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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마 Oct 19. 2024

ep.11 아쎄이 백령도 입도하다

남(南)의 아들



백령도로 들어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바다의 안개라 불리는 해무가 껴서 입도가 지연되었고, 4시간 30분 동안의 승선감은 속을 부글부글 끓게 했다.


배 안에는 휴가를 복귀하는 병사들, 사복을 입은 간부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있었다. 그리고 정복이나 전투복을 입고 입도하는 병사들은, 나를 보고 경례하지 않았다. 간부들은 사복을 입고 휴가 나가는데, 전투복을 입고 있단 것은 '아쎄이'라는 뜻이었다. 아쎄이는 '새 거'라는 뜻으로 새로운 이들을 일컫는다.


나는 어색함을 안고 좌석에서 정면만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야, 너 몇 기냐?”

“필승! 부사관 349기입니다!” 내가 큰 목소리로 경례했다.

“야, 목소리 낮춰. 여기 혼자 있냐?”

“죄... 송합니다!” 작게 대답했다.

“너 부대 어디로 가냐?”

“저 선봉대대로 갑니다!”

“그러냐? 나도 거기 소속이야. 지금 우리 중대에 자리가 비어서 얼굴 볼 수 있겠네. 난 337기 박성준이다. 수고해라.”

“예! 필승!”

“요놈 봐라. 나랑 같이 근무하기 싫은 얼굴인데?”

“아... 아닙니다!” 얼굴에 장난기가 많아 보여, 저 중대로 떨어지면 고생 좀 할 것 같았다.

“아... 괜히 또 긴장되네...” 내가 중얼거렸다.

그때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울렸다.

“승객 여러분, 백령도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질서 정연하게 하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배에서 내려 백령도 땅을 밟았을 때, 선글라스를 낀 헌병들과 전투복을 입은 이들이 많았다. 항구에 내리면 인솔자가 있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아 훈육관님께 받은 연락처로 전화 걸었다.

“필승, 하사 진영화입니다! 선배님, 혹시 어디 계시...”

“야!” 뒤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반갑다, 영화야. 내가 인솔자야.” 박성준 선배가 말했다.


그는 휴가를 복귀하며 나를 인솔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배에서 나인 것을 눈치채고 장난친 것이었다.

'역시 관상은 과학이야...' 속으로 생각했다.

“야, 너 무슨 생각하냐?” 박성준 선배가 물었다.

“아... 아닙니다! 백령도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래, 근데 선배라 부르지 말고 반장님이라고 불러.”

“예! 박성준 반장님!”

선봉대대는 항구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했다. 그리고 저 멀리 위병소가 보였다.

“야야, 형이야 문 열어.” 박성준 하사가 위병소 근무자들에게 말했다.

“필승! 박성준 반장님, 옆에 계신 간부님은 누군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위병소 근무자가 물었다.

“신임 하사야. 오늘 대대 신고 있어.”

나는 그렇게 위병소를 통과해 인사과 앞에 도착했다.

“너 여기서 노크 3번 하고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가.” 박성준 하사가 인사과 앞까지 인솔하고 중대로 복귀했다.

“똑. 똑. 똑.”

“들어오시면 됩니다.” 사무실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필승! 오늘 전입신고 하러 온 하사 진영화입니다!” 내가 크게 말했다.

인사과에는 인사장교와 인사담당관, 일보하사, 그리고 인사병이 있었다. 특이했던 점은 인사담당관과 인사병의 이름이 "영수"로 똑같았다.

“어, 그래. 반갑다. 전입신고 하자. 이제 바로 들어가야 돼.” 인사담당관님의 간단한 인사와 함께 신고할 멘트를 일러줬다.

“필승! 신고합니다. 하사 전영화는 2015년 2월...”  한두 글자씩 틀리기 시작했다.

“다시.” 인사담당관님이 나직하게 말했다.

“필승! 신고합...” 두 번 더 틀리자 호통이 들렸다.

“야, 이 닭대가리 같은 새X야! 그것도 못 하고 뭐 하는 거야. 하... 지금 대대장 신고하러 들어가야 하는데 골 때리게 하네.”  

“죄... 죄송합니다!”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대대 신고는 무사히 마쳤지만, 인사담당관을 볼 때마다 식은땀이 났다.

“야, 수현아, 쟤 어디 중대로 가냐?” 인사담당관이 일보 하사에게 물었다.

“화기 중대 간다 했습니다.”

“야, 꼴통, 따라와.” 인사담당관이 못마땅한 듯 불렀다.

“예!” 첫날부터 자존심이 긁혔다.

난 대대 건물 3층에 있는 화기 중대로 갔다. 그리고 중대장실에 들어가 면담을 했다.

“전영화 하사 반갑습니다. 김형욱 중대장입니다. 장기 할 거죠?” 장기를 안 한다고 하면 대우도 못 받고, 챙겨주지 않는다는 김철민 교관님의 말이 떠올랐다.

“예, 장기 합니다.” 장기를 하지 않을 거지만, 한다고 했다.

“그럼 열심히 해야겠네. 요즘 보병 기준 70대 1 정도 되던데. 간부 사무실로 가서 선배님들께 인사하시죠.”

간부 사무실에 가서 기합 든 목소리와 눈빛으로 강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2명 빼고 다들 20대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30대 중반 같았다.

“그래, 너 여기 앉아 있어.” 1 소대장 상사가 말했다.

다들 분위기가 차가웠다. 중대 내에 아쎄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병사들은 '지켜본다는 명목'으로 경례를 하지 않았고, 간부들은 2 소대장과 박성준 하사를 제외하곤 차갑게 대했다.

“너 81mm포반장으로 우리 소대 올 거니까 마스터할 때까지 잠도 자지 말고 공부해.” 1 소대장이 말했다.

여자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간부들이 다 퇴근하고 맞선임이 와서 내게 말했다.

“영화야, 하사 1호봉 때는 선배들 앞에서 핸드폰 하면 안 되고, 무음으로 해야 돼. 진동은 2호봉부터고, 시계는 지샥, 메탈 시계는 3호봉부터고........”

정말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당직인 박일호 하사가 내게 오더니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오늘 선배가 당직인데 잠 자려 한 건 아니지?”

“그렇습니다!” 어색한 대답을 했다.

“이 새X 기합이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훈련받고 오느라 고생했다. 선배가 사줄게.” 박일호 하사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입만 거칠고 속은 따뜻한 선배 같았다.

“그냥 편하게 말해. 너 막내잖아.”

“그럼.... 치킨이랑 삼각김밥이 먹고 싶습니다!” 내가 당차게 말했다.

“그래, 석식 먼저 먹고 와. 야식으로 먹게.”

그리고 잠깐 시간이 남아 화장실 변기 칸에 가서 여자친구에게 연락했다.

“나 오늘 정말 바빠서 이제야 연락해. 나 백령도 잘 도착했고.... 선배들도 좋아 보이셔.” 내가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때 박일호 하사가 날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영화야 어딨냐! 먹을 거 가져왔다.” 박일호 하사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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