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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Apr 22. 2024

13시간 30분이 걸렸다

04.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자동차로 고작 7분밖에 떨어지지 않은 코앞으로 이사를 가는 데 하루를 꼬박 털어 넣을 줄 알았다면 차라리 이틀에 걸쳐 해달라고 부탁했을 텐데. 원체 업체 쪽에서 하루면 충분하다고 기세등등 힘을 주길래 철석같이 믿어 버렸다.


아침 9시부터 포장 작업이 시작된다는 예고대로 정말 9시가 되자 띵동 벨소리가 울렸다. 웬만해선 좀처럼 약속 시간에 오지 않는 느긋한 인디언 타임을 예상했던 나는 오히려 재깍재깍 정시에 도착한 로컬 이사 업체에 살짝 감동까지 받았다. 청년과 중년이 뒤섞인 8명의 앙상하고 가냘픈 인부가 집안으로 밀려들어와 침대 프레임을 분해하고, 식탁 다리에서 나사를 빼고, 티비에 뽁뽁이와 담요를 둘렀다. 곧 이 방 저 방에서 카튼 박스에 테이프 붙이는 소리가 쩌억 쩌억 요란하게 들리더니 12시 반까지 패킹 작업이 이어졌다.


나는 전쟁터에 나간 선봉장처럼 한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커튼은 집주인이 달아놓았으니 챙기지 마세요. 냉장고 안에 음식은 제가 따로 챙길 테니 빼지 마시고요. 소파가 분리되지 않는다고요? 그럴 리가요. 잘 보시면 하단에 훅이 있을 거예요. 밀려오는 질문에 끊임없이 대답하며 지시사항을 전달하다 보면 어느새 사방팔방 펄럭이는 먼지 속에 목은 칼칼해 오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배에서는 꼬르륵 비명이 울린다.


12시 반부터는 아직 마치지 못한 주방 짐을 제외하고 나머지 박스를 빼내기 시작했다. 인도에서는 이사할 때 사다리차를 사용하지 않는다. 언제나 엘리베이터를 사용해 짐을 옮기기 때문에 패킹만큼이나 상차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대단지의 경우 주민이 아닌 택배나 배달 기사 등 외부인이 사용하는 서비스 리프트(service lift)가 따로 있어서 이삿짐을 옮길 때도 마찬가지로 서비스 리프트를 사용해야 한다.


큰 트럭 한 대와 작은 트럭 한 대에 나눠 실은 짐이 새 집을 향해 출발한 시각은 오후 4시 30분. 생각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워낙 가까운 거리라 괜찮겠거니 했다. 단지 앞에 트럭을 운 뒤 30분 정도 짜이 타임을 달라는 인부들에게 알았다고 끄덕이며 나도 한숨을 돌렸다. 잘 쉬고 트럭 앞에 다시 모였을 때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무조건 주차장으로 가서 짐을 하차한 후 서비스 리프트를 이용해 옮겨야 한다는데 트럭이 높아 주차장에 진입할 수 없었다. 이사업체는 1시간 뒤에 작은 트럭을 보내줬지만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거리가 꼬불꼬불 만만찮아 결국 7시가 넘어 첫 번째 박스가 들어왔다.


밤 9시 30분이 되어서야 모든 카튼이 집안에 도착했다. 원래부터 계약 조건이 큰 짐만 열어서 조립해 달라는 것이었지 상자를 모조리 까서 정리하라는 아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아마 날밤을 새도 모자랐겠지만 침대, 책상, 책장, 소파, 티비, 냉장고, 세탁기, 스타일러 등 굵직한 가구와 가전만 원상복구를 시켰다. 인부들도 얼른 돌아가고 싶어 궁둥이가 들썩거렸고 나 역시 얼른 보내고 소파에 털썩 눕고 싶어 몸이 달싹거렸다.


밤 10시 30분, 들개 무리의 우렁찬 목소리가 컹컹 울려 퍼지는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인부들은 돌아갔다. 현금이 없으면 계좌 이체도 괜찮으니 팁을 달라는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이미 이사비용을 평균 인도인의 2배를 냈으니 당신들 매니저에게 꼭 받으라는 말로 보냈다. 흔쾌히 알았다며 집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찡하기도 했으나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고맙다는 형식적인 말을 외치고 묵직한 문을 꽈악 닫았다.


마침내 끝이 났다. 바짝 당긴 마음이 느슨하게 풀리며 눈꺼풀이 와르르 내려앉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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