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헝가리에서 기차를 탈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요

여행의 마지막은 부다페스트였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를 ÖBB(외베베-오스트리아 국영 철도)에서 예매해 두었다. 우리가 오스트리아로 떠나기 전날, ÖBB에서 메일이 왔다. 헝가리 철도청에서 공사를 하는 바람에 마지막 구간은 기차를 대체하는 버스로 이동해야 한단다. 다른 사람들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기차를 탄 후기를 읽어서, 이런 일이 가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기차를 타면서 ÖBB에 신뢰가 쌓였던 터라 어떻게든 되겠지 편하게 생각했다.

오스트리아 철도청에서 온 메일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로 넘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 국경 넘었나 봐요. 문자가 왔어요.

아까 기차표 검사하기 전에 국경 넘었어. 이번에 표 검사한 차장, 헝가리 사람이었잖아.

엄마는 어떻게 알았어요?

이번 차장은 오스트리아 사람보다 무뚝뚝하고 영어를 한 마디도 안 했어.

다섯 시간 동안 기차를 타야 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가방에는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과일과 음료수가 있었다. 운동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고, 콘센트를 찾아 핸드폰도 충전했다.

그라츠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

그러다가 헝가리 시골 마을 어느 역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헝가리 말로 안내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슬금슬금 기차에서 내렸다. 영문을 모르는 외국 사람들끼리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데, 차장이 와서는 플랫폼 건너편에 있는 기차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했다. 차장의 말을 알아들은 어떤 사람이 기차가 고장 나서 옆 기차로 갈아타야 된다고 영어로 말해 주었다. 우리도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옆 기차로 갔다.

금요일이라서 기차에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예약비까지 내고 셋이 함께 앉을 자리를 예약한 보람이 사라졌다. 갈아탄 기차에서는 아무 데나 빈자리가 보이는대로 앉아야만 했다. 겨우 자리를 잡고 기차 출발을 기다리는데 뭔가 찜찜했다.

아 맞다! 내 운동화!

나는 의자 아래에 가지런히 벗어 둔 운동화가 생각났다. 후다닥 뛰어가서 내 운동화를 가져와 숨을 고르는데, 봄의 얼굴이 하얘졌다.

아 맞다! 내 핸드폰!

봄은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전 기차에 갔다가 왔다. 충전선을 연결해 창틀 커튼 뒤에 숨겨둔 핸드폰을 무사히 되찾아온 봄은 그제야 얼굴빛이 돌아왔다.

할부도 아직 안 끝났는데!!!

그렇지! 핸드폰 할부는 중요하지. 나는 봄이 그렇게 재바르게 행동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무뚝뚝하던 헝가리 차장은 뛰어가던 봄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고 한다. 얼른 가서 잃어버린 물건 찾아오라고. 그전에는 기차를 출발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몸짓을 하며.

헝가리 000역

사진-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