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의 모퉁이에 자리한 가게의 한쪽 창에는 물레며 다양한 실 잣는 도구가, 다른 창에는 직접 뜬 크로셰 작품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수잔의 가게
굳게 닫힌 가게 문에는 영업시간을 쓴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토요일과 일요일은 문을 닫고 월요일부터 목요일은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 문을 연단다. 금요일에는 오후에 두 시간 더 영업한다니 감사해야 하나? 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만 장사를 하는 사장님의 패기라니!
수잔의 영업 시간 안내
우리가 잘츠부르크를 떠나는 건 월요일 오후 열두 시 몇 분 기차이니, 뜨개질 가게에서 뭐라도 사려면 월요일 오전을 노려야 했다.
월요일 아침, 나는 기어이 가게 주인 수잔을 만났다.
아홉 시가 되자마자 가게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말라뮤트를 닮은 큰 개가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왔다. 눈빛은 순해 보였지만, 내 허리까지 오는 개의 덩치에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개는 나를 쓱 보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을 불러왔다.
예상대로 수잔의 실가게에는 온갖 실이 가득했다. 내가 원하는 사이즈의 코바늘은 물론이고, 꼭 사고 싶었던 헬부른 노란색 면사도 있었다. 가격도 쌌다.
나는 잘츠부르크의 헬부른 궁전을 기억할 수 있는 노란색 실을 꼭 사고 싶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색을 참 잘 써.
특히 노란색이 이뻐요.
맞아 멜크 수도원은 황금빛이 도는 노란색! 헬부른 궁전은 부드러운 노란색!
멜크 수도원
헬부른 궁전
잘못하면 굉장히 촌스러운 색인데, 어쩜 이렇게 딱 알맞은 노란색으로 건물 외벽을 칠해 놓았나 몰라.
수잔에게 헬부른의 색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핸드폰 사진첩에서 전날 오후에 찍은 궁전 사진을 가리키면 되었다. 수잔은 내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면사가 있는 선반에서 산뜻한 노란색 실을 골라서 건네주었다.
운터스베르크에서 본 하늘색 실도 한 뭉치 샀다.
내가 산 실과 바늘
계산을 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여행지마다 실을 하나씩 사고 있어요. 당신 가게와 멋진 개를 기억하고 싶은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물론 이번에도 영어로 말하지 않았다.
수잔은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럴 때는 구* 번역!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국어로 써서 독일어로 바꾼 다음 수잔에게 보여주었더니, 수잔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개를 가리키며) 케이티. (두 손의 손가락을 쫙 편 다음, 오른손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리며)
아하!
이 개는 이름이 케이티, 나이는 열세 살이구나.
수잔은 케이티한테 손짓하며 앉으라고 했다. 케이티는 뼈다귀 모양을 수놓은 자기 양탄자에 가만히 앉았다. 그리고 내가 사진을 여러 장 찍는 동안 움직이지도 짖지도 않고 얌전히 있었다. 처음에는 케이티만 찍으려고 했는데, 수잔도 다가와서 포즈를 취해 주었다. 어떻게든 케이티 어르신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어깨를 조금 숙여서 나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