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 ‘MANIAC’은 영어로 미치광이, ~광이란 뜻이다. ‘수학 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기 Mathematical Analyzer,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의 줄임말로, 존 폰 노이만이 만든 컴퓨터 이름이다.
1936년 컴퓨터의 시조 튜링이 발표한 「계산 가능한 수와 결정 문제의 응용에 관하여」라는 논문은 만능 기계, 또는 튜링 기계를 제시한다. 인간 정신의 내부 상태와 기호 조작 능력을 복제할 수 있는 기계! 1951년 여름 미국에서 존 폰 노이만이 이 논문을 실현한다. ‘매니악’은 입력과 출력 장치, 기억장치, 논리연산장치, CPU라는 제어장치로 구성되었다. 현대 컴퓨터의 시작이다.
이 소설은 논픽션과 픽션을 오가며 흥미롭게 진행한다. 존 폰 노이만의 어린 시절부터 미국으로 건너와 매니악을 만들기까지 과정을 주변 인물 중심으로 서술한다. 존 폰 노이만이라는 천재에 관해서 각자 경험한 이야기를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배합하여 재미있게 풀어간다.
책의 서두에 노이만에 관해 설명한다.
암이 뇌까지 전이되어 정신을 파괴하기 시작하자 그는 미군에 의해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격리되었다. 1937년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쉰세 살 유대인 수학자의 침상 곁에는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이던 루이스 스트라우스 해군 소장, 국방부 장관 등이 그의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붙어 앉아 최후의 불꽃을 기다렸다.
현대 컴퓨터를 탄생시키고, 양자역학의 수학적 토대를 놓고, 원자폭탄의 내파 방정식을 쓰고, 게임이론과 경제 행동 이론을 창시하고, 디지털 생명과 자기 증식 기계, 인공지능, 기술적 특이점의 도래를 예고하고, 지구 기후에 대한 신神적 통제를 약속한 이가 제발 한마디라도 더 말해주기를 바라며, 그러나 그는 여느 사람과 같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노이만 야노시 러요시였다. 일명 조니 폰 노이만이라 불리던 사람.
세상에는 두 유형의 사람이 존재한다. 연치 폰 노이만과 우리 나머지.
소설은 노이만을 설명하기 위해 친구 유진 위그너, 동생 니컬러스 오거스터스 폰 노이만, 그의 중등 교사 죄르지 포여, 수학자이며 상담자 시어도어 폰 카르만, 초등학교 교사 가보르 세괴,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폭탄 개발) 연구원 리처드 파인먼, 노이만의 첫 번째 아내 클라리 단(통계학자), 게임이론을 같이 연구한 오스카어 모르겐슈테른, 매니악을 같이 만든 엔지니어 줄리언 비글로, 매니악 연구원 리처드 파인먼, 줄리언 비글로, 생물학자, 유전학자 시드니 브레너, 16진수 개발자, 수학자 닐스 알 바리첼리, 딸 머리나 폰 노이만 등이 회고를 통해 노이만을 설명한다.
폰 노이만은 숨을 거둔 지 나흘째 되던 1957년 2월 12일 프린스턴 묘지에 안치되었다. 굳게 닫힌 관에 들어가, 어머니 머르기트 컨과 장인 찰스 단과 나란히 땅에 묻혔다. 친구들은 그의 무덤에 기다란 수선화 다발을 놓아두었다. 해군 소장 루이스 스트라우스가 추도 연설을 했다. 신부 안셀름 스트릿매터가 장례식을 집도했다.
컴퓨터의 진화는 궁극적으로 인공지능에 이어질 것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특정 분야에서 인간을 앞질렀다. 그 사례가 바둑이다. 인공지능은 바둑과 체스, 그리고 체스보다 더 복잡한 일본 게임 쇼기를 단기간에 평정했다.
1997년 컴퓨터가 체스에서 인간을 앞질렀다. IBM은 그해 세계 1위 선수였던 그랜드마스터 가리 카스파로프에게 체스를 두는 슈퍼컴퓨터 딥블루와의 대결을 제안했다. 삼천 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바둑은 인류의 모든 게임을 통틀어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많이 연구되었다.
바둑 격언.
빈삼각을 두지 말라.
끊을 수 있는 곳은 들여다보지 말라.
쌍립은 양쪽에서 들여다보지 말라. 들여다 보는 데 잇지 않는 바보 없다.
빠르게 두면 빠르게 패한다.
1,2,3을 둘 것 없이 바로 3을 두라.
축을 이해 못 한다면 바둑을 두지 마라.
네 귀를 빼앗기면 필패,
귀에서 사사육활.
쌍립은 절대 끊으려 하지 마라.
2의 1에 묘수가 있다.
날 일자는 건너 붙여라.
공격하려면 눈을 뺏어라.
허술한 됫박형은 죽음이다.
적의 급소가 곧 나의 급소이다.
탐욕은 필패.
죽음은 젖힘에 있다.
수 세기 동안 바둑은 게임을 넘어 하나의 예술로 대접받았다.
바둑은 너무나도 심오하고 복잡하며 미로와도 같아서 컴퓨터로는 절대 함락할 수 없는 분야로 여겨졌다.
훗날 역사가들이 우리 시대를 돌아보며 진정한 인공지능이 처음 반짝인 순간을 고른다면, 2016년 3월 10일 이세돌과 알파고의 두 번째 대국에 놓인 단 하나의 수, 바로 37수가 놓인 순간을 택할 것이다. 그것은 어느 컴퓨터도 둔 적이 없는 수였다. 인간이 고려할 법한 수도 아니었다. 새로웠고, 수천 년간 축적된 지혜와의 급진적 결별이자 전통과 완벽한 단절이었다.
이세돌은 알파고와 대국에서 1:4로 대패했다. 대국 후 기자회견에서 “알파고가 나보다 반드시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인간은 인공지능을 상대로도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믿습니다. 더 보여줄 수 있었는데 그게 참 아쉽습니다. 바둑은 아마추어이건 프로이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입니다. 즐거움이 곧 바둑의 본질이지요. 알파고는 분명 막강하지만, 바둑의 본질은 알지 못합니다. 나의 패배는 인류의 패배가 아닙니다. 이전 대국으로 드러난 것은 나의 약점이지 인류의 약점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세돌은 2019년 11월 돌연 은퇴를 발표했다. 서른여섯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바둑 말고 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으니 새로운 것을 할 때가 되었노라고 말했다.
기계에 맞서는 인류의 최후 보류이자 인간의 직관과 창의력의 정점으로 여겨졌던 바둑에서 딥마인드가 완승했다. 알파고 개발자 허사비스와 딥마인드 팀은 급진적인 변화를 감행했다. 알파고 후계자인 마스터에게서 인간의 지식을 모조리 삭제한 것이다.
마스터가 처음 바둑을 배울 때 참고한 수백만 판의 대국 정보를 지우고, 각 위치의 가치를 가늠하고, 승률을 예측하며, 인간의 시각으로 바둑판을 읽는 프로그램 고유의 능력, 즉 상식의 틀을 형성한 지식을 깡그리 없앤 뒤 뼈대만 남겼다.
목표는 훨씬 더 강력하고 포괄적인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었다. 학습 능력이 단순히 바둑에만 국한되지 않고, 프로그램이 첫걸음마를 떼는 형성기에 인간의 이해와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 인공지능. 이를 위해 그들은 알고리즘을 깨끗이 지워 학습할 수 있는 인간 데이터를 단 하나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알고리즘과 인류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끊어냈다.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새로운 프로그램은 이세돌을 은퇴로 내몬 버전의 알파고와 백 번이 대국을 치러 전부 이겼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똑같은 알고리즘을 체스에 적용하니 힘은 역시나 막강했다. 두 시간 만에 자기 자신을 상대로 역사상 가장 많은 게임을 두었고, 네 시간이 지났을 때는 어떠한 인간보다도 실력이 월등해졌다. 그리고 여덟 시간 만에 세계를 평정한 AI 체스 챔피언 스톡피시와 붙어 승리를 거뒀다.
프로그램은 인간 경험에 전혀 의지하지 않은 채 이 모든 게임을 통달했다. 규칙만 날려주고 스스로 플레이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 다였다. 처음에는 무작위로 수를 두었으나 금세 무찌를 수 없는 존재로 진화했다. 이제 그것은 바둑과 체스와 쇼기에서 세계 최강의 존재가 되었다. 그것의 이름은 알파제로이다.
책 중에서
새끼 들짐승의 놀이 방식이 미래에 목숨이 위험해질 상황에 대비한 훈련인 것과 똑같은 이치로, 어쩌면 수학도 그저 기묘하고 놀라운 게임들을 모아놓은 집합체이며, 누구도 상상 못 한 미래를 대비해 개인의 차원에서건 집단의 차원에서건 인간 정신을 천천히 변화시키는 것이 그 기획의 진짜 목적,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 너머의 목적이라는것, 하지만 인간의 고삐 풀린 상상력에서 튀어나온 그 끔찍한 게임들의 문제는 그것을 현실에서 실행할 때 우리가 어떠한 지식도 대처법도 갖고 있지 않은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학은 경이로운 학문이다. 결국 수학이 세상을 지배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경이로운 수학을 하는 아인슈타인 같은 인간은 신의 계시를 받아 천재의 존재가 필요할 때 한 사람씩 우주가 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책이다. 우주만물의 이치에 관한 독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시간 내어 일독하길 권한다.
책 소개
『매니악』 뱅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2024.01.26. (주)문학동네. 409쪽. 18,000원.
뱅하민 라바투트 BENJAMIN LABATUT.
1980년 네델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칠레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하고 있다. 2021년 부커상 최종심에 오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송예슬. 대학에서 영문학과 국제정치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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