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동물원에 가는 것을 좋아했고, 그럼 꼭 말타기 체험을 하겠다고 엄마를 졸랐다. 아직도 그 시절 그 풍경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나에게 정말 특별한 기억이었다. 금요일이면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를 꼬박꼬박 챙겨보곤 했다. TV 속 동물들에 빙의한 손범수 아나운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었다. 사자며 호랑이며 할것 없이, 맹수가 아닌 장난꾸러기 동네 친구 같았다.
개, 고양이도 물론 좋아하지만 나에겐 호랑이나 말 같은 대(大)동물들에 대한 로망이 늘 있었다. 예를 들면 디즈니만화 <알라딘>에서 쟈스민 공주가 데리고 사는 반려호랑이(?) '라자'같은. 그 호랑이는 왕실 온실 속에서만 살아야 했던 쟈스민 공주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고 형제였다. 맹수와 집안에서 애완동물처럼 같이 먹고 잔다는 설정이 너무나 만화스럽긴 해도, 쟈스민 공주와 라자의 투샷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어쨌든 내가 라자와 쟈스민 스토리에 꽂힌 이유가 단순히 "호랑이가 애완동물이라니! 와우 대박 멋져!!" 뭐 이런건 아니었다. 가뜩이나 말도 통하지 않는데, 덩치 큰 동물들은 사람보다 힘까지 세니 (게다가 라자는 최상위포식자다..!) 엄청난 신뢰가 없다면 저렇게 함께 있는 그림이 나올 수가 없을테니까. 그 유대관계가 부러웠다. 그러면서 버킷리스트에 언제 지워질지 모를 한줄을 남몰래 올려두었던 것 같다.
나도 저렇게 마음을 나누는 커다란 털복숭이 친구를 갖고 싶다고.
주말이면 하루 왠종일 지박령 마냥 승마장을 떠돌며 버는 돈의 대부분을 마방비와 승마 레슨비, 마구, 말 건초, 말 간식 따위에 쓰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도대체 연애는 언제 할거며 결혼은 안할 거냐고. 약간 선넘나 싶을 정도로 잔소리를 하는 아조씨들도 있었다. 그럴때면 아직 내가 연애결혼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았다는 칭찬 정도로 듣고 적당히 거른다.
내 연애 패턴은 항상 비슷했다. 누가 먼저 좋아하기 시작했든, 결국은 내가 좋아해야 사귐이 성사됐다. 그리고 항상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가 나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에게 더이상 노력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때가 꼭 오곤 했다. 그래도 한동안은 계속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고, 그렇게 항상 내가 먼저 이별을 고했다. 짜증나는 건, 그러고 나면 미친놈 마냥 집착하기 시작한다는 거였다.
이게 자꾸 반복되니 그냥 다 내 잘못 같았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걸까. 내가 그를 그렇게 만든건 아닐까.
예전에는 이별이 두려워서 라거나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와닿지 않았었다. 사귀다가 헤어지면 좀 아프긴 하지만 금방 또 괜찮아지니까. 이번엔 다르겠지, 라는 행복감이 항상 더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솔직히... 모르겠다. 정말 다를 수 있을까?
상대방에 대한 실망도 많이 했지만 그럴수록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됐던 것 같다. 나는 정말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인지.
사람에서 오는 어려움이 동물에게는 없다. 그래서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나홀로 집에2>에 나오는 센트럴파크 죽순이 비둘기아줌마 같은 강박이 있는건 아니다. 어릴 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상처 좀 받았다고 세상과 벽을 쌓은 아줌마가 답답하기만 했었는데, 이젠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정도랄까.
얼마전, 송도에 있는 한 스타트업 사무실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그 회사 대표는 나보다 10살은 더 어렸지만 내가 겪지 못한 다른 종류의 세상 풍파에 많이 시달려온 듯 했다. 창업하면 3년 안에 90%가 망한다는 저주를 극복하고 수십억 단위 투자금을 받아내고 있는 그가, 뭐가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의 답으로 내놓은 것은 이거였다.
"사람에 대한 상처."
지금도 다른 사람을 잘 믿지 못한다 했다. '믿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믿고 싶어하는 나 자신을 믿는다는 뜻일 뿐이라고. 우리가 '신뢰'라고 하는 건 그저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에 적잖이 공감이되면서도 어쩐지 슬퍼졌다.
왜 인간은 이토록 서로를 속이고, 배신하고, 실망하게 하는걸까.
그럼에도 역시 혼자는 외롭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봤지만 딱히 다르지 않다는걸 알면서도 외롭다. 인터넷에는 그 외로움을 즐기라는 궤변이 떠돌아다니는 세상이다.
그런가하면 말은 어떤가. (갑자기 말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스럽겠지만 이 글 주제는 원래 말이다) 그건 기복이 없고 항상 착하기만 하다는 뜻이 아니다. 칸타파도 생각을 하고 감정이 있는 생명체이기에 당연하다. '오늘도 잘해주겠지', '이번 장애물도 잘 뛰어주겠지' 이렇게 넋놓고 무한신뢰를 보내고 있으면
'에잉 오늘은 하기 싫은데?'
'에잉 이건 뛰기 싫은데?'
라며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기 일쑤다.
하지만 그게 다다. 말이 나의 믿음을 배신해봤자 딱 그 정도다. '믿음'을 배신했다기보다 '방심'한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는 게 정확하다. 그래서 칸타파를 타는 건 매일매일이 행복과 좌절의 반복이다. 칸타파는 한시도 내가 자만하게 두질 않는다ㅠㅠ 그만큼 성장했고, 그래도 다시 겸손해진다.
게다가 칸타파는 가끔 삐지기는 하지만 금방 풀리고, 귀엽고, 멋있고, 섹시하기까지 하다. 바람을 피지도, 거짓말을 하지도, 나에게 윽박지르지도, 폭력을 행사하지도, 자격지심에 쓸데없는 트집을 잡지도 않는다. 도대체 남자가 말보다 나은 점이 뭐가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