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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전ING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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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냉이씀바귀 Mar 23. 2022

지혜는 마치 노년이 오는 것처럼 온다.

프랑수아 줄리앙의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

욕망의 조급함 이후 자신의 계획을 사물에 강요하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제 사람들이 도래하도록 내버려 두는 시간이 있다고 몽테뉴는 말하고 있으며, 이 마지막 시도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사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 두기 시작하는 시간이 있다고 적고 있다. 지혜 그 자체가 도래한다. 지혜는 마치 노년이 오는 것처럼 온다. 자기 스스로 그러함에 의해서 지혜는 전적으로 홀로 도래한다......

 만일 지혜가 흐르는 시간 도래하는 노년의 결과라면, 사람들이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수용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사물의 다른 모습인 욕망을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사물을 단순히 그것이 오는 것으로 취하는 것이다. 더 이상 사물을 그것의 발생 속에서 판단하지도 않는다. 즉, 발생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단지 지나가게 만드는 것을 '실현하는 (깨닫는)'것이다.            

지혜에는 개인적 시간이 있는 것처럼 역사적 시간도 있으며, 적어도 지혜가 말하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자기’는 공허 속에 있고, ‘자기’는 열려있다. ‘지적으로 예민한’, ‘예민하게 지적인’이라는 것은 다양한 것에 열려 있는 하나의 자기이며, 그것은 각각의 그러함의 ‘그토록 개별적인 것’에 예민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험'의 자기인 것이다.....

지혜의 속성은 발화체 속에서는 너무나 빈약하며, 따라서 기대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혜의 속성은 계속해서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는 그것의 평범함 속에 있기 때문에, 지혜는 모든 것을 소통시킬  있는 (평등한) 천부적인 평평함과 조우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해 가능한 것이 된다.


이 글을 읽고 '지혜는 마치 노년이 오는 것처럼 온다'라는 구절에 눈이 번쩍 뜨였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젊었을 때는 지혜로울 수 없고 철학자가 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면 오래된 물건, 오래된 책을 골동품, 고전이라며 다 좋아하는데, 오래된 사람인 늙은이는 왜 안 좋아할까.  

<장자> 내편의 덕충부에 있는 글을 읽고 나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중니가 말했다. 제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새끼돼지들이 죽은 어미돼지의 젖을 빨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조금 있다가 깜짝 놀라서 모두 그 어미돼지를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어미돼지의 시선이 자기들을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며 어미돼지가 본래의 모습과 같지 않았기 때문일 뿐입니다. 새끼돼지가 어미를 사랑하는 것은 그 형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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