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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급 바리스타가 되다.

바리스타 2급 실기시험 도전기

by 정현미

한 달 동안 숨 가쁘게 달려왔던 '바리스타 2급 자격증 취득 과정' 수업이 4월 5일 자로 종강을 맞았다.

4주 동안 수강생 모두 잦은 결석 없이 80% 이상의 출석률을 달성하며 저마다 속에 품고 있었던 학구열을 불태웠고, 강사님의 발 빠른 대처로, 등록이 늦어 미처 필기시험을 보지 못한 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백 없이 4월 7일 날 있는 실기시험에 바로 응시할 수 있는 행운도 얻게 되었다.

시험 장소 역시 수업을 들었던 학원의 강의실에서 매일매일 연습했던 친숙한 기계로 칠 수 있었으니 여러모로 운이 따라준 경우였다.




바리스타 2급 실기 시험은 크게 기술 평가와 감각 평가, 2 부분으로 나뉘어 평가되는데 부문별로 각각 60점, 40점의 점수가 할당되어 있었고, 합격 마지노 선은 두 부문을 합쳐 60점 이상이었다.

기술 평가커피머신의 스팀과 압력을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험 시간 동안 사용할 컵 ( 에스프레소 잔 2개, 샷 글라스 2개, 카푸치노 잔 4개)을 온수로 예열하고, 에스프레소의 예비추출까지 끝내는 준비단계를 거쳐, 먼저 제출할 에스프레소 4잔을 추출하는 과정과 서빙하기, 그리고 이어서 카푸치노를 제출하기 위한 에스프레소 추출과 우유 스티밍, 푸어링(추출한 에스프레소에 우유거품을 부은 후 하트 만들기)을 거쳐 완성된 카푸치노를 서빙한 후, 마무리 청소에 이르기까지 빠뜨리는 과정 없이 잘 진행되었는지 확인하는 분야였다.


감각평가는 제출한 에스프레소의 크레마 상태나 카푸치노의 거품양이 적당한지, 맛과 향은 어떤지, 전적으로 심사위원이 평가하는 부문이었다.




9시부터 시작되는 시험에서 난 11시 타임을 배정받았다.

대기가 20분 전이라 10시쯤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그 새 친해진 동기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빨리 오라고 전화를 해대는 바람에 9시쯤 집에서 출발했다.

삼삼오오 학원 근처 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긴장된 마음을 푸느라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누구는 우황청심환을 2개나 먹었네, 누구는 잠을 설쳤네, 저마다 떨리는 심경을 토로하느라 카페 안은 왁자지껄 소란스러웠다.

난 다른 이들에 비하면 느긋한 편이었지만 흰 셔츠와 검정 바지, 구두 차림의 시험 복장으로 갈아입고 복도에서 대기하는 동안은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는지 손이 떨려왔다. 왠지 오한까지 느껴지는 것 같아 시험을 위해 방금 빨아서 손에 쥐고 있던 애꿎은 젖은 행주를 탓하기도 했다.




시험 시간 15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처음 예행연습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다행히 곧 익숙해져서 마지막 주쯤엔 비교적 여유 있게 주어진 시간 안에 모든 과정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시험이라 긴장한 탓인지 시간이 빠듯했다. 마치 다른 차원의 공간 속에 놓인 듯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시간이 빠르게 손을 훑고 흘러내려 자칫 시간을 초과할 뻔했다.

시험장 옆 교실에선 시험을 마친 이들과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이 뒤섞여 서로 대비되는 감정으로 각자의 경험담을 늘어놓거나 상대방을 격려하기도 하며 이야기로 긴장감을 풀고 있었다.


12시 반쯤 오전 시험이 마무리되자 우린 바로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시간이 되는 사람끼리 종강 겸 시험 뒤풀이로 조촐한 식사와 차를 함께했다. 그리고 못내 아쉬워 단체 톡방을 만들어 모임도 하고 여행도 가자며 의기투합을 하기에 이르렀다.

얼마를 봤다고...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친화력이란...ㅎㅎ




이렇게 또 하나의 과정이 마무리되었지만 그 뿌듯함도 잠시, 난 다시 새로운 국면의 시작에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정작 한 달 과정 속에 던져졌을 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직진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이렇게 하나를 마무리하고 보니 다음 과정의 시작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또다시 도래한 것이다. 하나의 그림을 겨우 완성했다 싶었는데 또다시 그림으로 채워야 할 하얀 여백의 새 도화지를 받은 느낌이랄까...

힘겹게 그 과정을 마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이전엔 왠지 대단하게 보였던 것들이 사실은 그리 대수로운 것이 아님을... 나의 생활을 바꿔놓을 정도로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도 못한다는 사실과 함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다른 과정에서 헤매고 있을 나 자신을 본다. 세상엔 대가 없이 얻어지는 것이란 없으므로 어쩌면 또 다른 무용의 진리를 깨치기 위해서라도 난 그 언저리에서 서성이길 마다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쉼'이 필요한 법.

아직 합격 발표도 나지 않았으니... 시험준비 하느라 보지 못했던 지인들과의 만남도 밀려있으니...

갖은 핑계를 들먹이며 난 딱 일주일만 방탕하기로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번 주만 뇌를 꺼내 고이 숨겨놓고 생각 없이 격하게 놀아 보기로 했다.

기껏해야 이렇게 글이나 긁적이고 있을 '나'이지만...ㅎㅎ


P.S.

일요일 오전 9시, 막 글을 발행하기 전 문자 한 통이 왔다.

나 이제 바리스타가 된 건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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