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은 남자 두 명을 포함해 14명이 수강 중이었는데 내 나이 또래 이상의 중년 여성들이 많아서 젊은 사람이 많으면 어쩌나 했던 나의 걱정은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첫 주는 코앞에 닥친 필기시험을 대비해 벼락치기 공부를 하느라 바빴고, 2주째가 되어서야 기본 에스프레소 추출에 대한 이론과 실기 수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많은 커피를 마시면서도 관심밖이었던 커피머신, 첫 실습을 위해 그 앞에 섰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생각보다 커 보였던 그 위용에 기가 눌려 포터필터를 빼고 끼우는 것조차 버거워 쩔쩔매던 모습이 불과 2주 전 일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커피를 내릴 때 사용하는 기구들의 명칭과
그 과정에서 쓰이는 전문 용어들 조차 생소해, 그동안 마시기에만 급급했던 아줌마들의 기를 팍팍 꺾어 놓기에 충분했다.
포터필터를 기계에서 분리해 헤드를 청소한 후 린넨으로 닦고, 그라인딩 한 원두가루를 채운 후 레벨링과 템핑을 거쳐 다시 기계에 끼우고 25초 내외의 추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25~30ml의 에스프레소 두 잔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청소 후 정리, 우린 이 과정을 일주일간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낯설었던 용어들이 입에 익고 저마다 제법 그럴듯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내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카푸치노 첫 날
하지만 기쁨도 잠시,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이제 겨우 모든 음료의 베이스인 에스프레소를 추출했을 뿐, 다음은 난이도가 훨씬 더 높은 카푸치노를 만드는과정이 이어졌다.
카푸치노를 만들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우유를 스티밍 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했는데 이 과정이 제일 까다롭다고 한다.
스티밍이란 피처라고 불리는 뚜껑 없는 작은 커피 포트 모양의 스테인리스 컵에 우유를 부운 후 스팀 막대에 담가 우유를 데우면서 부드러운 거품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스티밍한 우유는 미리 추출해 놓은 에스프레소 위에 부어 거품과 함께 하트모양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초보자에게는 결코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다. 생성된 거품의 질에 따라 카푸치노의 부드러움과 그 위에 그려질 하트 모양에 많은 영향을 끼치므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었다.
열의가 있으신 분들은 아침 일찍 우유를 사들고 와서 따로 연습을 하곤 했는데 나도 이 과정이 들쑥날쑥해 일주일 내내 애를 먹었다.
카푸치노형 우유 스티밍과 하트 그리기로 거의 2주를 보낸 후 3월 마지막 주부터는 본격적인 실기시험 연습에 들어갔다.
시험 내용은 에스프레소 4잔과 카푸치노 4잔을 만들어 두 번에 나누어 시험 감독관에게 서빙하고 청소까지 합쳐 15분 내에 끝내야 하는 과정이다.
카푸치노 1주일후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추출 전 기계를 점검하고 잔을 예열하는 과정까지 추가하여 시간을 재가며 연습을 했는데 모두들 갈팡질팡,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강사님도 기가 막혔는지 중간에 연습을 중지시키고 재정비해서 다시 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처음이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수업시간 안에 연습을 2번 하기도 빠듯했다. 저마다 새로 추가된 생소한 준비과정에 멘붕이 와서 새로운 걱정거리를 떠맡은 듯 난감해했다.
하지만 난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생소하고 낯설었던 과정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경험들을 겪으며 나도 모르게 '시간의 힘'이란 걸 믿게 되었나 보다.
그리고 나름 산전수전을 겪은 탓인지 웬만한 것에는 크게 동요되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며 무슨 객긴지 가끔씩 놀라기도 했다.
나에겐 두려움을 갖기보다 마음 비우기가 더 잘 듣는 특효약임을 몸소 체득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자격증 취득 과정을 듣고 있지만 어쩌면 이 나이에 '자격증'이라는 명함 하나가 무에 그리 중요할까? 그저 '자격증을 딴다'라는 목표는 일을 집중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동력으로 작용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는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격증 하나보다 현장에서의 실습이 더 중요하다는 걸 자격증반을 수강하고 나서야 깨달은 걸 보면 세상엔 필요 없는 공부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카푸치노의 두터운 거품층을 만들기 위해 우유를 두 배의 부피로 스티밍 하면서 알게 되었다.
라떼는 카푸치노보다 우유는 많이, 거품은 적게...
평소에 궁금했지만 흘려보냈던 라떼와 카푸치노의 차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