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경계에서 흔들리다
호주 지붕 위, 나는 아래를 본다.
현장엔 유난히 높은 지붕이 하나 있었다.
늘 그랬듯 습관처럼 생각도 감각도 내려놓은 채 사다리를 기어올랐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마음은 나중에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지붕에 다다르고 나서야 아래를 내려다봤다.
바닥이 까마득하게 멀었다.
순간, 알 수 없는 말들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사장 스티브의 목소리였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욕은 이유를 가리지 않았다.
어지러웠던 건지 고소공포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 위에서 비틀거렸다.
중심을 잃고 떨어지기 직전에 꿈에서 깼다.
오늘도 같은 악몽이었다.
매일 새벽 6시,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오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내게 ‘출근’은 공포의 다른 말이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악몽에서 깨기 위해 세수를 하며 정신을 현실로 돌려놓으려 애썼다.
그리고 머릿속에 항상 네 가지의 단어를 떠올렸다. 영주권, 돈, 경력 그리고 자존심.
하지만 두려움은 나보다 먼저 깨어 있었고 이미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굳어버린 부정적인 감정을 억지로 끌고 차에 몸을 실었다.
신나는 음악으로 기분을 바꿔보려 노래를 크게 틀었다.
그렇게 또 지붕이 있는 현장으로 향했다.
지붕이 있는 현장에 도착하면 항상 차에서 내리기 전 선글라스를 쓰고 마스크를 썼다.
긴장한 내 얼굴을 가리기 위해.
그리고 쳐진 입꼬리와 무표정을 감추고 목소리 톤을 올렸다.
"Good morning! guys. How are we?"
호주에서 지붕 목수 일을 시작한 이후 나는 매일 지붕 위에서 사장 스티브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처음엔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시선을 유지해보려 했다.
나는 실수는 빨리 인정하고 피드백은 곧 성장의 기회라 믿었다.
사실, 내 부족함에 관한 그의 말 중 상당수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는 지붕 목수로만 33년을 일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잘하고 싶었고 더 빨리 배우고 싶었지만 재단, 톱질, 못질... 어느 하루도 실수 없는 날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말투였다.
실수를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스티브의 입에서는 늘 모욕이 먼저 나왔다.
"너한테 주는 임금이 아깝다."
"밑에서 기계처럼 나무나 옮겨."
"너 한 번만 더 실수하면 끝이다."
날이 갈수록 그 말들은 더 거칠어졌고 더 자주 반복됐다.
그 잔소리는 어느새 내 자존심을 조금씩 도려내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파고들었다
평생 거친 일을 해온 호주 중년 특유의 직설적이고 꺾인 말투는 영어를 적당히 하는 내게는 아무리 집중해도 온전히 들리지 않았다.
“미안한데.. 다시 한번만 설명해 줄 수 있어?”
“지금 말한 게 이거 이렇게 하라는 거 맞아?”
몇 번 물어보면 그는 늘 같은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젖히며 한숨을 내쉬고
"망치 잡기 전에 영어부터 배웠어야지."
"밑에 가서 나무나 옮겨 아니면 집에 가던지."
그날의 화풀이도 결국은 내 몫이었다.
내 옆에는 경력 2년 된 호주 청년과 아직 고등학생인 견습생이 있었다.
그들 역시 사장의 말을 자주 못 알아듣고 실수도 잦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그들조차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친구들도 내게 화를 내기까지 했다.
사장은 그들에게는 늘 느긋했고 나에게 돌아오면 내 실수는 물론 그들의 실수까지 들먹이며 험담과 모욕을 늘어놓았다.
나는 어느새 지붕 위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느낌이었다.
그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볼까 싶어 발리 여행에서 사 온 기념품과 맥주를 선물했다.
작은 호의를 건넸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이후 그는 오히려 더 자주, 더 큰 소리로 나를 몰아붙였다
퇴근해도 지친 건 몸뿐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지칠 줄을 몰랐다.
그날의 말, 그날의 기분은 내 그림자처럼 집까지 따라왔고 잠들기 전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길에도 여전히 내 옆에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은 내가 먼저 마음을 먹었다.
“오늘은 참지 말자. 싸울 각오로 출근하자.”
현장에서 타이밍을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모욕적인 말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잠깐 날 쳐다보더니 비웃듯 짧게 말했다.
"그럼 잘하던가."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입을 닫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자 그 뒤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경력을 쌓아야 하고 돈을 모아야 하고 영주권을 따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입을 열기보다 참고 견디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생각과 감정은 사치가 되어가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 지나 나는 혼자 지붕 위에 남아 못질을 하고 있었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현장 근처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는 스티브의 가족들이 내렸다.
아이들과 아내가 웃으며 인사를 하고 스티브는 그들 앞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웃음은 눈가까지 번졌다.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눈빛엔 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을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는 내가 왠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웃음 너머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벽을 느꼈다.
그리고 그 벽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사람으로 대우받고 있는 걸까?
아니면 외국인 노동자라는 기능만 수행하는 존재일 뿐일까?
이건 단순한 사람 차별일까? 그냥 흔한 갑질일까? 아니면 인종 차별일까?
그 모호한 경계 위에서 나는 스스로를 붙잡으려 애쓴다.
호주 지붕 위에서, 나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