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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마 Oct 16. 2024

ep.10 가을바다

남(南)의 아들 1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첫사랑과 만났던 그날이.


훈련일과가 끝나면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그녀에게 연락했다.


'뭐 해?'

10분 후, 다시 한번 연락했다.


'나 1시간 뒤에 핸드폰 제출해야 돼.'


마음이 조급해졌고, 답이 오지 않은 채 하루를 보냈다. 내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오늘은 답이 와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켰고, 그녀에게서 답장이 와 있었다.


'미안, 내가 너무 늦게 봤어. 나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이라 공부하고 있었어... 이번 주 시험 끝나는데 볼까?'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고, 그녀를 빨리 보고 싶었다.


'금요일에 포항에서 KTX 타고 밤에 도착하는데 괜찮아?' 빨리 보고 싶었던 마음에, 여유롭게 볼 수 있는 토요일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 괜찮아! 잠깐이라도 보자!'


그렇게, 12주 동안 간간히 만나며 마음을 쌓아갔다.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다림은, 힘든 훈련으로부터 인내하게 했다.


“영화야, 이번 주도 나와?”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밝고 따뜻했다.  


“그럼 나가지! 우리 가기로 했던 곳 갈까?” 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우리는 조용한 골목의 작은 이자카야에 갔다. 쌀쌀해지는 날씨에 따뜻한 사케 한 모금은 우리의 몸을 서서히 녹여주었다. 시원한 공기와 따뜻한 사케의 대조는 마치 우리의 마음처럼 어우러졌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우리의 얼굴이 빨간 명찰처럼 달아올랐다.


“바람 좀 쐐러 갈까?” 내가 물었다.  


“그럴까?” 그녀가 생긋 웃으며 답했다.


바깥의 시원한 공기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처럼 불었다. 그리고 우리의 손등이 스칠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영화야, 뭐 해? 안 잡고.”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녀의 손은 따뜻한 사케와 같았다.  


“우리 사귈까..?” 내 심장은 뛰었고, 말을 내뱉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 싫어.” 그녀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어...?” 내가 당황하자, 그녀는 귀엽다는 듯이 나를 끌어당겼다.  


“뻥이야. 좋아!” 그녀가 웃으며 답했고, 걱정하던 부담감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오늘부터 입춘이라던데, 나에겐 입추 같아. 입도 맞출까?” 내가 농담을 던지자.  


“짝!” 그녀의 손바닥과 입을 맞췄고,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버스 온다, 조심히 가.” 내가 말했다.  


“다음 거 탈래...” 그녀가 대답하며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3번의 버스를 더 보내고 헤어졌고, 다시 한 주가 지났다.


“영화야, 너 이번 주도 나오지?” 주말이 다가오면 매일같이 질문하던 그녀.


“나 다음 주까진 못 나갈 것 같아. 훈련 준비 때문에 외박 통제됐어.” 내가 답하자, 그녀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3달 동안 매주 나오더니 갑자기 못 나온다는 게 말이 돼? 언제는 훈련 안 했어? 오늘 가기로 한 곳도 있잖아.” 그녀가 따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 훈육관님이 갑자기 통제시킨 걸 어떻게. 어쩔 수 없잖아?” 나도 투정을 부렸다.  


“못 나오는 건 넌데, 왜 네가 화내?” 그녀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제일 답답한 건 나야. 네가 뭘 안다고 화를 내?” 내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됐어, 끊어.”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군대에 있으면 자유롭게 연락을 할 수 없기에, 이 상황을 유지한 채 2주가 흘러갔다. 그리고 동기 한 명이 사고를 쳐서 2주 동안 휴대폰이 통제됐다.


고작 21살의 우리는 보고 싶은 감정에 충실할 뿐이었는데, 상황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나 2주 동안 휴대폰 통제됐었어. 연락 기다렸지?”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냐, 그때 갑자기 화내서 미안했어. 같이 하기로 한 것들이 있어서 준비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속상했어. 그리고 네가 보고 싶었어.”  


“그래.. 나도 미안. 2주 동안 계속 신경 쓰여서 잠도 설쳤던 것 같아. 우리 오늘 볼까?”  


“좋아”


약속 시간이 되어 마주친 순간, 우리는 씩 웃었다.


“뭐냐 너, 왜 이렇게 야위었어. 고생 좀 했나 보다?” 그녀가 민망한지 투정 같은 걱정을 했다.  


“넌 그대로. 예쁘네.” 내가 쑥스럽게 말했다.  


“.... 바다 보러 갈래?”  


“갑자기?” 그녀가 되물었다.  


“그냥... 좋잖아. 가을바다.”


나는 아버지의 차를 빌려 그녀와 함께 서해안 바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맥주 한 캔씩 들고 모래사장에 들어섰다.


“너 운전해야 하는데 마셔도 돼?” 그녀가 걱정되어 물었고, 내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답했다.  


“나 운전 안 할 건데?” 내가 당당히 말했다.  


“내가 미친다..... 짝!” 그녀의 손바닥과 입을 맞추었다.  


우린 모래사장에 앉아 달빛이 울렁이는 파도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나 다음 달이면... 저 바다 너머로 가야 해.”  


“그렇지... 백령도로 간댔나? 가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 그녀가 내 얼굴을 잡고 쳐다봤다.  


“지금 많이 봐 둬야지.” 그녀가 웃으며 말했고, 나도 생긋 웃었다.  


“가을 바다는 파도가 잔잔하고, 여름의 잔열로 수온도 따뜻하데. 이제 겨울이 찾아오면서 점점 차가워지겠지만, 다시 잔잔하고 따뜻해지는 날이 올 거야.”  


“그래 영화야, 바다가 다시 따뜻해지는 날이 오면.... 그때 다시 한번 오자.”  


시간이 흘러 18주의 교육훈련이 끝났고, 백령도 입도를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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