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2급 실기 시험을 치른 다음 날이었다. 커피수업을 하면서 알게 된 또래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주일 전 자신의 집 근처 카페에 구인 광고가 났길래 문의를 해봤다는 그녀는 다행히 나이 제한이 없어서 일하게 되었다며 근무를 위해 교육을 받으러 다닌다고 했다. 자리가 나면 사장에게 내 얘기도 좀 해달라며 지나가는 말로 넌지시 부탁해 놓았는데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사장님이 한 번 보자는데 지금 올 수 있어?'
토요일이라 아직 자고 있는 아들의 점심을 차려놓고 대충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카페까진 도보로 20여분 거리, 만보 걷기 코스에서 자주 지나치던 동네라 나는 익숙한 걸음으로 서둘러 갔다.
4월이었지만 그날따라 난데없는 꽃샘추위로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하지만 이깟 바람이 뭔 대수겠는가? 오십을 넘긴, 아직 초짜 바리스타 딱지를 떼지도 못한 나를 써 주겠다는데... 나는 미처 단추를 다 채우지 못한 봄 외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을 애써 밀어내며 두 손으로 앞섶을 단단히 여민 채로 걸음을 재촉했다.
평소에는 가깝게 여겨졌던 길이 그날따라 꽤 멀게 느껴졌다. 바람은 또 왜 이렇게 머리를 흐트러트리는지... 바람에 흠씬 두들겨 맞은 모양새가 왠지 더 나이 들어 보일까 봐 길 가에 세워진 차들을 스칠 때마다 반사되는 내 모습을 흘깃흘깃 곁눈질했다.염색을 할 걸 그랬나? 얼마 전 염색한 머리카락 사이로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흰머리 또한 나의 신경을 긁어댔다.
도착한 곳은 산책할 때마다 무심히 지나치곤 했던 테이크 아웃 전용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알바생과 교육을 받고 있는 동기, 사장에다 교대하러 온 또 다른 알바생까지 좁은 주방이 복작거렸다. 주방옆에 창고겸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한, 문으로 분리된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사장과 대면했다. 나보다 어린, 하지만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듯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다부진 모습의 여사장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 알바로 3시부터 10시까지 마감을 해야 하는 자리라고 했다. 설거지부터 커피머신 청소에, 가게 바깥쪽도 쓸어야 하고 화장실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야 한다며 사장은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힘을 주어 말했다. 할 수 있다고 대답하던 나는 갑자기 4월과 5월, 주말에 한 번씩 있는 모임이 생각났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잡힌 선약이기에 그날은 혹시 나의 동기와 시간을 조정해서 일을 맞바꿀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단칼에 안된다는 그녀... 내가 맡은 마감 시간 때의 업무와 동기가 하기로 한 오픈 때의 그것은 일 자체가 다르다며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던 사장은 잠시 주춤거리던 나의 눈빛을 읽었는지 생각해 보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하실 거며 월요일 오후에 다른 알바가 마감하는 걸 보러 오고, 못하겠으면 미리 연락을 달라는 말을 끝으로 10분도 채 되지 않는 면접이 끝이 났다.
주말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면접을 보러 갈 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당연히 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커피를 배웠다고 하지만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달 동안 회사를 출근하다시피 결석 한 번 없이 열심히 다녔지만 말 그대로 바리스타 2급 시험에 필요한 한 두 가지 기술만 기계적으로 반복했을 뿐, 여전히 커피에 대해 문외한인 건 마찬가지였다.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외에 제조할 수 있는 음료는 하나도 없었으며 그것마저도 고가의 기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주위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분들이 꽤 있었다. 그들 또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자격증을 사장시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취미로 집에서 써먹을 거면 차라리 핸드드립 기술을 익히는 게 낫지 이건 취업 아니면 창업의 길밖에 없으니... 우리 나이 때는 이 분야에서의 취업도 하늘의 별따기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신을 스스로 취업시키는 방법은 창업밖에 없다며 웃픈 현실을 탓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창업이 승승장구할 리도 만무하고... 커피에 유달리 재능과 열정이 있는 젊은 사람들도 밀려드는 거대 자본에 잠식당하는 게 요즈음 이 분야의현실인데...
그렇게 귀하게 얻어진 자리여서인지 사장에게 알바를 고사한다고 연락하기까지 마음이 수십 번 도 더 바뀌었다.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친구들의 만남을 고작 일주일에 한 번하는 알바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웬일인지 그날따라 며칠 째 지끈거리던 허리도 아파오고... 안 하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니 여기저기서 찾아지는 핑곗거리는 차고도 넘쳤다.
사장과의 전화를 끊고 나니 괜히 나 자신이 위선적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정작 이전에 하던 일을 놓았을 땐, 그 어떠한 지위나 체면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꿈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신했었는데... 어쩌면 나는 모든 것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열린 자세로 삶을 맞이하려는 모범적인 자세를 갖춘, 나름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핑계는 지인과의 선약 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난 어쩌면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한다는 사장의 말에, 위태위태하게 지지하고 있던 내 안의 그 무엇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유난스럽게 쌓아왔던 것들이 결국은 모래성에 지나지 않았음을 스스로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화장실 청소, 그게 뭐라고... 그깟 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 자체보다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그 어떤 상징적 의미가 직관적으로 나의 뇌리에 더 깊이 와 박혔는 지도 모른다.
10년 이상 남을 부리며 주위에서 인정받아 온 자리를 스스로 걷어차고, 편견 없는 자유인이랍시고 세상에 대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리라는 나의 도전이, 실은 한낱 만용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은 날, 여지없이 드러난 나의 민낯에 대한 부끄러움은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할 나만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