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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전ING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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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냉이씀바귀 Mar 21. 2022

어질어질하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루쉰’    


                            


     나는 번역이 창작보다 쉽다고 여겼다. 적어도 구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번역을 해보니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명사 하나 동사 하나를 찾아내지 못할 경우,

    창작할 때는 회피할 수 있지만 번역은 그럴 수가 없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때까지 생각해내

    야만 한다. 머릿속에서 급히 열어야 할 상자의 열쇠를 찾는 것 같다.

         『차개정잡문 2집』 「제목을 짓지 못하고」

     

루쉰의 이 문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 줄곧.

 문장 속에 있는 ‘어질어질하다는 표현,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다. 내가 사는 세상도 나의 공부도 어질어질하기만 하고, 어질어질할 때까지 찾는 루쉰의 태도도 오래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쉰의 많은 사진 중에서는 1933년에 노동절에 찍었다는 사진이 특히 마음에 든다.  피웠을 담배도 보이고 그때는 조끼를 안으로 넣어 입는 것이 트렌드였나 하는 생각에 우습기도 하고,  병으로 수척해진 그의 얼굴과 조끼가 바지 안으로 들어갈 정도의 가냘픈 몸이 보여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사람들은 보통 루쉰를 「아Q정전」이나 「광인일기」로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가 소설가로 기억하는 루쉰는 처음에, 창작은 생각도 못했고 관심을 둔 것은 오직 소개와 번역이었다.

1902년 루쉰는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가게 되었고,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준 헉슬리의 저작을 번역한 옌푸의「천연론」에 받은 번역의 감동을 잊지 않아 일본에서 처음 글을 쓸 때에도 번역소설로 충분히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친구 쉬서우창이 1903년 창간한 <절강조>에 그가 발표한 글들은 모두 번역물들이었다. 그중 첫 번째 글은 「스파르타의 혼」으로 개작한 번역소설이었고 주인공은 장렬하고 감동적인 여인이었다. 또 다른 작품은 「애진」으로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일부 발췌 번역한 것으로 속세의 풍진 속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연약한 존재의 주인공이다.

루쉰는 처음 글을 쓸 때에는 적어도 구상이 필요 없기 때문에 번역이 창작보다 쉽다고 여겼다. 그러나 1929년에 이르러 번역은 변변찮은 창작보다 어렵지만, 신문학의 발전을 위해 효과적이고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말한다.

‘어질어질해진다’는 표현으로 번역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을 보니 루쉰에게는 자기 마음대로의 창작이 오히려 쉬운 듯하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글들이 좀 더 이해가 간다. 자기만의 구상으로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그의 글. 그래서 그토록 우리에게 해석의 어려움을 주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를, 그의 글을 파악한다는 것은 어쩌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그 어떤 것도 그 사람이라고, 그 사람의 전부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이기에. 그럼 그에게 번역이 아닌 창작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나의 글은 저절로 솟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짜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듣는 사람은

    겸손하다고 오해하곤 하지만 정말이다. 나는 할 말도 없으며 쓸 글도 없다......다만 알고 지내던 사람의 희망에 따라 내가 뭔가를 좀 쓰기를 바라면 그때마다 뭔가를 썼을 뿐이다. 또 그다지 바쁘지도 않았다......

    누가 시작할 때 사람들의 대단원을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아Q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의 장래 ‘대단원’조차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데 말이다.

             『화개집 속편의 속편』 「아Q정전을 쓰게 된 연유」


‘짜낸다’는 그의 고백을 읽어보면, 글을 쓰는 것이 그에게도 고민되고 고통스러웠나 보다. 그러나 루쉰는 그것조차도 받아들이고 즐겼을 것이다. 아마 읽고 또 읽어서, 쓰고 또 쓰는 일 말고는 특별한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읽고 생각하고 쓰다 보면, 그의 생각들이 그의 글들이 막 달려갔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은 내일도 모르는 우리의 대단원을 예측할 필요도 없으며 고민에서 멈추지 말고 그냥 많이 써야 한다는 생각만이 든다. 루쉰는 많은 작품들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 내용이 빈약하다고, 자신은 재능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 재능이 있어 ‘저절로 솟아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온몸으로 ‘짜내는 것’이라고.


         ‘백묘’에는 어떠한 비결도 없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눈속임과 정반대의 논조, 

즉 이런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진의(眞意)가 있을 것, 분식(粉飾)을 없앨 것,

     장난 덜 칠 것, 그리고 잘난 체하지 말 것.

        『남강북조집』 「글쓰기 비결」  

   

‘잘난 체하지 말 것.’ 루쉰의 글쓰기에 대한 많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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