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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ul 16. 2023

카페창업의 꿈을 접다.

커피공부를 마무리하며...

 

 한 달여만에 커피 2급 바리스타 과정을 배우고, 필기와 실기 시험을 막 치르고 난 후, 난 한동안 그 여정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제 겨우 첫걸음마를 떼기 위해 오랫동안 바닥에 맞닿아 있던 엉덩이를 들썩였을 뿐인데, 어쩜 곧 달리기라도 할 기세로 저만치 보이는 흐릿한 목표물을 향해 무작정 손부터 뻗고 보자는 심산은 아니었나 반추하게 된다.

 

 자격증이 나오기도 전에, 아니 합격여부를 알기도 전에, 가시지 않은 시험장에서의 긴장감을 미처 떨쳐버리기도 전에, 난 카페 자리로 나온 매물들먹잇감 삼아 이곳저곳의 부동산을 기웃거리며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어느 노련한 바리스타가 운영하다 내놓은 카페를 직접 찾아가 어쭙잖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어 보기도 하고, 임대라고 붙어있는 매물이 보일라치면 근처 부동산을 찾아가 금방이라도 가게를 차리기라도 할 듯 모든 게 준비된 사람인양 제법 거들먹거리며 시세를 가늠질하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드러누워서는 휴대폰을 붙잡고 부동산에 대한 정보가 담긴 앱을 이리저리  파도 타며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날이 많아졌고, 올라온 임대나 매매 물건들의 가격이나 모양새, 위치들을 파악해 가며 진지하게 사업구상이란 걸 한답시고 혼자 히죽거리는 시간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래도 그땐, 꿈을 꿀 수 있었기에 행복했었다.

머릿속에 끝없이 펼쳐지는 가능성의 바다에 풍덩 빠져, 맘껏 물장구를 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머지않아, 그런 순진한 나의 상상 세계를 조금씩 침범하기 시작하는 현타(현실자각타임)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었음을, 그 당시엔 미처 알지 못했다.




 운이 좋아 귀하게 얻은 커페 알바자리는 비록 짧았지만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지금껏 내가 누렸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근면 성실한 피고용인으로 바닥부터 시작하겠다는, 다소 진지했던 나의 각오들은 냉정한 현실 앞에선 그리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사업장이란 곳은 내가 숙련되기를 기다려주는 자선단체가 아니었다. 사람의 그릇 차이도 있겠지만,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그 시기에, 그 분야에 이미 능숙한 사람을 고용해 일이 매끄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지 결코 타인에게 연습이나 훈련의 장을 제공하려 하진 않았다.


 한 땐, 하루에 몇 시간 좋아하는 소일거리로 용돈벌이를 하며 지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비록 적은 시간이지만, 나의 모든 일정을 그 시간에 맞춰야 한다부담과 간혹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번번이 주인에게 그 시간을 빼달라고 부탁한다는 것 또한, 나의 성격상,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처음엔 감사해 마지않았던 최저시급의 함정 또한 사방이 꽉 막힌 벽에 둘러싸인 것처럼 나의 노동의지를 시들게 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자영업을 할 땐 최저시급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기도 하지만, 나의 노력여하에 따라 그 시급의 범위라는 걸 어느 정도 늘릴 수 있다희망이라도 있었던 반면, 피고용인의 입장에선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한들  9620원선을 넘어선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 부지런히 움직이던 나의 팔다리의 힘을 앗아갔다.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아래 인간의 탐욕을 끝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굴레에 염증을 느껴 탈출했던 나인데, 이젠 아무리 일해도 만원이라는, 고용주과 피고용인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또 다른 틀 속에 갇혀버린 신세가 되어버렸다.

 각자 자신이 정한 만원 어치의 노동에 타협하며 그럭저럭 삶을 영위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자 난 다시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를 크게 유혹하는 건 창업분야였다.

하지만  이 나이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혀 생소한 분야에 뛰어든다는 건 우선, 돈을 떠나, 그 분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사랑과 호기심, 열정 없이는 불가능해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커피분야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환상이 나를 그 언저리까지 유혹했지만 차마 물을 마시게 하지는 못했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커피 그 자체가 아니라 커피를 매개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구와 만나느냐에 따라 커피맛이 가늠되고, 하루에 한 잔이상 인스턴트커피의 달짝지근한 맛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에게, 커피는 그리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흔히 커피로 대표되는 여러 음료를 마시며 그 주위로 모여든 사람들과 그들의 삶과 생각들을 공유하는 이야 말로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의 방향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 돈걱정에서 벗어나야 했다.

가게를 유지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재정난에 허덕이며 돈에 발목이 잡히는 순간, 이도저도 아닌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일... 좀 더 냉철해져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왠지 내가 문을 열면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몰려올 것 같다는, 그런  허무맹랑한 판타지에서 그만 내려와야 할 것 같았다.




 요즘도 가끔씩 카페에 들어서면, 왠지 가공식품 같은 다른 음료들은 그저 흘깃 쳐다볼 뿐, 가성비 좋은 아메리카노만을 고집하며 지인들과 마주한다.

 커피맛은  가장 원초적인 혀의 평가에 맡겨둔 채, 그저 마주 앉은 지인의 눈과 입에 주목하는 나를 본다.

 말 그대로 커피는 그저 거들뿐, 진정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상대방의 다양한 삶과 그에 투영된 나의 삶, 그 자체에 다름 아님을 온전히 느낄 뿐이다.


***대문이미지는 블로그에서 차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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