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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22. 2023

파랑새는 집에 있다

여행의 결론: 우리 집이 좋아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우리가 묵은 숙소 일곱 곳은 모두 아파트호텔이었다. 여자만 셋 가는 여행이니 가을은 가능한 한 안전한 호텔로 가라고 했고, 외식비가 아까웠던 나는 부엌이 있는 아파트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숙소를 옮길 때마다 우리와 함께한 여행의 요정에게 감사했다. 봄과 여름이 지도와 리뷰만 보고 고른 숙소는 가는 곳마다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나 여행이 계속될수록 숙소들을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고, 각 숙소의 장점만 모으면 완벽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인테리어는 멜크가 가장 훌륭했어. 반짝이던 샹들리에!


멜크 숙소
그라츠 부엌이 가장 넓고 조리 도구가 다양했어(컵은 여섯 종류에 네 개씩 있었고, 제빵용 핸드믹서도 있었지).


그라츠 숙소 부엌
룸메이드 인심도 그라츠가 좋았어(두툼한 수건과 커피캡슐을 아낌없이 주었다).
식기는 멜크가 최고였어(커트러리와 와인잔과 그릇이 모조리 빌*로이앤보흐였다).


멜크 첫째날 저녁 식사
부다페스트 숙소는 욕조가 있어서 좋았어.
로비 직원은 빈의 아*나가 가장 친절했고.
아*나에는 수영장과 헬스클럽까지 있었지만 마지막 날 구경만 하고 나와서 어찌나 아쉽던지.


슈타이어 숙소에는 방 안에 헬스기구도 있었잖아.
잘츠부르크 숙소는 방이 두 개에 거실이 따로 있어서 봄과 여름은 엄마 눈길을 피할 수 있었지.
그라츠 숙소 세탁 세제가 가장 고급이었어.
냉장고는 빈의 누*가 가장 컸어.



숙소의 리뷰를 읽어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한국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달랐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숙소에서 별점을 뺀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벽에 그림이 한 점도 없었어.
꽃을 꽂아두지 않았다니 실망이야.
인테리어에 성의가 없어.
이케아 식기를 사용하다니 흥!


반면 한국 사람들은 이런 점을 싫어했다.


침대가 편안하지 않았어.
청소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의! 벼룩과 바퀴벌레를 보았어요.


서양 사람들은 집과 비슷한 따뜻함과 편안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동양 사람들은 집과는 다른 깨끗함을 기대하며 숙소를 구다.

나 역시 남이 빨래해서 갈아준 시트와 수건에 감동했으며, 외출했다 돌아오면 메이드가 청소해 준 호텔방을 좋아했다.

집에서는 모두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누군가 나 대신 수고한 덕분에 날마다 깔끔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물론 엄청난 숙소비를 치러야 한다. 깨끗함을 포기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나는 숙소에 돈을 쓰고 이십일 동안편안함을 선택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니 우리 집 냉장고와 식기세척기와 오븐은 그 어느 숙소보다 크고 훌륭했다. 우리 집에는 방이 세 개 있고, 욕실에는 욕조가 있다.


우리 집에는 가을이 우리가 없는 동안 정성껏 돌본 화분들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고, 벽에는 고흐의 아몬드나무(1000조각 퍼즐이지만) 그림이 있다. 거실 한 벽에는 온 가족이 사랑하는 책들이 꽂혀있는 책꽂이도 있다.


무엇보다 집에는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빠인 가을이 있다!!!


여행하면서 부러워했던 모든 것이 집에 다 있었다. 파랑새는 집에 있다는 걸 깨달으려고 20박 21일 오스트리아 여행이 필요했다.


사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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