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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대하는 엇갈리는 시선

인생을 다이어트하다.

by 정현미

내가 생업에서 손을 놓은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그러고 보니 남편도 전 직장을 퇴사한 지 이번 달로 11개월째에 접어든다.

우린 그 기간 동안 뭔가에 굶주린 하이에나들처럼 국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여태껏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간의 안배에서 제외된, 사소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2월엔 우리의 스케줄이 아닌, 오롯이 바쁜 아이들의 일정에 맞추어 베트남으로 짧은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난 몸이 조금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절약해야 한다는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노는데 돈이 더 많이 들었고 아직 경제적인 자립을 하지 못한 두 아들들에게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건 결코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나의 마지막 남은 열정을 쏟아부을 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물론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관심 있는 강좌 몇 개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시간 또한 잘 흘러갔다.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도 한 번씩 용솟음치는 그것의 정체를 기어이 알아내서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다는 욕구가 이따금씩 올라왔다.


사실 내가 이른 나이에 퇴직을 결심한 건 아예 일을 그만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더 이상 내 의지가 아닌, 외부의 힘에 끌려다니며 진정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은 경제적인 잣대에 의해 자꾸 후순위로 밀리는, 그런 겉돌기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나름 절박한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일에 치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에 취해 소소한 여행마저도 정작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하고 저마다 엇비슷한 휴가기간에 맞춰 경쟁적으로 몰려다녀야만 하는 현실과 남편의 경우, 알음알음 알게 돼 들어간 회사에선 작은 중소기업이라 더 그런지 아파도 병원 한 번, 은행 업무 하나 제대로 맘 놓고 볼 수 없는 이 팍팍한 우리네 현실에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른 것 또한 우리의 무모한 퇴직 결심을 부추긴 주요한 원인들 중 하나이다.


가족들과 가끔씩 맛있는 것도 먹고 함께 여행도 하며 행복하게 살고픈 게 대부분의 소시민들이 꿈꾸는 일상일진대 주객이 전도되어 사람이 일에 끌려다니는, 일 우선주의의 사회가 되어버렸다. 시지프스처럼 어김없이 굴러 떨어지는 돌덩이를 의미 없이 제자리에 갖다 놓느라 분주하던 나는 언젠가부터 육체적 피로감과 함께 회의감이 일었고 나의 정신적 반항이 점차 깊어지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이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아니겠지... 무슨 생각이 있겠지...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좀 있으면 지겨워하겠지... 했는데 의외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백수생활에 익숙해졌고 집안일도 주도적으로 하며 그 생활에 최적화되어가고 있는 모습에 난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이제 슬슬 교육이나 소일거리로 미래를 도모하자는 말에 그는 정색을 하며 좀 더 쉬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최소한 처음에 우리가 막연하게 정했던 2년이라는 기간이라도 채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싶다는 삼수생 아들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내 마음은 편한 리 없었다. 대학을 가지 못한다면 만약을 대비해서 뭔가 비빌 언덕이라도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들로 마음이 어수선했다.


좀 더 자기 주도적이고 의미 있는 제2의 직업을 찾기 위한 준비기간이라는 나의 생각과 그저 주어진 선물처럼 충분히 즐긴 후 생각하자는 남편... 퇴직에 대한 서로 엇갈린 시선으로 우린 최근 들어 부쩍 잦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하나가 불행해지는 삶은 결국 둘 다 불행해지는 길임을 알기에 우린 싸우면서도 서로 합의점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인생이란, 삶이란 도대체 뭘까?

반평생 주워 들어온 교육에 충실하며 살아왔는데 이젠 그렇게나 믿고 따랐던 기존 가치란 것도 그 유효기간이 만료되었나 보다.

어쩌면 다른 것들은 차치해 두고 오로지 발전이라는 가치에만 치중했던 우리 부모 세대의 삶의 방식이, 급하게 먹은 쌀밥과 고기반찬에 체한 듯 그 소화불량의 증후가 이제 막 우리 세대를 지나 아이들의 세대에서 곪아 터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이제 서서히 그 정체를 드러내기로 작정한 것처럼 사회 여기저기서 그 폐해가 눈에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난 더부룩하고 기분 나쁜 속 쓰림을 동반한 배앓이에 연신 배를 문지르며 생각했다. 더 이상 큰 병으로 도지기 전에 배를 비워야 한다고... 순간의 포만감과 쾌락은 있을지언정 결국은 몸을 망가뜨릴 식탐으로 채워진 배를... 그리고 그 자리는 다시 가볍고 건강한 음식으로 채워나가야 한다고...

우리는 기존의 탐욕이 차지했던 그 자리를 새로운 가치로 채우기 위해 인생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모든 다이어트가 그렇듯 우리 삶의 다이어트 또한 그리 녹록지 않으리라. 실패와 반복을 거듭하면서도 그 끈을 놓지 않는 진정한 다이어터들처럼 우리 삶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불필요한 탐욕들을 떼어내기 위해 우린 그 끝을 알 수 없는 다이어트의 세계로 첫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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