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고용지원청에서 주관하는 국민취업제도로 '커피 바리스타 2급 자격증 취득과정'을 마친 지 한 달 남짓 지난 5월 중순, 나는 내친김에 연이어서 2차 훈련 과정에 들어가기로 했다. 1차 교육과는 2주 남짓 텀을 두어야 한다는 규칙에 맞추어, 사전에 전담 직업상담사와도 논의한 사항이었다.
당일 아침, 오전 9시에 첫 수업을 시작하는 '수제청과 디저트 및 라떼아트' 과정을 듣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나는, 모처럼 여느 평범한 가족들 속 아내며 엄마처럼 식사준비를 하느라 분주한아침을 맞이했다.
하지만 몸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전 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카페 알바를 하느라 8시간 동안 서서, 그것도 완벽주의를 표방하는 사장과 함께 일 하느라 체력이 고갈되었는지, 다음날을 생각해 일찍 잠들었는데도 컨디션이 영 회복되지 않았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가족이 먹을 아침밥과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싼 후 부랴부랴 짐을 챙겨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5월부터는 남편도 취업교육을 신청한 터라 오전 9시 30분부터 5시 반까지 종일 이어지는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우린 각자 따로 움직여야 했다.
20여 년 전, 1종 면허를 따고도 직장이 가까운 탓에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거나 남편이 데려다주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인지, 난 이 나이 먹도록 운전에 젬병인 뚜벅이신세가 되어 있었다.
2차 교육을 받기로 한 곳이 집에서는 꽤 떨어진 거리였지만 수제청을 하는 곳이 그곳뿐이기에 부득불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마산 학원까지 한 번에 가는 노선이 있어서 나름 넉넉하게 40분 정도 여유를 둔답시고 오전 8시 20분 버스에 올랐다.
아뿔싸, 그런데 출근 시간과 학생들 등교시간이 겹친 탓인지 모든 정류장에 다 정차하는 것까진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신호는 왜 그리 막히는지...
노선이 빙 둘러가는 것을 감안하고라도 30분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창원 시내를 벗어나는 데에만 거진 30분이 소요되었다. 5월에 급하게 잡힌 여행 일정으로 이틀 정도 수업을 빠져야 하는 걸 감안하면 총 20일간의 수업에서 80% 출석률을 채우려면 그 외의 지각이나, 조퇴, 결석은 금물이었다.
수업 시작 시간인9시를 10여분 정도 남겨두자 속이 바짝 타들어 갔지만 내심 동요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까짓것 지각이나 조퇴는 3번이 되어야 결석 하나로 치니 오늘은 그냥 지각한다고 봐야지, 뭐.'
마음을 다스리며 또다시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으려니 막 마산으로 접어든 버스에 갑자기 속력이 붙기 시작했다.
어쩌면...
제 시간 안에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희망으로 나는 미리 하차할 준비를 하며 가방끈을 단단히 고쳐 잡았다. 마침내 목적지 앞에 정차한 버스 문이 열리자,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8시 59분, 5층에 머물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의 손가락은 연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대고있었다.
가까스로 5층에 있는 학원에도착해서 출석카드를 찍자, 모니터 속 숫자가 나의 출석 시간을 알려주었다.
9:00: 50
학원 건물이 바로 정류장 코앞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며 몇 시까지 출석해야 하는지 안내데스크에 물었다.
9시 9분, 정확하게는 9시 9분 59초까지란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안도하며 강의실로 입장할수 있었다.
다음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전날보다 한 순 번 일찍 도착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6시 30분쯤 일어나 전날 미리 장만해 놓은 재료들로 간단한 아침과 도시락을 준비해 놓고 8시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버스 안은 좀 더 많은 사람들로 복잡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모처럼 차 창밖으로 비치는 싱그러운 초여름을 만끽하며 활기찬 아침 풍경 속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학원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6분, 전 날은 강의실에 들어선 마지막 주자였는데 그날은 첫 주자가 되어 조용한 강의실에서 브런치앱을 켜고 글을 긁적일 정도의 여유까지 부릴 수 있었다.
다음 수강생이 도착하자, 전날 원장님으로부터 사용을 허락받은 커피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려 함께 첫 커피를 마시며 수업을 기다렸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기계적인 반복에만 치중하느라 정작 커피는 단 한 모금도 마셔보지 못했던 2급 자격증 과정에선 결코 누릴 수 없었던 기분 좋은사치였다.
'오늘은 어떤 수업일까?'
전 날 오리엔테이션 이후 첫 수업이나 다름없는 그날 수업에 대한 기대로 오랫동안 굳어있던 마음이 살짝 셀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