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리고 내 병명(불안 및 우울장애, PTSD)이 시작된 시기는 중학교 이후의 시간부터였다. 너무나 어린 나이였기 때문일까. 너무나 순진했기 때문일까. 나는 바보같이 내가 당한 일(성폭력)이 무엇인지 한동안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말을 고지곧대로 따랐다.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마. 그 사람이 내게 했던 충고였다. 우리만 알고 있자고. 엄마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손가락까지 걸고 했던 약속. 지금 생각해보면 피가 거꾸로 솓는 그때 그 약속. 그 행동.
우리집은 가족 행사가 많았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 많았는데 나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당연히 가족행사에 따라다녀야만 했었다. 그날도 그랬다. 가족행사 하면 뭣인가. 가족들이 모여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지 않는가. 우리 어린 친구들에게는 썩 그리 반가운 모임은 아니란 말이다. 언니 오빠와도 나이터울이 컸던 나는 친척들과도 그렇게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날 나는 작은방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불속으로 누군가 들어온 것은. 맞다. 그것은 친척 오빠였다. 우리 재미있는 게임 할까? 오빠가 재미있게 해줄게. 오빠는 심심해서 혼자 누워 있는 나에게 다가와 달콤한 말로 나를 꼬득이고 있었다. 재미있을거야.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그때 그날. 나는 내 몸에서의 이상한 기분을 경험한다. 그 사람이 내 몸을 더듬을때마다 간지러움을 느꼈던 것인데 그 간지러움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놀아주겠다고 달려드는 오빠를 밀쳐내기는 커녕 좋다고 낄낄 웃었던 기억에, 이후의 나는 내 자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기 시작한다. 왜냐고? 나도 좋다고 웃으며 놀았으니까.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내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인지하게 된 순간부터는 정신줄을 놓아버릴것만 같았다.
아동 성폭력은 아직 어리고 보호해야 할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성인 성폭력과 다른 점이 많다. 먼저, 아동은 성인을 이겨낼 신체적인 능력과 피해상황이 발생했을때 이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성폭력이 자신에게 미치는 감정적인 영향 역시 잘 이해하지 못하고 말이다. 또한 성폭력의 피해에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잘 못 생각할 수 있는데, 그래서 가해자가 비밀을 지키라고 강요하면 이에 순응할 수 있어 피해사실을 알리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어린이는 성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기 때문에 부모는 물론 주위 사람들의 각별한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날 나에대한 관심은 나를 데리고 놀고야 말겠다는 오빠에게만 쏠려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 그 누구에게도 쉽게 발설하지 못할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