사주보기는 그 길로 그만두었다.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인데, 한 시간도 이야기해보지 못한 생판 남인 사람이 ‘사주’를 봐준답시고 이리저리 훈수 두는 것이 불쾌했다. (단순히 나쁜 말들을 들어서 불쾌한 건 아니다.)
더불어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나의 적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직업들까지 조언해 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재능이 없고 그 분야에서 성공할 가망이 없다고 해서 그 일을 시작조차 말아야 할까? 이미 진행했다면 당장 그만두어야 할까?
김영하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젊은 시절 우연히 점을 보았는데 ‘말과 글로 먹고살게 된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열심히 정진하여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얘기.
이런 에피소드를 보면 어느 정도 ‘타고난 사주’란 게 있기는 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무언가에 끌리고, 좋아하게 되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 자체가 ‘운명’이라고.
자기 확신을 갖기 위해 남의 조언이나 확언에 의지할 필요는 없다는 걸.
「그토록 바라던 일이라면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저지르세요. 후회는 내일 해도 늦지 않습니다.」 -파울로 코엘료 ‘마법의 순간’ 중에서
점쟁이의 ‘축복 같은 확언’이 있다면 불안을 잠재우고 좋아하는 일에 기분 좋게 몰두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은 결국 자기 고집에 따라 자기 ‘꼴’대로 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주’를 볼 필요가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무슨 말을 듣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고픈 일이 불확실성 투성이더라도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 누군가의 허락 따윈 필요치 않다. 아무도 나에게 ‘자기 확신’의 말들을 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하면 된다. 설령 그 말들이 때때로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지라도. 아무도 나의 가능성을 말해주지 않는다면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말해주리라. 김영하 작가는 점쟁이로부터 ‘작가’가 될 거란 확답을 들었지만 그런 말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슴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해주었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운명예정설 따위를 믿을 게 아니라면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에게 자기실현적 암시가 꼭 필요한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 그런데 그 암시가 꼭 점쟁이나 관상쟁이에게서 나올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김영하 ‘앞에서 날아오는 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