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 Oct 22. 2023

[헝가리 부다페스트]엄마는 굴라쉬 요리사

굴라쉬 한 번도 안 먹어본 한국 아줌마가 굴라쉬 만들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왔으니 굴라쉬는 한 번 먹어야지 생각했다.


우리 여행 계획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조언자 봄의 친구 오리는 굴라쉬 맛집도 몇 군데 소개해 줬다.


그중 어디를 가볼까 식당을 고르다가, 안 가기로 했다.

친절은 기대 말라, 팁을 강요해서 기분 나빴다, 예약은 필수다 등등 리뷰를 읽을수록 기대보다는 부담이 생겼다.


차라리 만들어 먹어요! 우리는 부엌이 있잖아요.
그래요. 엄마는 할 수 있을 거예요!


봄과 여름은 굴라쉬를 만들어 먹자면서 나더러 재료를 시장에서 사 오라고 했다.


무슨 재료가 들어가는지도 모르는데?
제가 레시피 찾아드릴게요.


여름은 영어로 된 비비씨 레시피를 찾아 주었고, 봄은 장바구니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일요일 아침, 나는 지하철을 세 정거장이나 타고 동네 사람들이 장을 보는 시장을 찾아 나섰다.(숙소 근처에도 시장이 있었는데 거긴 딱 관광객용 시장이라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내가 사야 하는 재료 중에서 시장에서 구해야 하는 건 토마토, 이탈리안 파슬리, 양파, 통마늘, 파프리카 가루.


그러나 우리가 간장 설탕 후추 마늘 일일이 넣지 않고 불고기 양념을 사서 불고기를 만들듯이, 헝가리에도 굴라쉬 소스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절인 올리브를 팔던 상인에게 물어봤더니, 역시나 가까운 대형 마트에 가면 굴라쉬 소스가 아니라 ‘굴라쉬크림’이 있단다.


어차피 주재료인 고기를 사러 가야 하니, 간 김에 굴라쉬크림과 소고기 육수 큐브와 사워크림과 곁들여 먹을 빵도 샀다.


굴라쉬 재료와 기타 등등 장보기


비비씨 레시피에 달린 댓글을 읽으며 주의할 점도 마음에 새겼다.


이 레시피로 만들어 주었더니 헝가리 남자 친구가 맛있다고 했어요!(아직 눈에 콩깍지가 안 벗겨진 사이로군.)


나는 헝가리 사람인데, 헝가리 굴라쉬는 이렇게 만들지 않아. 적어도 다섯 시간 이상 끓여야 해. 소스도 두 배는 더 넣어야 하지.


https://www.bbcgoodfood.com/recipes/beef-goulash



아하

더 맵고 더 짜고 더 강하게 양념을 넣고, 더 오래 끓여야 하는구나.


여러 번 끓일수록 맛이 나는 김치찌개와 비슷하군.


여름이 미술관에 다녀오겠다며 숙소를 나간 오후 내내 굴라쉬를 만들었다. 오븐에 구운 고기를 육수에 넣고 다양한 양념을 더한 다음 오래 끓이다가 마지막에 사워크림을 넣고 허브를 다져 뿌리면 끝!


복잡하지 않은 음식이었다. 그저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점심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요리를 시작했는데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다.


결과는?

대성공! 굴라쉬를 먹어 보지 않아서 비교 대상이 없지만 맵고 짠 음식이 익숙한 한국인이 먹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다음날 아침 남은 굴라쉬를 한 번 더 끓여서 빵과 함께 먹었다. 이번에는 적은 양이 아쉬워서 냄비 바닥까지 긁어서 먹을 정도였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여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식사로 훌륭했다.


그러니 헝가리에 가신다면, 굴라쉬는 만들어 드셔도 좋아요. 맛은 제가 보장할게요!


한국에 오자마자 가을에게도 굴라쉬를 만들어줬다. 그런데 가스레인지 불이 너무 세서 국물이 졸아들어 고기가 살짝 탔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가스레인지를 인덕션으로(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숙소에는 모두 인덕션이 있었다!) 바꾸면 굴라쉬를 제대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지만 참았다. 우리가 쓰고 온 여행비 카드 결제가 다 끝난 다음에, 그때 말해야지.



사진-봄

이전 27화 [헝가리 부다페스트]안 버리길 잘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