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인생의 법칙』

「혼돈의 해독제」

by 안서조

이 책의 부제목은 「혼돈의 해독제」이다.

이 책은 너무 맞는 말만 하고 있다. 지키기 힘든 것은 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법칙 12가지를 말한다.

법칙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법칙2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법칙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법칙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

법칙5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

법칙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법칙7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법칙8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법칙9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들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법칙10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하라.

법칙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법칙12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어라.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자는 현명하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는 도道가 있어야 한다.

많은 물질을 가진 자는 부유하지만,

자신이 충분히 갖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도道와 하나가 된 사람이다.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이 오래가고,

죽어도 잊히지 않는 자가 오래 사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질문과 답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자녀의 죽음이었다. 자녀의 죽음은 최악의 재앙이다. 그런 비극을 겪으면 많은 인간관계가 허물어지는 후유증이 뒤따른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남은 가족들의 결속력이 더욱 강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아픔을 서로 보듬어 주며 삶의 비극에 함께 맞서야 한다. 밖에서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더라도, 가족의 품은 따뜻하고 안락한 거실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으면 인간의 나약함과 유한함에 대해 더욱 깊이 알게 된다. 두려움과 아쉬움도 커진다. 하지만 깨달음도 얻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낀다. 언젠가 나는 80대 부모를 뵐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남았는지 계산해 본 적이 있다. 80대인 사람의 남은 수명은 평균적으로 10년 이하다. 운이 좋아도 내가 부모를 만날 기회가 스무 번도 남지 않은 것이다.

아내와 어떻게 지내야 할까? 아내를 성모처럼 대하라. 그러면 아내도 세상을 구원해 줄 영웅을 낳을 것이다.

딸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 뒤에서 든든히 후원하고, 경청하고, 지켜 주고, 정신을 단련시키고, 엄마가 되고 싶어 하면 훌륭한 선택이라고 격려하라.


부모님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그분들의 인내와 고통이 자신의 행동으로 보상받도록 하라.

아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어라.

세상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자신이 존재하는 게 존재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

거짓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기회를 주어라.


내가 지금 가진 것이 하찮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기억하라.

탐욕에 사로잡히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낫다는 걸 기억하라.

늙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젊은 시절의 잠재력을 원숙한 인품으로 대체하라.

내 아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아 주고 그들의 고통을 치유해 주어라.


인생에 재앙이 닥치며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다음의 움직임에 관심을 집중하라.

정신력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할까?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당신이 경멸하는 짓을 하지 말라.

몸을 함부로 다루지 않으려면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할까? 영혼을 위해서만 사용하라.

곤란한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삶의 길로 향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하라.

가난한 사람의 곤경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상심한 마음을 다독거려 줄 만한 적절한 예를 생각해 내라.


질서의 공간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하므로 예측할 수 있고 협력적이다.

질서는 사회 구조가 잘 갖춰진 세계이고, 이미 탐험이 끝난 구역이자 친숙한 공간이다. 질서의 상태는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상징이나 상상으로 그려진다.


반면에 혼돈(카오스)는 예상하지 못한 뜻밖에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혼돈은 주로 여성적인 상징이나 상상으로 표현된다. 혼돈은 흔하고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새롭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혼돈은 창조인 동시에 파괴이며, 새로운 것의 근원이자 죽은 것의 종착역이다. 도교의 유명한 상징에 비유하면, 혼돈과 질서는 음과 양이며, 머리와 꼬리가 맞물린 두 마리의 뱀이다. 질서는 흰색 수컷 뱀이고, 혼돈은 검은색 암컷 뱀이다.


목표는 주로 긍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 없이는 행복해지기 어렵다. 나아지고 있다는 개념에는 어떤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가치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하지만 가치 체계들은 자주 충돌한다. 내가 속한 집단의 믿음 체계가 사라지면 삶은 혼란스럽고 비참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집단의 믿음 체계는 필연적으로 다른 집단과의 충돌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에게는 법칙과 기준, 가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마치 짐을 나르는 동물과 같다. 우리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짐을 짊어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일상과 전통도 필요하다. 그런 것이 질서다. 우리가 올바르게 산다면, 부담스러운 자의식의 무게를 견뎌 낼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르게 산다면,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다. 인간 사회가 그렇듯이 바닷가재 세계에서도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 인간 사회에서는 상위 1%의 자산 총액이 하위 50%의 자산 총액과 비슷하다. 진화는 보수적이다.라는 말은 생물학계에서 진리로 통한다. 진화는 자연이 이미 만들어 낸 것을 기초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새로운 특성이 더해지고 과거의 특성이 조금 변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진화는 대체로 변이와 자연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다. 변이는 유전자 조합과 무작위적 돌연변이 등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같은 종이라도 개체가 각기 다르다. 자연은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개체 중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개체를 선택한다.


뇌에서 사회적 위치를 평가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는지 관찰한다. 그렇게 수집한 증거를 근거로 뇌는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고, 우리에게 지위를 부여한다. 동료들이 우리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여기면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든다. 그러면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사건이나 환경에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더욱 강하게 반응한다.


일상이 규칙적이지 않으면 불안증과 우울증도 잘 치료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시스템은 적절히 반복되는 하루의 생체 리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담자를 만나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수면에 대한 것이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잠을 자는지 묻는다. 두 번째로 아침을 챙겨 먹는지 묻는다. 불안증에 시달리는 내담자가 일정한 수면 스케줄을 지키고 아침을 먹는 것만으로도 정상 범주로 돌아오는 경우를 많이 봤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선다는 것은 겉모습에만 관련된 법칙이 아니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선다는 것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삶의 엄중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미다. 방주를 지어 홍수로부터 세상 사람들을 지키고, 폭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이끌고 사막을 건너겠다는 의미다. 옳은 것과 편한 것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세부터 반듯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바라는 것이 있으면 당신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라, 권리를 가진 사람처럼 당당하게 요구하라. 허리를 쭉 펴고 정면을 보고 걸어라. 좀 건방지고 위험한 인물로 보여도 괜찮다. 세로토닌이 신경 회로를 타고 충분히 흐를 것이고,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다.


싸움에서 승리한 바닷가재를 기억하라. 바닷가재는 3억 5,000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삶의 지혜를 알고 있다. 똑바로 서라! 가슴을 펴고!


당신은 남들에게 어떤 식으로 대접받고 싶은가? 당신은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의무감과 책임감 때문에 당신이 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 좋아하는 척하는 건 없는가?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나 누군가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은 없는가? 원망은 마음에 병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감정이다. 원망과 오만, 기만은 악마 삼 형제다. 이 악마 삼 형제보다 인생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미래는 과거와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미래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는 고정되어 있고 미래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 어느 정도의 열의만 있으면 하루아침에도 바뀔 수 있다. 현재는 언제나 결함이 있다. 그러나 현재 상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아가려는 방향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현재 내 주변을 둘러싼 물리적인 환경과 심리적인 환경에 집중하라. 당신을 짜증 나게 하는 게 뭔지. 신경 쓰이는 게 뭔지, 걱정거리가 뭔지 정확히 파악하라. 그리고 당신이 바로 잡을 수 있는 것과 바로 잡아야 할 것에 주목하라. 그런 것을 손쉽게 찾는 세 개의 질문이 있다.

‘이것이 지금 나를 짜증 나게 하는 것인가?’

‘이것은 내가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인가?’

‘정말 나는 이것을 바로잡을 의지가 있는가?’

이 질문 중 ‘아니요’라는 답이 하나라도 있으면 시선을 돌려야 한다. 목표를 낮춰도 좋다. 당신을 괴롭히는 것, 바로잡고 싶고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나올 때까지 찾아보고, 그것을 바로잡아라.


습관적으로 엄마 얼굴을 때리는 아기가 있다. 왜 그런 짓을 할까? 답은 분명하다. 엄마를 지배하기 위해서다. 나쁜 짓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아이가 폭력적인 게 걱정되는가? 폭력은 당연한 것이다. 폭력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평화다. 평화는 배우고 익히고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행동을 지속적으로 교정해 주면 어린아이는 허용되는 공격의 한계를 알게 된다. 교정 조치가 없으면 호기심이 커져서 공격적인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상대를 때리고 물어뜯고 발로 차는 행위가 습관이 된다. 한계라는 신호가 분명하게 주어질 때까지 그런 행동은 계속된다. 교정은 빠를수록 좋다.


아이가 우는 가장 흔한 이유는 분노 때문이다. 우는 아이의 안면 근육 움직임을 분석하면 분명히 확인된다. 화가 나서 우는 아이와 두렵거나 슬퍼서 우는 아이는 안면 근육의 움직임이 전혀 다르다. 표정뿐 아니라 울음소리도 달라서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분노의 울음은 지배욕을 드러내는 행위다. 그것에 맞게 다루어야 한다.


왜 자녀는 부모의 독선적인 명령을 따라야 하는가? 모든 아이가 어른의 말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른이 완벽한 존재는 아니지만, 모든 아이는 어른의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도 어른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게끔 행동하는 게 유리하다. 모든 아이는 시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집 밖 세상에서 불행과 실패로 이어질 만한 행동을 하면 망설이지 말고 단호하게 혼내라는 뜻이다.


13세기 영국의 신학자 오컴은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꼭 필요한 것 이상을 가정해서는 안 된다’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것이 유명한 ‘오컴의 면도날’이다. 윤리와 법에도 오컴의 면도날이 적용된다. 규칙은 되도록 적을수록 좋고 단순할수록 효율적이다. 가장 중요한 최소한의 규칙만 남겨라. 그리고 규칙을 어겼을 때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 보라.


삶은 고단하다. 모두 삶의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죽음도 피할 수 없다. 때로는 의도적인 맹신, 잘못된 판단, 악의적 행동 같은 나의 잘못 때문에 고통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고통을 자초한 것이라 덜 억울하다. 결국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별로 위로가 안 된다. 고통을 겪는 사람이 행동을 바꾸면 그 후의 삶이 덜 비극적으로 전개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통제력은 제한되어 있다. 절망과 질병, 노화와 죽음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가 나약한 이유는 우리 잘못이 아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무관심과 부당한 처사에 절망해 절규할 것이다. 그리스도조차 십자가 앞에서 버림받은 기분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운명을 탓하거나 우연의 잔인함을 한탄할 것이다. 삶의 고통이 자신의 성격적 결함 때문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철저히 분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히브리인의 고난은 일정한 형식을 반복한다.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노아의 방주, 바벨탑 등은 기원도 알 수 없는 아득한 옛날이야기다. 대홍수 이후에야 비로소 역사가 시작된다. 그 역사는 아브라함으로 시작된다. 아브라함은 후손들은 『구약성경』의 히브리 민족이 된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히브리성경』이라고도 한다. 히브리인은 야훼, 즉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역사적인 모험을 시작한다.


삶이란 것이 그렇다.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체제를 세운다. 가족을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국가를 만든다. 이런 체제의 밑바탕이 되는 원칙을 정하고 믿음이 체계를 만든다. 그러나 성공이 계속되면 무사안일에 빠져 마땅히 해야 할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현재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어렵고 귀찮고 안 좋은 일에는 눈을 감아 버린다. 세상이 변하고 타락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대한민국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나 정치권을 탓하지 말라. 당신의 적들을 욕하지 말라. 체제를 손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당신의 경험을 먼저 정리하라. 또 겸손한 마음을 가져라. 가정도 평화롭게 꾸려 가지 못하면서 어떻게 함부로 세상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양심과 이성이 시키는 일만 하라.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당신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게 된다. 개념적으로도 진실이지만, 생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당신이 용감하게 탐험에 나서면, 미지의 것을 향해 자유 의지로 도전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을 것이고, 그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자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개념적 진실이다.


생물학적 증거는 어떤 유기체가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중추 신경계에서 새로운 유전자들이 활성화한다는 것이 최근에 확인되었다. 새 유전자들은 새로운 단백질들이 유전 암호와 연결되고, 이 단백질들이 구성단위가 되어 뇌에 새로운 구조를 형성한다. 우리의 많은 부분이 생물학적으로 여전히 발생기 상태에 있다. 자기 생각을 당당히 말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어디라도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미완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삶은 미완의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권리욕이 강한 사람은 조직에서 새로운 규칙을 자주 만든다. 민주당 이재명이 그렇다. 그런 규칙은 대체로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이다. 짜증을 유발하고 일하는 사람의 즐거움과 의미를 빼앗아 간다. 사람들은 대체로 말해 봐야 입만 아프지하며 넘어간다. 그러면 또 다른 규칙이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강력히 반발하지 않아서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진다. 당신의 상대는 지금껏 어떤 반대도 받지 않아서 더 강해지고, 조직은 더 부패한다. 민주당이 그렇다. 조직의 성장은 정체되고, 억압은 심해진다. 처음부터 반대하지 않고 괜찮은 척하던 사람들도 이 사태의 공범이다.


술은 자의식이 견디기 힘든 짐을 일시적으로 덜어 준다. 술에 취한 사람도 미래를 의식하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당장은 기분이 좋고 신이 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그 시간을 즐긴다. 그런데 술에서 깨면 더 곤란한 처지에 놓인 자신을 발견한다. 의식을 잃고 무모한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멀쩡할 때는 넘지 않을 선을 넘는다.

과거를 기억할 때, 우리는 과거의 일부만을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어버린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하는 것이나 망각한 것이나 중요도로 치면 같을 수 있다. 기억하는 것이라고 해서 중요한 것도 아니고, 잊었다고 해서 아닌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분류할 때, 일부를 선택해서 그럴듯하게 짜 맞추고 나머지는 배제한다. 우리는 충분히 알지도 못하며, 충분히 인식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체다. 그리고 주관적이다. 늘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다.


파경을 맞은 부부도 어쩌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한두 번 혹은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함께 살지만, 친밀감은 점점 약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각자의 역할을 두고 다투었을지도 모른다. 수십 년 전부터 많은 가정에서 전통적인 가사 분담이 자유와 해방이란 이름으로 해체되었다. 그런 해체는 제약으로부터 영광스러운 해방이 아니라 혼돈과 갈등과 불안함을 남겼다. 게다가 합의된 전통이 없을 경우 만만치 않은 세 종류의 선택지, 즉 노예화, 폭압, 협상만이 존재한다. 둘 사이에는 암울한 지배와 순종만 있을 뿐이다. 바람직한 인간 대 인간관계가 아니다.


남편과 아내의 흥미를 자극하는 공통 주제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 부부 관계를 항상 생동감 넘치게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분한 일상으로 전락할 때까지 방치 해두는 게 더 쉽다. 살아 있는 것은 관심을 받지 못하면 죽기 마련이다. 삶은 인위적인 노력이 더해져야 유지된다. 어떤 커플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없이는 완벽해질 수 없다.


모든 것을 명료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확연히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아내와 남편 모두 명확히 보고 이해하기를 바라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안갯속에 감추었다. 여자는 남편을 떠남으로써 무엇을 얻었을까? 부부가 대응도 대화도 하지 않고 심사숙고하지도 않으며, 마음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지도 않고, 어떤 책임도 떠안지 않는다면, 혼돈을 질서로 바꾸려 노력하지 않고, 혼돈이 들불처럼 일어나 우리를 삼켜 버리기를 기다린다면, 재앙을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정확한 표현은 정밀한 구분을 가능하게 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실제로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일어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모든 가능한 사건을 구분할 수 있다. 당신이 의사에게 그 통증에 대해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어떤 질병이 당신을 괴롭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진단을 위한 대화, 즉 정확하게 표현하는 행위를 회피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아예 사라져 버린다. 정확성이 비극 자체를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 놓을 기회를 제공할 수는 있다.


당신이 과거에 무엇을 했고,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자신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고, 그 단어들로 올바른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으로 올바른 단락을 구성해야 한다. 과거는 정확한 언어로 핵심을 포착했을 때 온전하게 되살아난다. 눈앞의 현실을 명료하게 서술해야 현재가 미래를 방해하지 않는다. 현재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미래가 혼탁하고 불쾌한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정확한 언어로 말하면, 우리는 존재 가치가 정돵화되는 빛나는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 정확한 말로써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해 낸다.


당신의 의도를 말로 표현해 보라. 그래야 당신이 의도하는 바를 명확히 알아낼 수 있다. 당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라. 그래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아낼 수 있다.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라. 당신의 잘못에 주목하고, 그 잘못들을 정확하게 말로 표현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라. 이렇게 할 때 각자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삶의 비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낼 수 있다.


문화는 억압적 구조로 존재한다. 예로부터 항상 그렇게 존재해 왔다. 문화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이며 실존적인 현실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모두 조상들이 남긴 선물이다. 우리가 하는 생각은 모두 과거에 우리보다 똑똑한 누군가 이미 한 것들이다. 우리를 둘러싼 유무형의 모든 환경 역시, 특히 서구 사회의 경우에는 조상이 남긴 선물이다. 덜 부패한 정치, 경제 제도, 과학 기술, 부, 수명, 자유, 풍족한 환경, 기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화는 한 손으로는 무엇인가를 빼앗지만, 조건이 맞으면 다른 손으로 더 많은 것을 준다.


눈앞에 드넓게 펼쳐진 땅이 여행자에게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 말해 주지 않는 것처럼, 사실도 그것이 왜 사실인지 스스로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현상이라도 그것을 인식하고 상호 작용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렇다고 모든 해석이 모두 유효하지는 않다. 해석의 수는 거의 무한에 가깝고, 이 말은 곧 문제 역시 무한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효한 해결책은 무척 제한적이다.


건강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능력’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기본 요인이다.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능력과 역량과 실력이지, ‘힘’이 아니다. 예외는 있다. 성공한 기업가나 예술가 중에는 성실성보다 개방성이 두드러지는 경우도 있다. 개방성도 성실성이나 지능 못지않게 중요한 자질이다.


1800년대 말 스위스의 인류학자 요한 야코프 바흐오펜은 무질서와 혼돈이 지배하는 최초의 상태 이후 역사의 첫 단계는 ‘모권 사회’였다. 여성이 권력을 쥐고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사회다. 집단혼에 가까운 다자간 사랑과 상대를 가리지 않는 혼음이 성행하여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두 번째인 ‘디오니소스적 단계’는 전환 단계로 모권 사회 기반이 뒤집혀 권력이 남성에게 넘어간다. 세 번째는 지금도 계속되는 ‘아폴로적 단계’다. 가부장제가 지배하고, 한 여성이 한 남성에게만 속하는 단계다.


개는 사람과 비슷하다. 개는 사람의 친구이자 충실한 동반자다. 길들어지고 사회적이며, 위계질서를 따른다. 개는 가족 서열 밑바닥에서도 즐거워한다. 관심을 받는 만큼 충성과 존경과 사랑으로 보답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동물이다. 사회적이지도 않고, 일시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위계질서를 따르지도 않는다. 완전히 길들어지지도 않는다. 재롱을 부리지도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친근감을 표시한다. 개는 주인 말을 잘 따르지만, 고양이는 스스로 결정한다. 고양이는 자기만의 이유로 인간과 자발적으로 교감하는 듯하다.


고양이는 자연 그 자체이자, 가장 순수한 형태의 존재다. 인간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느낌마저 든다. 어떤 때는 휙 달아나 버리고, 어떤 때는 나를 완전히 무시한다. 그것이 고양이 다운 반응이다. 가끔 고양이가 다가와 손에 얼굴을 들이밀면서 좋아할 때도 있다. 때로는 바닥에 몸을 뒤집고 누어 등을 활처럼 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자세에서도 손을 물거나 할퀴기도 한다.


유대교에서 예로부터 전해지는 율법에 관한 문답이 있다.

“전지전능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절대자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절대자에게 없는 게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에게 없는 것은 바로 한계다. 만약 당신이 이미 모든 것이고, 어디에도 있다면, 굳이 가야 할 곳도 없고 굳이 뭔가 되려고 목표로 삼을 것도 없을 것이다. 한계가 없으면 어떤 이야기도 없으며, 어떤 이야기도 없으면 삶이 없다.


말다툼할 때는 누구나 자신이 맞고 상대방이 틀렸기를 원한다. 희생하고 변해야 할 사람은 상대방이지 내가 아니다. 만약 내가 틀렸고 내가 변해야 할 사람이라면 과거에 대한 기억,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 미래에 대한 계획 등을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더 나아지기로 결심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려면 반복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이때 옳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상황이 순조롭게 돌아가면 다음 달이나 다음 해에 뭘 할지 계획을 세우고, 5년 뒤나 10년 뒤 맞이할 장밋빛 미래를 꿈꿀 수도 있다. 그러나 악어에게 다리를 물린 순간에는 미래에 대한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인생의 힘든 순간을 겨우 지나오면서 내가 터득한 비결 하나는 시간 단위를 아주 짧게 끊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장 34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7~8절

이 책은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책 소개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2018.10.31. 메이븐. 551쪽, 16,800원.

조던 번트 피터슨 Jordan B. Peterson.

1962년 6월 12일 캐나다에서 태어난 임상심리학자이자 토론토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앨버타 대학교에서 심리학 학사 학위, 맥길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 취득, 주요 연구 분야는 이상심리학, 사회심리학, 성격심리학 등이다. 1998년부터 토론토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6년 유튜브에 정치적 올바름과 캐나다 정부의 Bill C-16 법안에 대한 비판을 담은 비디오를 게시하며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저서, 『12가지 인생의 법칙: 혼돈의 해독제』 등.


강주헌.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브장송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건국대학교 등에서 언어학을 강의했다.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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