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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도 경력단절이 된다

난임자가 바라는 정부 지원제도

by 단신부인

벌써, 1년이 다 돼가도록 난임휴직 중이다가,

임신을 확인한 얼마 전에야 회사 승인을 받아 산전 육아휴직으로 이제 막 전환했다.

무급이더라도 임신 오조(입덧)가 심해 연말까지 쉬길 원했으나 냉정하게도 회사는 거부했다.

약을 먹지 않으면 하루에 5번 넘게, 먹어도 하루 1번은 토하는 사람한테 현업으로 5일 만에 돌아가라뇨.

적어도 입덧이 완화되는 것으로 알려진 16주 전까지는 쉬어야겠다 싶어서 얼른 육아휴직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미 내 커리어는 박살이 났는데, 복직의 시점까지 성큼 가까워졌다.

난임휴직이나 육아휴직이나 똑같은 휴직이냐고?

미래 세대 재생산과 보호라는 목적에서는 같으나, 보장되는 부분이 다르다.

전자는 질병휴직의 일종으로 들어가 있어 급여와 경력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으나,

후자는 별도의 명목으로, 사회적 합의를 얻어 일정 부분의 급여, 경력 모두를 보장한다.


이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우리나라 난임지원제도의 개선점이 무엇인지를...


난임휴가 횟수제한 폐지


2023년 3월에 YTN에서 발표한 뉴스 헤드라인 한 줄,

'난임휴가 6일로 늘리고 초6까지 근로시간 단축(2023. 3. 28. 김병규, 김영신 기자)'

그래서, 바뀌었는가? 아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개정은 2023년 11월 말 현재까지도 감감 무소식이다.


일수를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횟수제한 폐지와 이식 당일을 제외한 경과 관찰일까지 포함시키는 것이다.

시험관 저차수인 내가 난임 진단을 받고 임신하기까지 내원한 횟수만 40번이 넘는다.

생리 시작일과 동시에 한 달에 한 번 기회가 생기는 점을 감안하면

본인이 다닌 횟수를 산술평균으로 대략 계산해봐도 한 달에 약 4번씩은 내원한 셈이된다.

그렇다면, 시험관 고차수인 분들은 대체 얼마나 내원했겠는가?

왜 내가 경력 단절을 무릅쓰고 휴직이라는 선택을 했겠는가.


이건 뭐 연 1회씩 치르는 국가자격시험도 아니고... 6일이나 10일로 늘린들 부족하다.

연차를 사용하면 된다고? 병가 일수를 쓰면 된다고?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합계출산율 0.78명(2022년)의 초라한 현실에서 출산 의지가 있는 난임자들은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핵심은 '연간 횟수제한 폐지'다.

법령 개정 내용에 '횟수 제한없이' 라는 문구가 보장되거나, '연간'이라는 말이 빠져야 한다.

그래야 생리 시작 할 때마다 안심하고 난임 시술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난임휴직도 육아휴직처럼 근무경력에 포함


여성의 경력단절은 주로 언제 발생하는가?

주로 출산 및 육아를 시작하는 시점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흔히 M-커브(Curve)라고 말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난임 출생아 수가 총 수의 9.3%(2022년 기준)으로 증가한 현 시점에서 볼 때,

10명 중 1명은 난임으로 인해 경력단절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바로 나처럼.

f5d5c612-610a-4ecd-9f03-27fefa645a4f.jpg 출처: 중앙일보(2023. 5. 9. ) 정진호 기자 기사에서 발췌


출산휴가, 육아휴직 시에는 일정 부분 생계 유지 및 양육을 위한 부모급여, 육아휴직 급여가 지원되며,

해당 기간은 퇴직금 등 임금 산정의 기본이 되는 재직기간으로 포함이 된다.

그러나, 난임은 업무 외 질병의 일종으로 분류되어 치료비만 지원되고, 경력에서 제외될 수 있다.

소득제한 폐지 수순을 밟는 지자체가 늘고 있으나 여전히 일부에선 중위소득 180%라는 기준도 남아 있다.


한편, 별도 취업규칙으로 보장하지 않는 한 난임휴직 기간이 무급인 회사가 많다.

출산, 육아를 위한 휴직임에도 업무 외 질병으로 치부되어 사용 기간이 전부 경력 산정에서 제외된다.

그나마 나의 경우엔 취업규칙 상 반년 정도는 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회사를 고려할 때,

난임휴직을 쓰게 되면 경제적 곤란을 겪음과 동시에 경력 단절도 겪어야만 하는 현실이다.

실제로 난임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사례 중에 시험관 시술을 받으려고 직장을 그만둔 사례도 왕왕 있었다.

회사에서 보장해주질 않고, 휴직제도 조차 없는 경우가 많고 난임 휴가 일수와 연차는 부족한 실정이니

결국 '퇴사'라는 극단적 수를 쓸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제는 질병휴직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난임휴직을 별도의 법률 용어로 분리하고, 육아휴직처럼 근무 경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사업주가 휴가, 휴직 등의 사용을 이유로 고용 상 차별 등을 하지 않도록 보장해줘야 함은 물론이다.


난임, 임신, 출산 관련 비급여 약제의 건강보험 급여화


SBS에서 2023년 8월 21일에 발표한 기사 헤드라인 한 줄,

'월 20만원 입덧약, 이르면 연말 싸진다'

입덧약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화 논의가 2023년 초반에서야 시작됐다는 게 놀랍다.

이 이후로 기사를 찾아볼 수도 없고, 심평원에서도 잠잠하니 내년 상반기는 돼야 적용이 완료될 모양이다.


정부 말로는 제약사 신청이 안들어와서 비급여였다고는 하나,

솔직히 그동안 투입된 저출산 고령화 정책 예산만 생각해보라. 궁색한 변명으로 밖에 안 들린다.

추진 의지가 있었더라면 충분히 포함시키고도 남았을 거라 판단된다.


비단, 입덧약 사태 뿐이랴!


난임치료를 받는 중에도 유독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 많았다.

현재 회당 인공수정은 20~30만원, 시험관 신선배아는 90~110만원, 동결배아는 40~50만원을 지원한다.

그러나 정부지원을 받고도 충분치 못해 실질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더 많았다.

이식이 종료되는 순간, 지원은 끝나고 임신과 그 이후까지는 100% 전액 자부담이다.

본인의 경험 상 인공수정 때는 정부 지원을 제외하고 83,430원을 지출했으며,

시험관 신선배아 2회 평균 463,955원, 동결배아 1차 때는 362,740원을 자납해야 했다.

임신으로 이어진 동결 2차는 지금도 병원비 발생 중이며, 산전 초음파까지 약 73만원이 소요됐다.

2023년 11월 현재, 누적으로 따져보자면 정부지원금이 약 297만원, 자부담이 약 345만원에 달한다.

안타깝게도 지원 횟수가 종료된 시험관 고차수 분들은 이보다 더한 부담을 안고 있을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사실, 진료비 명목의 10%의 자기부담금은 그나마 부담 가능한 수준이나, 약값이 유독 비싸다.

예를 들어볼까. 페마라정, 폴리트롭, 오비드렐, 듀파스톤, 유트로게스탄 등 종류도 다양하고 많다.

열거한 약제들은 배란 유도제, 난포 터지는 약, 착상보조제, 황체호르몬제의 일종이다.

모두 난임 시술에 직, 간접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며, 난임자들에겐 익숙한 것들이다.

지원금 잔여 한도가 남으면 일부 보전되는 약값도 있긴 하나 오직 '황체호르몬제'에 한정해서 적용된다.

처방받았던 약들 중 유일하게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어 부담이 적었던 것들은 진통제, 항생제 정도다.

더구나 난임을 포함, 임신, 출산 관련 진료비는 실비보험 또는 종합보험으로 보장하지도 않으니,

차수가 늘어갈 수록 자부담만 증가하게 되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따라서, 난임 치료비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난임자의 부담을 최소화 하려면

비급여 항목을 최대한 건강보험 보장 범위 내로 포함시켜야 한다.


사업주의 직원복지(임신, 출산 의료비) 보장 독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임신, 출산 관련은 사보험으로 보장되는 경우가 극히 적다.

약관에서 이를 질병이나 상해로 간주하지 않으므로 대다수 보험사가 손해율을 근거로 지급을 거부한다.

그나마 국민행복카드의 일환으로 임신·출산 진료비 바우처 100만원이 지원되고

일부 지자체에 한해 추가 지원을 하고 있다지만 이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본인처럼 입덧이 심한 경우, 입덧약이 현재 건강보험 비급여라는 이유로

임신 주수별로 필요한 검사를 받기 이전에 입덧약 처방 받는 것으로 금방 소진될 수 있다.

단, 개인이 가입한 보험 또는 단체상해보험 상 특약에 '임신, 출산' 관련 내용이 있는 경우는 예외적이겠지만.


정부가 무조건 임신, 출산 의료비를 100% 보장하라 하기엔 예산상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2023년 현재는 세수도 부족하여 각종 복지 예산까지 삭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업주가 자체적으로 직원을 위한 복지 일환으로 임신, 출산 관련 단체보험을 가입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독려하는 방안은 어떤가?


실제로 공무원 사례를 살펴보면, 단체보험으로 임신, 출산 관련 특약을 넣어서 청구했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여성 당사자 뿐만 아니라, 배우자 출산(남자 직원)의 경우에도 청구가 가능한 케이스도 있다.

한편, 소규모 사업장 중 4대 보험 가입이 어려운 경우가 있으면 두루누리 사업으로 정부 보조해주기도 한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에 '사업주는 근로자의 임신, 출산 의료비 지원이 포함된 단체보험을 가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와 같은 내용을 신설하되,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정부가 보조할 수 있는 근거를 신설하면 어떨까 싶다.


지금까지, 난임자가 생각한 정부지원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살펴보았다.

글로벌 석학들이 '한국은 망했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우리나라의 저출생 현상이 심각함은 자명하다.

출산 의지가 있는 자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이 되도록 내년에는 대폭적인 정책 혁신이 일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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