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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풍 14화

함께 가는 길

by 자유인

완벽하게 컨디션이 좋은 날을 골라

그분에게 가고 싶었다

그런 날은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폴킴의 노래처럼

햇살도 눈부시고 바람도 좋은 날에

기별도 없이 그냥 그분께 가서 인사를 드렸다




나는 4년 전에 쓰러졌다가

개금백병원에서 회생하였다

제대로 걷기 위해 1년을 재활하고

후유증세를 심리적으로 수용하고

생활을 정리해서 변화된 몸에 적응하는데

3년이 걸렸고

중간에 3번의 수술을 하면서 더 쇠약해졌다


4년 전에 퇴원을 하고 제대로 걷기 위해

재활을 하면서 브런치에 입문을 했을 때

계속해서 글을 읽고

라이킷을 달아주신 작가님이 있었는데

프로필을 살펴보니 개금 백병원에서 오랫동안

교수님으로 계셨던 <한우물> 작가님이셨다

죽어가던 나를 살려 낸 곳에서

평생을 근무하셨던 분이

그 현장의 사선에서 돌아온 나를

온라인의 공간에서 다시 응원해 주고 계셨다

신기한 우연이었다


언젠가 작가님께서 힘들어하시면

나도 작가님을 응원하겠다고 그때 다짐했었다

그때로부터 4년쯤의 시간이 지나고 그분이

몇 개월 전에 쓰신 글에 불편하신 다리의 변형과

그로 인한 통증으로 힘들어하시는 내용을 쓰셨는데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이후에 다시 안정을 찾아가시는 글들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찾아뵙겠다고 댓글을 남겼었다




쓰러지기 직전에

독립출판을 하여 부산의 영광도서에서 판매하던

첫 에세이를 내가 퇴원한 이후에 판매를 중단하고

조금 남은 재고를 가끔 선물용으로만 활용했었는데

내 책을 한 권들고

달콤한 간식을 챙겨서

작가님이 계신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영상의학과가 있는 층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치 마법처럼 사진에서 보았던 그분이

수많은 문들 중에서 첫 번째 문을 열고 나오셨다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을 외운 기분이었다

내 이름을 말씀드리니 바로 알아보셨다


바쁘시면 책만 드리고 오려고 했는데

마침 환자가 없어서 제법 긴 시간 대화가 가능했다

작가님은 내 상태를 확인하시고

필요한 조언들을 깨알처럼 챙겨주셨는데

정작 작가님의 근황은 요즘 어떠신지 여쭙는걸

깜빡했다는 것을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다

진료실에서는

서로 평생의 습관대로 다시 자연스럽게

의사 선생님과 환자의 멘탈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님이

2003년에 큰 시련을 당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작하셨다는 7080 추억의 가요와 팝송을 묶은

CD집과 루왁 커피와 자신의 책을 선물로 주셨다

예전에 내가 온라인에서 구매해서 읽었던

그분의 또 다른 책을 들고 갔는데

그 책에도 자필 서명을 해주셨다

헛돌며 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고장 난 플레이어에

선물 받은 CD를 한번 넣어보았는데

멀쩡하게 돌아가서 조금 신기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그분의 말씀이 생각나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소아마비로 인한 어려움을 겪어서

고통에 익숙해져 있는데

살다가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더 힘들 것 같아요

힘내세요


그분께 내가 작은 위로가 되고 싶었는데

멋진 어른을 만나

오히려 내가 너무나도 큰 응원을 받은

감사한 시간이었다

오고 가는 길에 절정을 지나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는 가로수의 벚꽃도 애잔하게 이쁘고

돌아와서 산책을 하는 고요한 숲 길도 아름다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물음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다


살아가면서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마주함은


소소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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