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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풍 13화

매미가 남긴 선물

by 자유인

작년 여름의 끝무렵에 에어컨이 고장 나서

AS를 접수해서 수리를 받았다

방문 기사님이 응급처치는 해두었으나

비싼 부품이 고장 났고 십수 년을 썼으니

앞으로 여기저기 다른 곳도 고장을 일으킬 거라며

부품교체를 하지 말고 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하셨다

에어컨을 끄고 작업을 하는 동안

아이스 라떼를 만들어 드렸는데

커피가 너무 맛나다고 하시며

무슨 이유인지 수리비도 출장비도 받지 않으셔서

아이들과 간식으로 드시라고 피자 상품권을

감사의 인사로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수 십만원의 수리비용과 수 백만원의 교체비용을

생각하며 고장의 확률을 고민하다가

얼마 전에 에어컨을 교체했다


새로 에어컨을 설치하러 오신 기사님들이

기존의 에어컨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녹아든 플러그를 보여 주시면서

교체하지 않고 올해에 또다시 에어컨을 켰으면

화재가 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오 마이 갓!!




돌이켜 생각해 보니 플러그가 녹아든 것도 모르고

에어컨을 계속 사용해서 불이 날 수도 있었는데

그런 에어컨의 다른 곳에 고장을 일으킨 것은

한 마리의 매미였다

지난 여름에 헬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내 옷에 붙어있던 매미 한 마리가 날아올라

거실등에 붙었다

가족들이 곤충류를 무서워하고 해충을 퍼뜨릴까 염려되어 에프킬라의 사용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고민을 해보니

그 녀석은

길고 긴 7년을 애벌레로 기어 다니고

고작 7일을 나무 위에서 노래하다가

죽음이 임박해 나무에서 낙하하던 그 순간에

우연히 나무 아래를 지나가던 내 옷에 붙게 되었다

그리고

집까지 따라와서 내가 갑자기 밝은 거실로 들어오니 놀라서 죽을힘을 다해 조명갓으로 날아올라 붙어있는 그 녀석을 보니 나도 모르게

편히 죽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옷에 떨어져서 따라온 것도 인연인데

그냥 거기 붙어있다가 그럴 힘조차 없어지면

스스로 낙하하겠지

그때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자고 생각하고

다음 날 아침에 거실등을 살펴보니 없어졌다

소파아래 협탁아래 다른 방까지 다 살펴봐도

감쪽같이 없어졌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잊고 있다가

이후에 방문했던 에어컨 수리기사님이 배수관에

이물질이 막혀있는 것 같다며 청소를 하셨는데

곤충의 날개와 다리가 나왔다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매미가 죽기 전에 본능적으로 깜깜한 곳을 찾아

작동 중에 문이 열려있는 에어컨 본체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부식된 조직의 일부가 에어컨의

바람에 흡입되어 좁은 배수관에 쌓이면서 막히고

고장을 일으킨 것이었다




매미가 오래된 에어컨의 메인 부품 고장의

주요 원인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플러그 부식을 모르고 계속 사용하다가

화재가 날 뻔했는데

그 녀석의 사체가 배수구를 막아 단순한 고장을

일으키고 덕분에 수리를 하면서 들은 조언 덕분에

구매를 서둘러 결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교체작업 중에 플러그 부식의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마지막 순간에 굳이 그곳으로 찾아들어간

그 녀석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에어컨 교체 후에

주택 화재보험에 관심이 생겨서 가입을 했다

매월 2만원 납입에 5년마다 갱신되고

만기 시 납입금의 90프로가 환급된다

5년 동안 총 120만원을 납입하고 무탈하면

5년마다 100만원을 돌려받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화재 시에는 자기와 이웃의 손해를 배상받는다

안심하고 무탈하게 지내다가

5년마다 환급되는 100만원을

어디에 쓸지 잠시 즐거운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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