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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un 27. 2023

잠시 쉬었다 가실게요...

국민취업교육 2차 과정을 마치며...


 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8시 전후로 도착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6월 10일 이후 시행된 창원 버스 노선 개편으로 여기저기서 혼선과 불만이 터져 나온다지만 나의  경우는 오히려 노선이 하나 더 생겨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하나뿐인 노선의 배차 간격이 20여분쯤 되다 보니 8시 를 놓치면 지각할 가능성이 농후해, 버스를 타기 전까진 분 단위로 시간을 며 마음을 졸이곤 했다.

 하지만 오늘, 8시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고도 난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버스를 쫓던 잰걸음은 떠나가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쳐다보며 속도가 줄었오히려 한층  여유로워진 발걸음에 마음까지 가벼워졌다. 그리고  6분 후,  플랜 B로 부상한 102번 버스에 몸을 었다.


 새로 노선이 추가된 버스는 고등학생들로 붐비던 기존의 101번 버스와 달리 자리 또한 넉넉했다. 여태껏 가본 적이 없는 생경한 동네돌아가긴 했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2~30분 일찍 도착하는 시간대였기에 우회하는데 몇 분 더 소요된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하지를 막 지나 온 태양은, 8시를 겨우 넘긴 시간이었지만 한 낮으로 착각할 정도로 강한 열기를 뿜어대고 있었고 나를 태운 버스는 이제 막 낯선 동네의 재래시장 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좌판과 부지런히 장사준비를 하는 사람들, 며칠 전과 다르게 붐비는 모습...  장이 서는 날인가 보다.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차창을 통해 이곳저곳을 window shopping 하느라  30여분 남짓 걸리는 버스시간이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 막 안면을 튼  이 버스를 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취업제도를 통해 받고 있는 2차 교육이 이번 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커피 바리스타 2급에 이어 수제청과정을 선택한 이래로 어느덧 1달이 지났다. 여러 가지 수제청과 다양한 디저트를 배울 수 있었던 알찬 과정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속내를 알아갈수록 나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어떤 일을 벌일 때, 누구에게 물어보든, 충동적이고 섣부른 결정은 피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경험을 쌓으며 심사숙고하라고 조언한다. 많은 재원과 노력이 들어가기에, 특히 나의 경우, 나이라는, 아직은 사회에서 장점보다 단점으로 작용하는 치명적인 변수가 있기에 더욱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머리를 끄덕이곤 한다.


 하지만 멋모르고 호기를 부릴 때보다 무언가를 하나씩 알아갈수록,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의 신기함에 탄성을 내지르면서도 두려움과 좌절감의 감정 또한 켜켜이 쌓여가는 건 왜일까? 한 발씩 다가갈수록 그것의 본질에 가까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본질은커녕, 그 언저리 어디메쯤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늪 속으로 서서히 빠져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갈 길은 아직 멀고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몸놀림과 달리, 나의 뇌회로는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나아갈  것인가, 나의 몸 일부를 잠식당하기 전에 이쯤에서 그만 발을 빼야 할 것인가...


 그저 막연히 겉으로 비치는 화려한 겉모습에 혹했다가  그 뒤에 감춰진 온갖 잡동사니들을 살짝이나마 들여다본 까닭이리라.

그것들을 치우는 모든 허드레 일들이 다 내 몫이고, 여전히 내 앞에서 시야를 가리고 있는, 결국은 내가 열어젖혀야 하는  몇 겹의 커튼들을 잡은 내 손의 떨림이, 더 이상 처음의 그 셀렘이 아닌, 그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의 그림자기인한다는 걸, 뇌가 먼저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하나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들여야 하는 그 많은 수고로움과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깨달으면서도, 시장에서는 기성품들과의 경쟁에서 결코 우위를 자신할 수 없을뿐더러 가격면에서도 오히려  밀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더 차갑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선 일에 대한  어떠한 재능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나의 처지에 아랑곳없이 제일 신난 건 남편이었다.

사실, 학원에서 만든 각종 수제청과 디저트를 함께 시음하고 맛보는 그 순간만큼은 나 또한 즐겁고 행복했다. 모든 것이 어딘가에 끼여 맞춰진 듯 꽉 짜인 생활 속에서 어디 철철이 싱싱한 제철 과일로 수제청을 맛보며 인생의 쓰디쓴 맛 이외에 이토록 달고, 시고, 들큼하고 상큼하기까지 한 이런 다양한 맛들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던가? 언젠가 기분이 한껏 업된 날은 남편과 함께 소량의 레몬청을 직접 만들어보기까지 했다.

 삶에서 어떠한 경험이 그저 헛되기만 하겠는가?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체험한다는 건, 삶을 훨씬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든다는 걸 느끼며 그것이면 충분하다 싶었다.


 수제청과 디저트 만들기 수업 종강을 일주일쯤 앞두고 연이어 신청한 3차 교육과정인 '디저트 마스트 과정'을 취소했다. 그동안 아침 일찍 먼 거리를 버스로 왕복하느라 괜히 부산스럽기만 했던 몸과 마음으론 정작 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에, 그 외 나머지 시간들을 보상이라는 미명하에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다.


 이제는 잠시 가뿐 숨을 고르고 다시 내 안으로 침잠할 때임을 느낀다. 또 다른 한 발을 내 딛기 위해, 과연 내가 전력질주 하고 있는 이 방향이 맞는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뒤를 번쯤 돌아볼 때임을 느낀다.

 아직도 아득한 여정...

다시 시작할 힘을 비축하기 위해 난 이쯤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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