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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04. 2023

[헝가리 부다페스트]기사 양반 약속이랑 다르잖아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ÖBB(베베-오스트리아 국영 철도)가 예고했던 일이 일어났다(철로 공사를 해서 일부 구간은 운행이 안 된다고 했다). 헝가리 000역에 기차가 서자 사람들이 알아서 기차에서 내렸다. 우리는 기차역에서 나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러나 여긴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헝가리! 기차역에는 엘리베이터도 에스켈레이터도 없었다.


까마득히 높은 계단 앞에서 여름은 한숨을 쉬었다. 여름은 무게가 20킬로그램이 넘는 24인치 여행 가방 쌤4호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여름의 가방을 번쩍 들어서 옮겨준 잘생긴 청년, 고마웠소(여름이 그러던데 당신 얼굴에서 후광이 반짝였다더군).


옮겨 탄 관광버스는 나쁘지 않았다. 여행 가방은 기사가 짐칸에 실어 주었고, 좌석은 편안했다. 이제 부다페스트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줄 테니  한숨 자 볼까. 관광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렸고, 창밖으로는 헝가리의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기차표 예매했는데 어쩌다 타게 된 관광버스


한 시간 남짓 달렸을까, 이름도 모를 광장에 버스가 서더니 기사가 차문을 열었다. 아무리 봐도 부다페스트 역은 아닌 곳에 내려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알아서 갈 길을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나무 그늘에 헝가리 철도청 직원으로 보이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며 서 있길래 가서 물었다. 영어로.


(내가 예매한 표를 보여주며) 나는 부다페스트 켈레티역에 가야 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요?
메뜨로, 뜨램(지하철이나 트램을 타세요).
이번에도 무료인가요?
노(아니오).
어디서 타야 하나요?
(말없이 손가락으로 지하철역을 가리킴)


구* 지도의 도움으로 트램 정류장을 찾았고, 자동판매기에서 부다페스트 72시간 교통권을 세 장 사서 47번 트램을 탔다. 트램을 타고 가는 길에 세체니 다리, 어부의 요새, 왕궁도 보였지만, 짜증이 났다.


아니, 부다페스트 켈레티역까지 데려다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알아서 찾아가라니, 이게 말이 되나?


그러나 트램에서 내리는 순간 짜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47번 트램 종점에서 200미터만 가면 우리 숙소가 있었다. 가는 길은 잘 포장된 인도여서 쌤4호를 끌어야 하는 여름도 표정이 썩 어둡지는 않았다.


아파트호텔 홈페이지에서는 세 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했었는데, 로비 직원은 우리에게 선선히 방 열쇠를 내어 주었다.  시가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그라츠에서 부다페스트까지 오는 길은 험난했지만, 끝이 좋으니 다 잘되었다.


부다페스트 숙소 로비


사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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