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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22. 2023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케이티는 열세 살

수잔은 주 22시간 근무


잘츠부르크에서 토요일 아침 산책길에 심상찮은 뜨개질 가게를 봤다.

도로의 모퉁이에 자리한 가게의 한쪽 창에는 물레며 다양한 실 잣는 도구가, 다른 창에는 직접 뜬 크로셰 작품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수잔의 가게


굳게 닫힌 가게 문에는 영업시간을 쓴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토요일과 일요일은 문을 닫고 월요일부터 요일은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 문을 연단다. 금요일에는 오후에 두 시간 더 영업한다니 감사해야 하나? 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만 장사를 하는 사장님의 패기라니!


수잔의 영업 시간 안내


우리가 잘츠부르크를 떠나는 건 월요일 오후 열두 시 몇 분 기차이니, 뜨개질 가게에서 뭐라도 사려면 월요일 오전을 노려야 했다.


월요일 아침, 나는 기어이 가게 주인 수잔을 만났다.


아홉 시가 되자마자 가게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말라뮤트를 닮은 큰 개가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왔다. 눈빛은 순해 보였지만, 내 허리까지 오는 의 덩치에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는 나를 쓱 보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을 불러왔다.


예상대로 수잔의 실가게에는 온갖 실이 가득했다. 내가 원하는 사이즈의 코바늘은 물론이고, 꼭 사고 싶었던 헬부른 노란색 면사도 있었다. 가격도 쌌다.


나는 잘츠부르크의 헬부른 궁전을 기억할 수 있는 노란색 실을 꼭 사고 싶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색을 참 잘 써.
특히 노란색이 이뻐요.
맞아 멜크 수도원은 황금빛이 도는 노란색!
헬부른 궁전은 부드러운 노란색!


멜크 수도원
헬부른 궁전


잘못하면 굉장히 촌스러운 색인데, 어쩜 이렇게 딱 알맞은 노란색으로 건물 외벽을 칠해 놓았나 몰라.


수잔에게 헬부른의 색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핸드폰 사진첩에서 전날 오후에 찍은 궁전 사진을 가리키면 되었다. 수잔은 내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면사가 있는 선반에서 산뜻한 노란색 실을 골라서 건네주었다.

운터스베르크에서 본 하늘색 실도 한 뭉치 샀다.


내가 산 실과 바늘


계산을 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여행지마다 실을 하나씩 사고 있어요. 당신 가게와 멋진 개를 기억하고 싶은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물론 이번에도 영어로 말하지 않았다.

수잔은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럴 때는 구* 번역!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국어로 써서 독일어로 바꾼 다음 수잔에게 보여주었더니, 수잔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개를 가리키며) 케이티.
(두 손의 손가락을 쫙 편 다음, 오른손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리며)


아하!

이 개는 이름이 케이티, 나이는 열세 살이구나.


수잔은 케이티한테 손짓하며 앉으라고 했다. 케이티는 뼈다귀 모양을 수놓은 자기 양탄자에 가만히 앉았다. 그리고 내가 사진을 여러 장 찍는 동안 움직이지도 짖지도 않고 얌전히 있었다. 처음에는 케이티만 찍으려고 했는데, 수잔도 다가와서 포즈를 취해 주었다. 어떻게든 케이티 어르신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어깨를 조금 숙여서 나를 보며 웃었다.


수잔과 케이티


수잔의 케이티는 내가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가장 멋진 개였다!


사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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