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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우린 모두 사장님들이었다.

폐업 소상공인을 위한 취업교육을 마치고

by 정현미

한낮의 나른한 오후, 여섯 명의 남녀들이 들어서자 한산했던 카페가 삽시간에 왁작지껄, 수다스러운 분위기로 돌변했다. 우리는 각자 음료를 주문한 다음, 비어있는 자리들 중 비교적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만난 지 겨우 4일째, 너나없이 이제 막 알게 된 상대방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주고받는 대화에서나마 서로에 대한 과거 흔적이나 삶의 실마리를 찾느라 우린 주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음료가 나오자, 삼삼오오 해오던 대화를 정리하고 각자 간단한 소개에 들어갔다. 30대에서 60대까지 , 연령도, 성별도, 직업도 다양했던 우리는, 모두 얼마 전까진 각자의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사장님들이었다.




작년 12월 말, 남편과 함께 고용복지센터에 들른 건 본격적인 실업탈출을 위한 우리 부부의 첫 몸부림이었다. 좀 더 효율적인 실업 교육을 받기 위한 자격심사와 취업에 대한 상담을 받던 중, 여기저기에 꽂혀있던 전단지를 발견하곤 도움이 될까 싶어 종류별로 한 손 가득 뽑아 왔었다.


'희망 리턴 패키지'

생소한 이름의 한 전단지에 눈길이 닿았다. 다름 아닌 폐업 소상공인을 위한 재취업 교육에 관한 홍보지였다. 주어진 교육을 수료하면 일정 금액의 수당까지 지급한다길래 전화로 상담을 하고, 올해 초로 예정되어 있다는 교육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3월 이후부터 장소와 시기를 타진한다며 드문드문 연락이 오더니, 4월 초순쯤 담당직원인 듯한 분에게서 직접 전화가 왔다. 가까운 곳에 자리가 마련되었다며 참석 전, 온라인 교육 5시간을 꼭 이수해 놓으라는 특명이 떨어졌고, 4월 말이 되어서야 4일간 진행되는 교육에 참석할 수 있었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폐업한 지 5년 이내이거나 폐업 예정인 소상공인들이 취업으로 리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부위탁 재취업 프로그램이었다.

13년 이상 운영하던 학원을 폐업한 것이 2019년, 12월이고 보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교육 혜택이 올해로 마지막이란 사실을 상기시키던 상담사의 목소리가 부랴부랴 신청을 서두른 이유이기도 했다.

4일 동안 총 20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자세한 교육 일정을 알지 못한 채 참석한 나는, 첫날 교육이 10시에서 4시 반까지 이어지는 걸 보고, 잠시 망연자실했었다.


인원은 총 10명으로, 무슨 정해진 수순처럼 첫날은 옆 사람과 안면을 텄고, 둘째 날부턴 중년 여성들의, 예의 그 친화력으로 알음알음 한 둘씩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는 과정을 거쳐, 영 숫기가 없는 사람을 제외하곤 어느새 모두 하하 호호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해 있었다.


교육에 참석한 분들은 연령과 성별뿐만 아니라 직군도 다양했다.

학원, 식당, 카페, 옷가게, 카센터와 세차장에다, 밀키트를 1년남짓 운영하다 폐업한 3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의 여사장님도 있었다.

지역은 또 어떤가? 집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는 나는 완전 행운아였고, 창원, 마산에 사시는 몇 분을 제외하곤 북면, 김해, 진영, 양산에 이어 진주에서 온 부부 사장님도 계셔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열의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교육 내용은 이전에 경남 여성 새로 일하기 센터에서 진행했던 것들과 대동소이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잃었던 기운과 긍정의 에너지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 곧이어 자신을 탐색하는 과정들이 이어졌다. 자신의 성격유형을 찾는 Holland 검사부터 자신과 맞는 직업군을 알아보는 적성검사들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취업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들을 소개해 주었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기, 면접등 현 취업시장의 전반적인 흐름과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에 대한 교육이 4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유익한 내용들이었지만 오랜만에 4시간 이상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려니 몸 여기저기가 뻐근해 오고 집중력 또한 흐트러졌다.

노화에 접어든 육체의 한계인지, 간절함이 부족한 건지, 이번 교육은 나 자신의 나태함을 또 한 번 깨닫게 되는 자기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마지막 날,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이대로 헤어지기가 아쉽다며 교육이 끝난 후 근처 카페에서 짧은 모임을 가졌다. 참석한 이는, 바쁜 분들을 제외하고 보니,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이었다.




각자 앞에 놓인 음료를 마시며 가벼운 신변잡기적인 농담에서 시작한 우리들의 대화는 조금씩 그 깊이를 더해갔다.

각자의 과거사와 앞으로의 포부나 희망 사항을 거쳐, 다양한 연령대인 만큼 세상을 인식하는 세대 간의 시각 차이로 열띤 논쟁을 벌이다가 결국은 녹록지 않은 시대유감으로 귀결되었다.

혹자는 취업으로, 성공에 단맛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재창업으로, 그도 저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은 여전히 나아갈 길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어지긴 전, 일시적 모임이 끝난 후 예의상 치러야 할 통과의례처럼, 우린 단톡방을 만들며 서로 연락하자며, 지켜질지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기며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달랬다.


모두들 긴 시간 몸담았던 생업과 결별하고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새로운 인생의 항해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이미 따놓은 자격증으로 요양보호사로, 또 중장비 기사로의 취업을 앞두고 있었고, 누구는 과거와 비슷한, 또는 전혀 새로운 분야로의 창업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지 오래, 거기다 수명 또한 길어진 시대에 우린 얼마나 많은 직업을 갈아타며 살게 될까? 아마 우리 자녀들 세대는 이보다 훨씬 더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탐색하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를 찾는 과정이 좀 더 일찍 선행되어야 할 필수과정임을 이미 뼈저리게 느끼지만 우리네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미래를 살아갈 현재의 아이들은 여전히 시험위주의 과목에만 치중하며 자신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무시한 채 연봉이 높은 것만을 직업의 최우선 요건으로 강요받으며 직업 선호도가 한쪽으로만 쏠리는 기형적인 현상이 만연하다.


얼마나 더 시행착오를 거쳐야 자신에게 맞는 직업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올까?

여기엔 간단한 질문이 무색하리만치 복잡한 요소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같은 시대의 걸출한 영웅이 등장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명쾌한 해석으로, 긴 세월 동안 풀지 못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리는 방법으로도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게 교육문제이고 보니, 오늘, 나 자신에 대한... 더 나아가 자녀들에 대한 나의 한숨은 더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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