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의 연작소설
이 책은 박상영의 연작소설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책 제목에서 신앙적인 믿음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내용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네 명의 중심인물 ‘게이’ 남자 동성애자와 주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정서가 이런 내용의 소설도 문화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유명 공영방송국 앵커인 김남준, 굴지의 대기업 사원 고찬호, 고찬호와 입사 동기인 유한영, 이태원에서 이자야끼 식당을 하는 임철우는 게이이다. 김남준과 고찬호, 유한영과 임철우는 동거하는 사이다. 유튜브를 하는 황은채가 첫 직장 입사 동기인 김남준을 촬영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고찬호는 게이들만의 데이팅 앱에서 김남준을 만난다. 그리고 아파트를 구입하고 동거한다. 유한영은 Y라는 게이의 장례식장에서 임철우를 만난다. 그리고 동거한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감염자의 동선이 공개되고 접촉자에 대한 검사와 감염자는 격리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어난다.
코로나로 인해 임철우가 운영하는 이태원 이자야끼 식당은 수입이 적자를 거듭하여 마침내 회생절차를 밟는다. 폐업하고 임철우는 다시 본업인 카메라 촬영으로 복귀한다. 격리 조치로 인해 유한영이 다니는 회사는 호황을 맞는다. 유튜브를 하는 황은채가 특채되고 영업 실적은 급상승한다. 황은채가 팀장으로 있는 유튜브 팀에 유한영은 합류한다. 임철우의 어머니는 기독교 신자이다. 코로나 기간으로 단체 활동이 통제된 상황에서 교회에 나가 예배를 본다.
소설은 네 명의 중심인물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 현실을 조명한다. 유한영의 막내 이모, 직장 상사 배소정, 임원 진급을 앞둔 회사 내 인물에 관한 경쟁, 엠지세대의 개성, 아파트 가격의 급등락과 영끌, 페이스북, 계정 팔로우, 노동조합 파업 등 이 시대에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소설로 풀어간다.
방송사 앵커가 된 김남준이 독백이다. “내 인생 두 번째 회사는 언론 쪽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기본급도 높고 출퇴근 시간도 일정하고 사원이라고 함부로 말을 놓지도 않는, 그러니까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 곳이었다. 지금 다니는 방송사의 채용 공고가 떴을 때 막상 붙고 나니 정규직 채용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이 년 동안 계약직으로 근무해야 했다. 기껏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불안정의 세계로 뛰어드는 게 불안했다. 그러나 이 년이라는 정해진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기약이 없는 기다림보다는 끝이 정해진 실패가 편할 수도 있었다.”
고찬호의 말이다. “모든 말에는 힘이 있다. 특히 어떤 말은 주술에 가까울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알지 못하는 새 마음을 파고들어 삶의 각도를 아주 조금 바꿔놓기도 한다. ‘성격이 곧 운명이다.’라고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좋은 사람. 그 흔해 빠진 네 글자가 괜히 생격하게 느껴졌다. 저 달 너머 무지개 세계에나 존재하는 환상의 동물과 같은 느낌이다.”
임철우는 죽을 때까지 얼굴 보지 않겠다고 성질을 내고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욱하는 성질은 모계유전이다) 전염병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술집 같은 건 당장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목숨보다 귀한 일은 없다고, 주님이 다 먹고살게 해주신다고, 처음부터 반복해 온 레퍼토리였다. 기도는 아무리 넘쳐도 모자람이 없고, 결코 너를 배신하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악의 총체나 다름없었다. 내가 거푸집으로 찍어놓은 것처럼 어머니를 닮았다는 걸 알면서도 마땅찮은 일이 있을 때마다 꼭 아버지를 들먹였다. 라고 회상한다.
소설을 읽었지만,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이성애만 유일한 사랑이라고 생각해 온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하는 의문과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책 소개.
『믿음에 대하여』 박상영 지음. 2022.07.20. (주)문학동네. 290쪽. 14,500원.
박상영. 2016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단편소설 『페리스 힐튼을 찾습니다』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허균문학작가상, 신동엽문학상, 2018년 젊은작가상, 2019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