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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Aug 02. 2023

안식년에서 다시 일상으로...

[나이 오십, 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참으로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가끔씩 만나는 지인들이 간혹 옛 업으로의 복귀 의사를 타진할 때면 얄짤없이 손사래를 치며 철벽을 치던 나였는데 지금에 와서 언제 그랬냐는 듯 앞으로의 사업 계획이랍시고 늘어놓는 걸 보면 세월의 두께만큼 낯짝 또한 두터워졌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가  나에게 가져다준 것이 어디 두터워진 얼굴뿐이랴?

 이미 지나가버려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일에도 전전긍긍하며 질척거렸던 예전과 달리, 한동안 몰입했던 일이었음에도 포기와 동시에 방향전환까지 빨라진 나 자신을 보며 감탄을 넘어 실소를 자아내는 현상들을 종종 목도하기도 한다. 

 

 나에게 맞지 않다고... 비전이 없다고... 결국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나 자신을 설득시키는데 필요한 그럴듯한 이유들도 차고 넘쳤다.

 어떻게 보면 자기 합리화와 변명에 익숙해진 탓이라 비난받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러한  변화들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건, 그래도 숱한 시간을 인내하며 터득한 내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이어서가 아닐까 에둘러 스스로를  변호해보기도 한다.


 유독 날카롭고 뾰족했던 나는 하나에 꽂히면 오직 그 방향만 바라보며 돌진했었고 그 외의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의미 없다며 폄하하기 일쑤였다.

 물론 일에 있어서는 적잖이 도움이 되는 성격이었지만 일이 한번 어그러지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김없이 나를 옥죄어 오던 자괴감은 사람을 쉬이 지치게 만들곤 했다.


1년 동안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안식년은 나에게 많은 것을 돌아보게 했다. 그중 하나는, 내가 그토록 내 삶에서 밀어내고자 했던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정립한 것이었다.

 한 때 일에 치여 노동을 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골몰한 적도 있었다.

 코로나 시대, 우연히 찾아온 시간의 공백을 틈타 접하게 된 유튜브 세상에서는, 근로 소득만으로는 살기 어렵다며 내가 잠자는 사이에도 돈이 일을 하게 만드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라고 연일 떠들어댔고, 나와 남편은 거기에 혹해 열심히 동영상을 파도 타며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양 눈에 불을 켜고 사각틀 속 세상을 헤매다니기도 다.


 하지만 근로나 노동의 의미를 물질적,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고려한 나의 생각에 큰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삶을 영위하는데 경제적 뒷받침이 중요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외에도 살아가는 동안 내가 열정을 쏟고 집중을 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던  

시간이었다.

 

 내 안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즈음엔 다시 무언가를 한다면  100%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고집스러운 목표란 게 있었다.

하지만 여행의 끝에서 내가 깨닫게 된 건 나 또한 가까이에 둔 파랑새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이제껏 내가 쫓은 건, 말로만 무성할 뿐 실체가 없는, 그저 머릿속 이미지가 만들어낸 허상에 다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토록 지겹던 하루하루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1년 넘게 부유하면서 막상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없지만 내가 선택한 그 간들에 대한 후회나 미련 또한 남아있지 않다. 그 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파랑새의 귀중함을, 아니 그 존재를 알기나 했을까?


 한 걸음 떨어질수록 비로소 그 본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익숙한 그 무엇을 다르게, 때로는 낯설게 보이도록 만들기도 했다.

 날마다 거르지 않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일정한 리듬으로 자신의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생활을 영위하며 한 분야에 익숙해져 간다는 것. 힘겨운 무언가를 붙잡은 채 끝까지 놓지 않고 이어가는, 어떻게 보면 미련스러울 정도로 천착하는 삶에 대한 고집스러움...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루하고 무의미해 보였던 노동이 하나의 숭고한 행위로 비친 건, 어쩌면 노동에서 벗어난 지금의 내가 만들어낸 또 다른 하나의 허상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내 안에서 새롭게 해석된 가치를 품고 다시 노동 시장으로, 지난한 현실의 장으로 나아가려 한다. 내가 애써 탈출한 그 쳇바퀴 속으로... 


 코로나 시국을 지나오면서 불과 몇 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세상에 적잖이 당황하면서 한 걸음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비록 나이는 더 먹었지만... 물리적 기운은 달리지만, 이제 내가 돌릴 쳇바퀴는 내가 고르기로 했다. 이왕이면 모터가 달린 튼튼한 놈으로... 그저 제자리를 도는 것이 아닌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힘에 부치면 잠시 쉬기도 하련다. 때론 옆사람도 태우고 뒷사람도 돌아보며 그렇게 나만의 스타일로 운전하며 부딪쳐볼 생각이다. 

  

 두려움과 설렘...

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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