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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전ING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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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냉이씀바귀 Mar 20. 2022

손으로 터득하면서 마음으로 느낄 뿐

리듬을 찾아서

『장자』외편의「천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나라 환공이 대청 위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수레바퀴장이인 편이라는 사람이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다. 그가 환공에게 물었다.

- 읽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 성인의 말씀이다.

- 성인은 살아 계십니까?

- 이미 돌아가셨다.

- 그렇다면 읽고 계신 것은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이군요.

- 무엄하다. 한갓 수레바퀴나 깎는 놈이 이러쿵저러쿵 하다니.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며 죽여 버리겠다.

-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미루어 말씀드린 겁니다. 수레바퀴를 너무 여유 있게 깎으면 헐거워지고 너무 꼭 맞게 깎으면 빡빡하여 들어가지 않습니다. 너무 여유 있게도 너무 꼭 맞게도 깎지 않는 것은, 손으로 터득하면서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도 무언가 기술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식에게 가르쳐 줄 수도 없고 자식이 저에게 배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이 되도록 수레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도 말로 전할 수 없는 무엇인가와 함께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가 아니겠습니까?               <낭송장자>


10년 전쯤 아주 우연히 도자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도자기는 내게 평가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베란다에서 혼자 즐기는 나만의 도자기 손작업의 시간이 너무 좋았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오기도 하고 너무 잘 다듬었지만 가마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나오기도 해서, 내가 관여할 수 없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도 했다.

어느  누가 봐도 좋은 작품이 나온다.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은  아니라, 보기에도 정형화되지 않은  모양을 그리고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말로  수가 없다.

도자기 물레를 돌려 본다. 중심이 잘 잡히지 않는다. 중심 잡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물레는 중심이 안 잡히면 모든 게 허사구나. 물레와 흙과 나 사이의 리듬을 찾지 못했다. 오랫동안 물레에 대한 잠정적 휴업에 들어갔다. 나는 주로 손작업을 하지만 물레에 꽂힌 사람은 물레만 돌린다. 그들의 모습을 나는 지켜만 본다. 그들의 솜씨가 점점 좋아지는 것을 지켜만 본다. 오랫동안.

많은 시간이 지났다. 1년 전쯤, 어느 날 목공 작업이 해 보고 싶었다. 나는 시골의 '시'자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큰딸의 독립 후 시골 생활을 꿈꾸게 되었고 새삼스럽게 좋아하는 것들은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활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연장도 좀 사용할 줄 알고 나무도 만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공은 먼저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수치로 나타내지 않고서는 도무지 출발선에서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도 기계를 좀 알아야 하는데 나는 기계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상상력의 빈곤인지 물건이 만들어져야 어디서부터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 미흡한지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다작으로 내 느낌을 찾아가는 편이라 만든 물건들은 꽤나 많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마구 달려들어 그것에 부딪히는 스타일이다.

근데 신기한 일은 목공을 하고 나서 도자기의 물레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안 잡히던 물레의 중심이 좀 잡히고 굽도 깎을 수 있게 되었다. 물레와 흙덩이와 나. 우리 셋 사이의 말로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느껴지는 것이다. 신기하다. 시간만 보낸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간 속에 든 그 무엇이 우리 사이의 리듬을 찾게 한 것이다.

시간. 너는 도대체 뭘까? 시간은 도대체 뭘까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고 뭘까 궁금해하는 것이고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고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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