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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Oct 01. 2024

한승원 소설 『사람의 길』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1998년 전라남도 장흥군 안양면 바닷가 율산 마을 뒷산 언덕에 집을 짓고 낙향하여 살아가는 내용이다. 작가는 거처를 ‘해산토굴’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장흥군에서 작가의 집 입구에 ‘해산토굴 150m’라는 입간판을 세워 놓았다.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에서 노후를 보내며 사람들을 만나고 대학에 출강도 한다. 범인이 할 수 없는 작가만의 특권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친구와 있었던 일들을 풀어간다. 갈매기가 되어 말하고, 꽃이 되어 말한다. 소설 후반부에는 작가 자신의 아바타 ‘율산’을 만들어 이야기한다.     


갈매기가 말했다.

“세상은 늘 균형 감각을 잃고 기울어졌다가 다시 회복되곤 합니다. 시계추처럼… 많이 가진 기득권자들이 장악한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자유 시장경제 체제는 야만의 세상입니다. 그들의 각계각층 한두 세대의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마피아 조직 같은 기득권 카르텔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야만 세상에서 그들이 앞에 내세우는 세상의 공정과 평등과 자유라는 것은 한 삼십 도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 경기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약하고 못 가진 ‘흙수저’들은 공정과 평등, 자유를 쟁취하려고 백날 천 날 공을 차서 저쪽 골대 안으로 차 넣으려 하지만 늘 실패하고 상대의 공만 배가 터지도록 먹습니다.”     


밤과 잠은 망각과 더불어 우주의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지니 신의 특별한 선물이다. 신화와 역사는 밤과 잠에서 태동되고 자라는 것이다. 밤이 우주적인 들이쉬는 숨이라면 해가 뜬 낮은 내쉬는 숨이다. 밤과 잠은 신통한 신화적인 블랙박스이다. 신화는 진리 그 자체는 아니지만 진리를 낳는 자궁이다. 숨을 들이쉴 때는 들숨만 생각하고 숨을 내쉴 때는 날숨만 생각해야 한다.      


들숨이 품은 산소가 몸과 마음 안에 속속들이 퍼져가며 수놓는 결과 무늬를 살피고 날숨이 영환으 이런저런 틈새들을 비밀스럽게 빠져나가는 세세한 결을 달콤하게 느낀다. 들숨이 정서와 몸 안에 어떻게 파문을 일으키는지, 날숨이 내 영혼이 때를 어떻게 씻어내는지 살피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든다.    


사람이 길이란 무엇인가. 동양의 선인들은 “어짊仁과 에의, 염치”라고 가르쳤고,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가르쳤다. 누구든지 그 가르침을 벗어나면 벌레로 전락하는 것이다. 인간이 몸과 마음은 집착과 관념의 집이다. 결핍을 해소시키려는, 윤리를 외면한 잘못된 집착이나 관념은 자기를 지옥에 떨어지게 한다. 하지만, 윤리를 바탕에 둔 어떤 관념을 담으면 편안한 안식과 같은 천국의 삶을 살게 된다.     


세상에는 진자리와 마른자리가 있다. 사람들은 진자리에서 하는 일을 피하려고 하고 마른자리에서 하는일을 선호한다. 진자리에서 하는 일은 위험하다. 진자리에서 일하는 들은 목숨을 걸고 밥값을 벌어들이려 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밥은 성스러우면서도 포도청처럼 무서운 것이다.      


인간과 식물이 상반되지만 아주 비슷한 삶의 구조를 가졌다. 인간이 머리털은 식물의 뿌리에 해당하고 인간의 생식기는 꽃에 해당한다. 뿌리가 땅속 깊이 뻗어 수분과 무기물을 흡수하여 줄기로 올려보내서 잎과 꽃이 피어나게 하는 것과 같이 인간의 머리털은 울주를 향해 뻗어 안테나처럼 신성한 영감을 얻어 영혼을 풍요롭게 하고 향기롭게 가꾼다.     


흐르는 바람을 따라 구름도 흐르고, 해도 달도 별도 흐른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흐르는 것이다. 세월도 흐르고 사람도 흐르고 권력도 흐른다. 동도 흐르기 때문에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하여 ‘돈’이라고 부른다.     

촛불은 명상하게 하는 불이지만, 도자기 가마의 불은 흙을 녹여 창조하는 불이다. 사람은 물과 불을 내부에 지니고 살면서, 외부의 ‘물과 불’을 부리며 산다. 술은 ‘불을 내포한 물’이다. 술을 마시면 불처럼 타오르게 된다.      

작가는 팔십 대이다. 망구望九의 시간에 할 일이 무엇이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 한다.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작가는 비둘기, 갈매기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책 소개

『사람의 길』 한승원 지음. 2023.12.22. (주)문학동네. 329쪽. 17,000원. 

     

한승원.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 시작.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소설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 수상. 작품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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