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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May 31. 2024

『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단편소설집

신간 소설을 읽고 싶었다. 장편 소설인 줄 알았는데 단편 모음집이다.     

‘사라진 것들’외 14편의 단편을 싣고 있다.


단편소설은 1인칭 화자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전반적으로 화자는 사십 대 중반의 남자이다. 일상적인 이야기들, 직장, 육아, 학업, 점점 중년에서 느끼는 인생의 진부함이 소설의 주제이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사람 사는 곳은 비슷비슷한 것 같다. 친구, 술, 담배, 그리고 빠듯한 수입과 경제적 궁핍이다. 좋은 집, 학력이 주는 스팩과 그에 따른 사회적 평판이 사람을 평가한다. 소설의 제목으로 미국 지방 이름을 쓴다.      


「오스틴」 대학 졸업 후 십여 년 만에 만난 친구들의 변한 모습. 오스틴 웨스트레이크힐스에서 열린 파티에서 뒷마당 야외화로 주위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는 옛친구들. 묘한 광경이었다. 여러 해 동안 못 보던 친구들이 대부분인데다 다들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보였다. 마치 그들은 멈춘 시간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그동안 나만 다른 곳에서 결혼하고 자식도 낳으며 늙어간 것 같았다.      


「담배」 삶이 지금과는 달랐을 때, 우리에게 아이가 없던 시절에.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하는 인생은 더욱 풍부해지고, 사랑과 선의는 두 배가 되고, 집안에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웃음과 더 많은 재미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줄어들겠지.

     

「넝쿨식물」 지난해에 나는 벽장 하나가 온통 실질적 쓸모가 없는 물건들, 오랫동안 쟁여두었지만 아직은 작별할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첼로」 우리는 계속 기다려 온 것만 같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라인백」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숨을 쉬어」 부모라고 언제나 완벽하진 않아. 우리도 자주 일을 망쳐.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지. 적어도 부모들 대부분은. 솔직하게 얘기하면 아빠는 다른 부모들 대다수보다 더 결함이 많은지도 몰라. 하지만 네 말이 맞아. 아빠가 거기 있었어야 해. 네 말이 전적으로 맞아. 바로 그 특정한 순간에 부모로서 단 하나의 중요한 책임. 내 아이를 살린다는 책임을 잊어버렸나?      


「포솔레」 나는 그해 겨울에 날이면 날마다 그곳에 점심을 먹으러 가서 똑같은 음식을 주문했다. 포솔레 수프. 나는 마흔세 살이었다. 둘째 아이가 막 태어났다. 그 밖에는 인생에서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이 소박한 점심은 나의 비밀이었다. 식당 자체도 작은 구멍가게에 불과했다. 점심시간에는 대체로 비어 있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히메나」 우리가 처음 여기로 이사했을 무렵 거의 밤마다 발코니에 앉아 있던 삼 층의 나이 많은 부부가 생각났다. 그때는 우리 둘 다 삼십 대 초반으로 이 건물의 젊은 부부에 속했지만, 이제 칠 년이 지났으니 바로 우리가 그런 인간 화석으로 보일 게 분명했다. 우리가 이렇게 긴 시간 뒤에도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직도 번듯한 집 하나 없이 제자리에 정체되어 있으리라고는, 아이도 낳지 않고 안정적인 직업도 없이 살고 있으리라고는.     


나이 들어가며 칙칙하고 우울해지는 삶의 이런 단면들은 아름답지도 흥미롭지도 않지만, 상실감과 공허함. 인생에서 사라진 것들을 함께 애도할 추억과 회한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이다.     


책 소개     

앤드루 포터 단편소설집 『사라진 것들』 민은영 옮김. 2024.01.15. (주)문학동네. 331쪽. 

     

앤드루 포터 Andrew Porter. 197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에서 태어났다. 뉴욕 바사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아이오와 대학교 작가 워크숍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데뷔작 『빛과 물질에 간한 이론』으로 단편소설 부문 클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했다.     


민은영.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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