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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05. 2023

[헝가리 부다페스트]안 버리길 잘했지?

그 정도는 아니에요


부다페스트 숙소에 짐을 풀고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에는 전을 부쳐야 하는데.


전을 부칠 재료가 뭐가 있나 싶어서 부엌살림을 넣어 온 가방 안을 뒤지니 감자 몇 알과 골파가 보였다.


그라츠에서 감자를 샀었다. 파머스 마켓에서라면 감자를 몇 개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날 요리에 감자는 필요했고 장이 서지는 않는 날이라서 어쩔 수 없이 마트에서 포장된 감자 1킬로그램을 사야 했다. 감자를 담은 망이 꽤나 마음에 들어서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천연섬유로 만든 망에 감자를 담아서 팔 생각을 한 오스트리아 사람들, 환경보호에 진심이다!


감자 1킬로그램


어쨌든...

그거 제발 버리자는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내 가방에 꾸역꾸역 넣어서 부다페스트까지 들고 온 감자가 빛날 순간이 왔다. 부엌에 강판이나 블렌더가 있을 리는 없었지만, 마침 치즈 그레이터가 보이길래 거기에 감자를 쓱쓱 갈았다.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야?
감자전은 갈아야 제맛이지!


갈아놓은 감자가 묽어 보여, 여름의 눈총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들고 온 튀김 가루도 두 수저 넣었다. 골파도 송송 썰어 넣었더니 제법 그럴듯한 전 반죽이 되었다. 식용유가 없어서 비빔밥에 넣으려고 가져온 참기름으로 감자전을 부쳐야 했지만.


참기름으로 감자전 굽기


몇 개를 집어 먹고 나서야, 봄과 여름은 사진을 찍어서 가을에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핸드폰을 들고 부산스러웠다. 감자전을 다 부치고 식탁에 가 보니, 봄과 여름은 내가 먹을 두 개만 남기고 한 접시를 홀라당 먹어치웠다.


감자 버리자고 한 사람 나와!
튀김 가루 버리자고 한 사람도 나와!
교환학생에게 주고 온 장아찌도 생각나네.
여기에 장아찌 하나 곁들여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장아찌 국물에 찍어 먹었으면 새콤달콤 기가 막혔을 텐데...
맛있긴 한데... 짐을 버리자고 말한 일을 후회할 정도는 아니에요.


봄과 여름은 자꾸만 감자전을 쳐다보았지만, 어림없지.


이건 두 개 다 내 거야.


내가 먹은 감자전 두 개


사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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