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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금수저 친구를 소개받았다

부를 과시하는 청년과 이탈리안 셰프, 하노이

by 석탄


여행지의 우연한 만남은 낭만일 수도, 위험일 수도 있다?





길에서 마주치는 영혼 없는 미소에 더 이상 내 시간과 감정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베트남 하노이의 이른 아침.

숙소에서 간단히 차려주는 조식을 먹은 뒤, 카메라 하나 들고 호객행위가 없는 골목길로 나섰다.

하늘은 흐릿했고 거리는 전날 저녁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많이 없는 한적했다.

아무 생각 없이 골목의 자연스러운 아침풍경을 찍고 있었는데 뒤에서 영어로 누군가 등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이야? 일본인이야?"


뒤돌아보니, 30대 중반쯤? 얼굴은 묘하게 이웃집 형 같은 친근한 느낌의 베트남 남자가 미소 지으며 서있었다.

그의 손을 보니 본드나 과일이 든 바구니, 물건이 들어있는 가방도 메고 있지 않았다.

나에게 팔 물건이 없다는 뜻이다.

과일 장수 아주머니와 본드 청년을 만난 뒤로 만남에 대한 경계심이 생겼지만, 그의 첫마디는 다른 사람들의 영업 멘트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특히나 그의 영어 발음은 또박또박 귀에 박히듯 유창했고 말투는 조용하니 부드러웠다.

그는 자신을 '톰'이라고 불러달라며 웃으며 자기소개를 줄줄이 했다.

톰은 다낭 출신이지만 1년 전 하노이로 이사와 정착했고 지금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을 한다고 했다.

그의 비어있는 손과 자기소개에 경계심이 조금 풀렸다.

나의 영어는 짧지만 아는 단어로 내 소개를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톰은 축구 감독 박항서, 손흥민, 케이팝, 드라마 이야기까지 꺼냈다.

20대인 나보다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관심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톰과 10분 정도 대화를 했을까.

나와 이야기를 오래 나누고 싶다며

"차 한잔 어때? 베트남 전통 카페 갈래?"

라고 나에게 정중히 물어봤다.


사실, 조금 망설였지만 돈을 요구하는 느낌도 아니었고 그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다.

톰은 친근했고 딱히 수상하거나 위험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외진 골목으로 데려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혹시 몰라 물어봤다.
“카페까지 얼마나 걸려?”

“2분 거리야. '마담'이라는 카페야. 바로 앞이야.”

현지의 일상을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었던 나는 결국 톰을 따라갔다.



예상외로 카페는 깊숙한 골목 안에 있지 않았다.

평소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 근처 카페에 우리는 금방 도착했다.

간판도 없는 몇 평 남짓한 노포 카페였다.

빨간색, 파란색에 작은 목욕탕 의자 몇 개와 작은 테이블 두세 개가 카페 앞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담'이라 불리는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전통 차를 내려주는 오래된 동네 찻집 같았다.

톰은 아주머니와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았고 나에게 빨간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조금 어색했지만 이미 차를 마시고 있는 현지인들 틈에 나도 섞여 앉았다.

톰은 베트남 사람들은 아침에 따뜻한 전통 차를 마신다며 내게 한 잔을 주문해 줬다.

작고 투박한 잔에 담긴 따뜻한 전통 차.

처음 맡아보는 현지의 그 향과 온도에, 순간 여행의 기분이 확 올라왔다.

‘내가 지금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 아침에 전통 차를 마시고 있네?’
마치 다큐멘터리 속에 들어온 프로그램 진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현지 아저씨들의 폭풍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아는 단어 몇 개로 대답을 이어갔다.

말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통하는 것 같았다.

낯선 나라의 낯선 골목 한 카페에서 친구가 생긴 듯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차를 마시며 톰은 한국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이것저것 자세히 물어봤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나는 그의 질문을 여러 번 되묻기도 했고 어쩌면 동문서답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런 대화가 싫지 않았다.
말이 조금 엇갈려도, 어색한 웃음이 나와도 그 순간만큼은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진짜 베트남 한복판에서 현지인들과 진한 전통차 한 잔을 함께 마셨다.

대화를 나누던 톰은 갑자기 전화기를 꺼냈다.


“친구 한 명 소개해줄게.”


그는 웃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톰은 짧게 베트남어로 전화를 하더니 "곧 친구 올 거야" 하고 웃으며 말했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캐주얼한 옷을 입은 청년이 작은 흰 강아지를 안고 나타났다.

그 청년은 인사도 없이 자연스럽게 마담에게 차를 주문하더니 내 옆에 앉았다.
나를 쳐다보지도 웃지도 않고 그 흔한 악수도 없었다.

그 친구 첫인상은 좀처럼 보기 힘든 껄렁한 인상이었다.
그는 바로 톰과 베트남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내쪽으로 갑자기 고개를 돌려 아래위로 보더니 방금 처음 본 나에게 툭 던지듯 물었다.
“신발 얼마야?”

“한 70달러쯤?” 하고 대답했더니

“췹췹(싸다. 싸다.)”
손사래를 치더니 그 친구는 자신이 신고 있는 신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신발은 발렌시아가야."

"발렌시아가? 그게 뭐야? 브랜드 이름이야? 모델명이야?"


나는 브랜드엔 영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이키, 아디다스 정도나 알지.

그 외엔 전혀 모르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친구는 답답하다는 듯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구글에 검색해서 신고 있는 신발 가격을 보여줬다.

"1000달러짜리야."

톰은 옆에서 "얘, 하노이 부자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묻지도 않았는데 그 친구는 자기 옷차림을 하나씩 설명했다.

"이 모자는 700달러, 티는 2000달러. 이 시계는 롤렉스야. 내 차는 람보르기니, 세 대 있어."

또다시 검색해서 가격을 보여줬다.



그 친구는 모자, 티셔츠, 시계, 반지, 목걸이까지 모두 비싼 명품이라며 자랑했다.

하지만 사실 감흥은 없었다.

하노이 길거리엔 짝퉁 명품이 넘쳐났고 그가 보여준 것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는 SNS에서 본 듯한 사진들을 계속해서 나에게 보여줬다.

람보르기니 핸들 위에 얹힌 롤렉스 그리고 손에 들린 두툼한 돈다발.

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물었다.

"멋있다! 그러면 나 람보르기니 태워줘!"

“오늘 저녁 파티 있어. 내 차도 보여줄게. 6시에 여기서 봐.”

그렇게 짧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가자 톰도 갑자기 가봐야겠다며 급하게 떠났다.

뭔가 수상했지만 이상하게도 호기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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