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과거 어딘가에 있었을, 그리고 누군가에겐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이야기'이다.
어릴 적 내가 다리에 있는 이상한 반점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받고 온 날이면, 엄마는 날 무릎에 앉혀 놓고 책을 읽어주셨다. 무시무시한 괴물과 용감히 맞서 싸우는 영웅의 모험담, 아름다운 공주님과 멋진 왕자님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 따끈하게 데운 우유를 홀짝이며, 나는 포근한 엄마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가끔은 책 말고 엄마의 할머니, 그 할머니의 할머니, 그 할머니의 할머니가 직접 겪으셨다는 일을 들려주시기도 했는데, 그럴 땐 우유 마시는 것도 잊고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래서 하얗게 낀 우유 거품자국을 컵에서 지우느라 나중에 꼭 애를 먹곤 했다.
엄마는 끝에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야 해. 너무 힘들면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보렴."
내가 태어난 해에는 세상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한다.
우리나라는 그걸 기회 삼아 오히려 많은 돈을 벌었으나, 아빠는 우리 같은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더 어려워졌다고, 그게 다 욕심 많은 왕가 탓이라고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고, 많이들 길가에 나앉았다. 찬란한 햇빛 아래서 구슬땀을 흘렸을 얼굴들은 잿빛 때가 끼어 거무튀튀하게 죽어갔다.
내가 8살이 되던 해, 어느 극장에 불이 났다.
사람들의 눈에도 불꽃이 튀었다. 그들은 왕에게 물러나라 소리치며 거리로 나갔다.
총칼이 그들을 겨누고, 피가 흘렀다. 피는 붉은색인데, 어째서인지 다들 그날을 '검은 금요일'이라 불렀다.
다음 해, 왕이 물러나고 새 정부가 세워졌다.
마침내 찾아온 새날은 기쁨의 함성이 그리던 모습이 아니었다. 한때 힘을 합쳐 못된 왕을 쫓아낸 이들은 사탕 하나를 두고 싸우는 애들처럼 자기들끼리 다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힘이 센 쪽이 이겼다.
이긴 자들은 큰 소리로 입을 모아 외쳤다.
경전에 나오기를! 코란에 이르기를! 율법! 율법! 율법!
어느 날, 한 무리의 험상궂은 아저씨들이 우리 집에 쳐들어와 부모님과 나를 끌고 나갔다. 아저씨들은 엄마 아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강제로 무릎을 꿇렸다. 그중 한 아저씨가 내 손을 잡아끌더니, 손가락으로 부모님을 가리키며 물었다.
"얘야, 네 부모가 말이다? 저기 서방의 이교도들이 만든 이데올로기를 좋아한단 말이다. 어쩌면 좋겠니? 벌을 받아야 하겠지?"
겁에 질린 나는 덜덜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럼 너 하는 거 봐서 정하마."
아저씨는 껄껄 웃고는, 품에서 코란을 꺼내어 내 눈앞에 펼쳤다.
"여기. 읽어 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엄마 아빠가 벌을 받게 된다. 더듬거려서도 안되었다. 보란 듯이 완벽하게 잘 읽어서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날 훌륭한 이슬람교도로 키웠는지 보여야 했다.
나는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경전에 적힌 문구들을 읽었다. 아저씨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참 잘 읽네."
칭찬을 들은 나는 환하게 웃으며 엄마와 아빠를 돌아보았다.
탕! 큰 소리와 함께 엄마의 가슴이 붉게 물들었다. 엄마가 앞으로 쓰러지셨다.
탕! 또 한 번 큰 소리가 났다. 이번엔 아빠의 이마에 검붉은 구멍이 생겼다.
내게 읽어보라 한 경전을 위로 쳐들며, 아저씨가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위대한 경전에 명시되어 있기를, 여자는 지능이 부족하다! 따라서 공부를 해서는 안된다!"
땅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제야 비로소, 극장에 불이 난 그날이 왜 검다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조만간 이웃나라 이라크와 전쟁이 있을 거란 소문을 듣고, 외삼촌은 마침내 탈출을 결심했다.
그는 나를 데리고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이집트로 몰래 밀입국했다. 우린 다른 난민들과 함께 이집트에서 배를 타고 유럽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이집트에서의 마지막날 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사파이어 위에 작은 다이아몬드 조각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현지 브로커가 씩 웃으며 내게 농담을 했다.
"꼬마야, 너무 그렇게 올려다보지 마라. 이집트의 밤하늘을 본 자는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속설이 있거든."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엄마가 힘들면 별을 보라고 했는데. 여기로 돌아오면 안 되니까 참아야 했다.
삼촌과 나를 태운 밀항선은 무사히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유럽땅에 발을 들인 우리는 천신만고 끝에 독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외삼촌 말씀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기회를 넓히고 싶었으나, 책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내가 글을 읽어서 우리 부모님이 죽었다'는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쁜 건 그 사람들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좀 더 똑똑했더라면, 그들의 계략을 알아채고 못 읽는 척했더라면, 어쩌면 그날 엄마 아빠는 살았을지도 모르니까.
어차피 공부도 못하는데, 어려운 살림에 보탬이나 되자 싶어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식당 서빙, 청소, 가게 종업원 등. 하루에도 두세 타임씩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대학가 식당에서 홀 서빙을 하던 중 그를 만났다.
한국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 그는 운명처럼 내게 다가왔고, 자석처럼 날 끌어당겼다.
비록 우리 둘 다 물질적으로 많이 부족했지만, 함께라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와 누리는 소박한 일상이, 작은 행복이 왕자님과 공주님의 거창한 러브 스토리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래서 그의 나라로 따라갔다.
그리고, 아이를 가졌다.
"그만 임신중절수술 하자."
그토록 자신이 있었는데.
세상엔 참고 버티면 나아지는 고난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어려움도 있는 모양이다.
"아이는 또 가질 수 있어. 하지만 당신은 오직 하나뿐이야. 그러니까,"
"애 듣겠어. 그만해."
나는 배를 쓰다듬으며 눈을 흘겼다.
남편은 입을 다물고 퉁퉁 부은 내 손을 살며시 쥐었다. 입술 안쪽 살을 깨물고 있는지 그의 입이 살짝 우그러들었다. 나에게 초조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저 모습. 너무 안쓰러웠다.
임신중독증. 이름 그대로 임신 중에 나타나고, 임신이 끝나면 사라지는 증상.
바보같이 남편은 모든 걸 자신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나 또한 내가 문제인가 싶어 아이한테 미안하고, 우리 형편에 결코 만만치 않은 병원비를 내고 있는 남편에게 미안했다.
내가 괜히 고집을 피우는 걸까? 아니야, 그래도 애를 살려야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진득하게 참으면 해결되는 일이라면 참 쉬울 텐데. 그런 건 백만 번이고 천만 번이고 자신 있는데.
"... 우리, 애기 이름 지금 지어 놓을까?"
"... 갑자기 왜?"
"그냥. 미리 하면 좋잖아."
내가 웃자 남편도 마지못해 따라 웃었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견디는 것뿐.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각오를 좀 더 단단히 다질 셈이었다.
"어떤 이름이 좋아?"
남편의 질문을 듣자마자 어릴 적 보았던 밤하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별에 대한 이름이나, 반짝반짝 빛나는 이름이 좋을 거 같아."
"별? 그럼 '별 성(星)'자 쓸까?"
"음... 그거 말고 또 있어?"
"'빛 광(光)'은 어감이 이름에 쓰긴 좀 그렇고... '빛날 빈(彬)'은 어때?"
"빈은 싫어. 뭔가 가난하게 들려."
"아하하. 그럼... 아, '빛날 휘(輝)'?"
'휘'. 나는 가만히 그 소리를 입에 담아 보았다. 작지만 강한 바람 같은 소리. 그것이 남긴 떨림이 입술에 계속 남아 있는 듯했다.
"좋다. 휘."
아기도 마음에 드는지 앙증맞은 발차기로 화답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기가 주는 감각에만 집중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지금 하려는 말을 하면서 남편의 얼굴을 볼 용기가 없어서였다.
지금만큼은, 이기적인 어미가 되기로 했다.
"여보,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우리 휘 꼭 살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