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를
남편과 함께 늦은 밤까지 보았다
김장하선생님은
진주에서 평생 한약방을 해서 번 돈으로
수없이 많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시고
언론 문화 예술등에 공헌과 기부를 하셨다
그분의 장학생들이
의사 교수 재판관등으로 장성했고
최근에 유명해진
문형배 헌법재판관님도 그분의 장학생이며
스님이 된 장학생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본인은 승용차 한 대도 없이
평생을 걷고 자전거를 타셨다고 하니
성인이나 생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장학금을 받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한 분들이
선생님께 은혜를 갚고 싶어 하면
나에게 갚으려고 하지 말고
세상과 사회에 갚으라고 하셨다
장학금을 주셨는데도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린 사람에게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격려하셨다
장학생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천 분의 일이나 만 분의 일이라도
본받고 싶다고 하신 분은 요리사가 되어
소외 계층의 이웃들을 자기 가게에 초대해서
따뜻한 음식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다
학생 시위를 하다가 옥살이를 한 사람이
부모 형제 대신에 장학금을 주셨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시위를 해서
감옥에 가서 죄송하다고 하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것이
더 큰 일을 한 것이라고 위로를 해주셨는데
그 학생은 나중에 교수가 되었다
한약방의 직원들에게는
시세보다 두세 배 많은 월급을 주시고
이사장으로 계시던 학교의 교사들에게는
늘 소갈비 회식을 시켜주시며
학부모들에게 촌지를 받지 말라고 당부하시고
전교조 교사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한다
작은 가게에 세를 내어주시면서
30년 동안 월세를 올린 적이 없고
코로나 시국에는 그마저도 내리셨다고 한다
그리고
지역의 작은 극단과 신문사를 후원하시고
신인 작가들을 후원하셨다
80세에 60년 동안 일하시던 약방을 그만두신
그분이 한평생을 오로지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것에 전력했으니
남은 시간은
잠도 실컷 자보고 자유롭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지인의 나래이션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돈은 똥과 비슷해서 쌓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골고루 뿌리면 거름이 된다는 명언을 남기셨다
그분에게는
약자와 사회 정의가 신념이고 종교였다
그리고
그분이 일평생 한결같이 실천한 것은
침묵이었고
선생님이 타인을 비난하거나 화를 내는 모습을
70년 지기 지인들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
선생님 지인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많은 노력 했으나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고
앞으로 남은 세월은 정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겠노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자신에 대한 평가는
칭찬도 하지 말고 나무라지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길을 가는 좋은 멘트가 있는데
사부작 사부작 꼼지락 꼼지락 가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엔딩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분의 커다란 헌신도
소소하고 작은 한걸음에서 시작되었고
그 시작이 다음과 그다음의 걸음으로
연결되고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