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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Sep 22. 2023

[오스트리아 멜크]룸메이드 너무 혼내지 마세요

소냐 할머니는 무서워


멜크를 여행지로 고른 건 봄의 친구 오리의 조언 덕분이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가족과 동유럽을 다녀온 오리는 갑자기 오스트리아에 가게 되었다는 봄에게 멜크수도원에 꼭 가보라고 추천했다. 급할 것 없는 우리는 빈 다음 일정으로 멜크에서 사흘을 머무르기로 하고 숙소를 골랐다.


멜크는 동네가 작아서 숙소가 몇 개 없었다. 리뷰가 가장 많고 평점이 높은 숙소 한 곳을 골라서 예약을 위해 메일을 보냈다.(오스트리아에서는 숙소 예약도 공홈에서 하는 편이 가장 좋다고 유*카페에서 읽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답이 없길래, 부*닷컴에서 같은 숙소를 찾아서 예약을 해버렸다.


그런데 예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에서 메일이 왔다.


너 성격 급하더라.
내가 공식 가격보다 할인해서 예약된다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그걸 못 기다리고 부*닷컴에서 예약했대?


나는 얼른 답장을 썼다.


그거 무료 취소되는 예약이야.
지금 예약해도 할인해 줄 거야?
그럼 당연하지.
그렇다면 부*닷컴 예약 취소하고 너희 쪽에서 예약할게.


그렇게 메일이 몇 번 오가고 숙소 예약을 마무리 지었다.


멜크 숙소에 도착해서 우리는 여러 번 놀랐다.


경주랑 비슷한 느낌의 멜크는 작고 아름다운 동네였고, 우리 숙소는 멜크 구시가지 가장 중심에 는 옛 시청과 벽을 공유하고 있었다. 오백 년도 넘는 건물을 새로 수리해서 예스러움과 깔끔함이 함께했다.


내가 지낼 큰 방은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높은 천정을 장식하고 있었고, 널찍한 더블 침대와 소파와 테이블과 옷장이 들어가고도 아이들 대여섯은 뛰어놀아도 될 정도로 넓었다.(숙소 복도에 있는 장식장에는 이 숙소에 묵었던 슬로베니아 대통령과 지배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숙소 안내 책자에 나온 방=내가 묵은 방


봄과 여름의 방은 또 어떻고! 손바닥만 한 열쇠로 나무 문을 열고 계단 세 칸을 내려가면 싱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있고, 벽을 파서 만든 수납공간이 여러 개 있는 인상적인 곳이었다.


병산서원 마당 화장실처럼 달팽이 모양으로 배치된 욕실과 화장실도 재미있었다. 아마도 원래는 계단이 있던 자리에 욕실과 화장실을 만든 것 같았다. 높은 의자 다섯 개가 있는 식탁도 마음에 쏙 들었다.


식탁과 의자 다섯 개


그런데 우리는 셋인데 욕실에 수건과 비품은 두 사람이 사용할 만큼만 준비되어 있었다. 체크인을 도와준 지배인에게 가서 수건을 더 달라고 말했더니 그의 눈이 흔들렸다. 지배인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 뒤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고 잠시 후, 눈빛이 매서운 할머니 한 분이 약간 화가 난 표정으로 우리 방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죠?
수건과 비품이 두 사람분만 있어요. 한 세트가 더 필요해요.
내가 분명히 메이드한테 꼼꼼히 챙기라고 했는데!
잠깐만 기다려 봐요!


할머니는 재빠르게 수건과 샴푸와 비누 등등을 갖다 주었다.


나는 살짝 쫄아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Are you So... nja?(소... 냐님이세요?)
Yes, I′m Sonja.(그래 내가 소냐야.)
Nice to meet you!(만나서 반가워!)


나에게 그새를 못 참고 다른 통로로 예약했냐고 꾸짖는 메일을 보냈던 숙소 직원의 이름이 소냐였다. 소냐 할머니는 이 숙소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이다. 출근하는 날이 아닌데 전화를 받고서 급하게 뛰어왔는지 소냐 할머니는 후줄근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자기를 알아본 나에게 소냐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멜크에 있는 동안 즐겁게 지내라고 했다.


숙소에서 체크아웃하던 날, 나는 소냐 할머니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 그날은 근무일이었는지 머리를 바싹 당겨 묶고 정장을 차려입은 소냐가 로비 카운터에 서 있었다. 나는 멜크에서 보낸 사흘이 무척 행복했고, 숙소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고 인사를 했다. 꼭 다시 한 번 더 멜크에 오고 싶다고도 했다.


그때는 반드시 소냐가 답장을 할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리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면서.


사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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