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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전ING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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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냉이씀바귀 Mar 22. 2022

화분 하나

適來는 夫子時也요 適去는 夫子順也    < 장자> 내편 양생주 

마침 세상에 온 것도 때를 얻은 것이요, 마침 세상에서 떠난 것도 때를 따를 뿐이다.  

                        

어느 순간 베란다에서 키우던 화분들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 베란다 바닥의 물 빠짐이 원활하지 않아 화분에 물을 주고 나면 물을 쓸어내리느라 하루 종일 바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화분들의 무질서한 배치 사이로 청소를 하다 보면 내 엉덩이로 화분을 깨뜨려 일은 더 커지고. 그러면 청소시간은 더 길어지고 허리는 부러질 것 같고. 몇 년간 그렇게 반복하다가 그 고리를 끊고 싶어 다 치우리라 결심했다. 나누고 버리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시간이 지나 이사를 하게 되었고 베란다도 없어 화분은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근데 여기저기에서 마음에 드는 화분들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그동안 접했던, 가졌던, 그런 국적 없는, 근본 없는, 빤질빤질한 화분이 아니라, 이태리에서 건너온 토분이란다. 요즘에는 국산이 최고지만, 흙이 달라서인지 화분에서 풍기는 색감들이 신선했다. 좀 보잘것없던 식물들도 그 화분에 담기니 아주 그럴듯했다. 마음이 눈길이 자꾸 거기로 갔다. 그 후로 꽃집 순례를 다녔다. 꽃집만 있으면 차를 세우고 들어가고, 산책하다가도 들리고, 멀리 있는 남사화훼단지도 가 봤다. 어느 날 피자집 옆에 있는 꽃집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녀석을 봤다. 추운 겨울, 가게 밖에 버려진 듯 다른 화분들 몇 개와 같이 있었다. 버려진 듯 아닌 듯. 그날 이후 여러 날을 거쳐 지켜봤다. 그에 대한 내 마음이 변함없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담겨있는 토분과 식물도 잘 어울리고, 마음에 특히 드는 이유는 엉성한 모습과 더불어 조그마한 잎에서 한겨울인데도 빨갛고 노란색을 내는 것이 참 묘했다. 꽃도 아닌 잎이 이런 색깔을 내다니, 대단한데? 버린 듯한 허접한 걸 왜 사는지 꽃집 아가씨는 이상해 했겠지만, 나는 거실 한쪽에 두기로 했다.


봄이 오고 있었다. 좋아했던  색깔들이 서서히 없어지고 언제  색을   있을까 기다렸다. 애를 태우듯 가끔 나타나려다 없어지곤 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색깔은 볼 수가 없었다. 뭘까. 무슨 이유로 그럴까? 환경이 다른 ? 추운 바깥 날씨가 아니라서? 바깥에서 안으로 들이면 더욱 찬란한 색이 날 줄 알았는데... 춥고  기운이, 어렵고 고된 시간들이 묘한 색깔을 피우게 하는구나. 사람들에게도 춥고 힘든 시간들은 버릴 시간들이 아닌 거구. 그건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들이구나.  모든 시간들이 헛된 시간이 아니구나. 그리고 마침 그때 거기에 내가 있었던 것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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