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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tis Nov 15. 2024

어느 부적격자의 회고록

- You’re Sol, aren’t you?(넌 솔이지, 그렇지?)




돌이켜 보면, 그래.


“솔아, 같이 놀자!”


남들이 보기에 나는 꽤 별난 아이였을 거다.


“......”


거의 말을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오늘 학교 끝나고 같이 놀이터 갈래?”


“응.”


어쩌다가 말을 해도 대부분 단답형이었다.

남들과 대화할 때 뭘 어떻게 말하면 좋은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과연 내가 맞는 말을 하는 건지,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을는지 걱정하는 동시에 그걸 들킬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집 밖에서는 말과 움직임을 가능한 최소한으로 했다.

마네킹처럼 가만히 있는 게 특기였다.


어느 날은 피아노 개인 교습을 받으러 간 형을 따라갔다가 인형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쟤가 최성진 동생이야.”


“어? 깜짝이야, 난 인형인 줄 알았어.”


아마 농담이었겠지만, 나는 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잠시나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눈길로부터, 동질적이고 정상적인가 아니면 이질적이고 비정상적인가 끊임없이 판단하려 드는 그 감시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뭔가가 부족했다.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네 살 위의 형과 텔레비전.

어릴 적 나는 이 둘을 통해 세상에 대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다.

책은 읽지 않았다. 읽을 필요가 없었다.


“솔아, 이거 봐. 이건 대왕 고래라고,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야.”


똑똑한 형이 전부 읽고 필요한 것만 간추려 내게 알려주었다.


[콰광!]


[포기하면 안 돼!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게 끝이야!]


텔레비전은 많은 정보를 시각화, 청각화 하여 이유식처럼 쉽게 떠먹여 주었다.

다만, 형과 달리 텔레비전은 늘 맞는 말만 하지는 않았다.


[친구와 함께 다니면 언제든 즐거운 법이거든.]


어떻게 언제나 즐겁기만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반대다.

내게 있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 시험당하고 평가받는 시간이었다.





“어, 너! 우리 같은 학교잖아. 나랑 같은 아파트에 사는구나!”


하루는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아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쭈뼛거리고만 있자 그 아이가 방긋 웃으며 물었다.


“반갑다. 넌 몇 층 살아?”


“11층.”


“이름이 뭐야?”


“최솔.”


“솔이구나. 혹시 이사 왔어?”


“응.”


“언제?”


“두 달 전에.”


“아, 그래서 올해 처음 보는 거였구나.”


물 흐르듯이 막힘없이 이어지는 대화.

이 애는 어쩜 이렇게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많은 질문거리를 생각해 낼 수 있을까,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존경심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무렵에는 그 아이도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잠잠해졌다.

우리는 말없이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숫자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동그란 불빛만 바라보고 있었다.


“......”


“......”


이내 엘리베이터는 그 아이의 집이 있는 7층에 다다랐다.

딩-

천천히 문이 열리고, 상자같이 답답한 공간에 막 공기가 통하려는 찰나, 그 아이가 퉁명스럽게 입을 열어 감추고 있던 속마음을 꺼내 보였다.  


“그런데 넌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안 물어보는구나.”


나는 멍하니 아무 대답도 못한 채, 쌩하고 가버리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저 충실히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상대가 내게 말을 걸어온 만큼 나도 상대에게 뭔가 물어봐야 한다는 걸, 난 그날 처음 배웠다.

형도 텔레비전도 그런 건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외줄 타기를 하는 심정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꽤 난처한 꼴에 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서툴기 그지없는 광대였다.

내게는 뭔가가 부족했다.





어찌어찌 하루 일정이 끝나도 내게 그날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마치 망가진 비디오 파일처럼 머릿속에서 내가 한 말과 행동,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반복 재생되고, 나는 그걸 보면서 실수나 결점이 없었는지 확인했다.

만약 하나라도 발견되면 그때부터는 끝없는 고문의 시작이었다.


[너무 한심해.]


[이것 봐, 넌 살 자격이 없어.]


형체 없이 목소리만 갖춘 배심원들이 돌아가며 유죄를 외쳤다.

그들의 손가락질은 내가 죄를 자백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고 주문과도 같은 이 말을 외워야만 겨우 잠깐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잘못했어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 같은 건...”


실수의 경중은 상관이 없었다. 남이 했다면 별거 아니라고 어깨를 으쓱했을 작은 실수라도 내가 하면 얘기가 달랐다.

시커먼 타르처럼, 꼬리표처럼 의식에 달라붙어 버린 부적격의 표식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그 위에 하얀 망각의 시트를 몇 겹이나 덮어도, 마르지 않는 오점은 먹물처럼 번져 올라와 잠시 잊고 살아가는 나를 뜯어먹었다.


대체 남들은 이걸 어떻게 견딜까. 다들 이런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걸까.

나만 빼고 모두 대단해 보였다.

세상에 나만큼 가치 없는 인간은 없었다.


언젠가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을 때, 죽 진열되어 있는 주전자들을 보았다.

색깔과 크기는 모두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주전자라 불릴만한 모양을 하고서 반짝반짝 광택을 뽐내며 선택받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당당히 품질검사를 통과하고 나온 늠름한 자태.

나는 그 주전자들이 부러웠다.


‘나보다 낫구나.’


나도 누군가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 정도면 되었다고 들을만한 것이었다면...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분명 나는 불량품인 거다.  





[나는 사실 많은 것으로부터 도망쳤어. 어쩌면 지금까지 계속 도망쳐 온 인생일지도 몰라.]


‘도망... 어떻게? 어디로?’


남의 시선과 평가가 두려우면서도, 나는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도망칠 수 없었다.

도무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한심한 존재였기에.


내가 무가치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건지 뭔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족한 사회성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는 또래 아이들 몇몇이 늘 함께했다.

그들은 조용한 내게 말을 걸었고, 둔한 나와 함께 놀아 주었다.

나는 그것이, 어쩌면 내가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녀린 촛불 같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건 그들이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알게 되면 나를 손가락질하며 배제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서 일어나 두꺼운 장막처럼 희망의 촛불을 덮어버렸다.

상대가 적극적으로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마음속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더욱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얘기에 치중한 나머지 내가 뒤처진 것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앞으로 나아간 적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아마 그런 그들에게 서운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며, 마치 텔레비전 장면을 보듯이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난 깨달았다.

저 안에, 사람들 속에 그럴듯한 ‘나’를 두고서 진짜 나는 물러나면 된다는 것을.

‘나’라는 광대가 사회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을 안전한 관객석에서 지켜볼 뿐이라면, 광대의 우스꽝스러운 행동거지도 희극으로 웃어넘길 수 있을 터였다.

스크린 밖의 진짜 나는 그저 가벼운 경멸을 담은 조소를 띄우고서 그 광대를, 그 오브젝트(object)를 마음 편히 관람하면 되었다.


한동안은 이 방법이 잘 통하는 듯했다.

선생님들은 얌전한 모범생 역할을 하는 ‘나’에게 만족하신 듯했고, 어른들은 ‘내’가 예의 바르다며 좋아했으며, 어떤 아이들은 ‘나’를 믿음직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나는 드디어 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다음 문제는... 최솔, 네가 대답해 볼까?”


어느 날, 수업 시간 도중 선생님께 지목받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운 문제였다. ‘나’는 정답도 알고 있었다.

답만 말하고 다시 자리에 앉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신(scene)이었다.


“...”


그러나 ‘나’는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반 모든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기 때문이었다.

딱히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별 의미 없는 습관적인 주목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시선을, 동시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수많은 시선들을 마주한 순간 완전히 굳어버렸다.

스크린 밖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되려 그들이 스크린 안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그 느낌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마치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수군대기 시작한 아이들의 시선이 분산되고 나서야 ‘나’는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답은 3번입니다.”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시던 선생님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날’ 풀어주셨다.


“좋아, 앉아.”





언젠가 형에게 들었다.

대왕 고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낸다고.

혼자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

내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제대로 된 인간이었다면, 그랬다면...


아니, 패러독스다.

그랬다면 애초에 이렇게 괴로울 일도 없었을 테니.

그랬다면 그런 판결을 받지도 않았을 거다.

나를 세상에 꺼내주고 키워준, 나를 가장 잘 알고 있을 그 사람에게.


“사실 난 널 낳고 싶지 않았는데.”


1심 판결, 유죄.


“난 자유로워지고 싶어!”


2심 판결,  유죄.


“너만, 너만 없었어도...”


3심 판결, 유죄.


[이에 따라,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챙그랑.

부엌 바닥 타일이 차가운 비명을 지르며 최종 판결이 내려졌음을 알렸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줄곧 ‘삶’에만 집중해 왔다.

살려면 사람들과 어울려야 해서 아등바등 애써왔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답은 정 반대였는데.

더 이상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어졌다.


13살의 봄, 최종 판결을 받은 후 나는 살아갈 자격을 얻기 위해 발버둥 치던 걸 그만두었다.


혼자가 되는 건, 혼자 지내는 건 의외로 간단한 일이었다.

형이 더 이상 쓰지 않는 오래된 아이포드와 이어폰을 형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그리고 잘 알아듣지 못하는, 고로 삶에 대한 아무 의미도 전하지 못하는 외국 노래를 틀었다.

음악에 파묻혀 세상과 분리될 때면, 이 세상에서 내 존재가 사라지는 느낌과 그것이 주는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나는 그 평온한 의미의 상실 속에서 내가 없는 스크린 안의 세상을 관망하며 중학교 3년을 보냈다.


그리고 11년 전, 17살의 봄.


"안녕. 난 오늘부터 1년 동안 여러분의 담임을 맡게 된 강혜정이라고 합니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이런 소설이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글을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글은 저의 경험에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지식을 곁들여 끄적인 것입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저와 비슷한 경험이 있거나 주변에 그런 지인이 있으신 분들께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물질적으로는 괜찮았지만, 마음을 의지할 어른 없이, 아이로 지낸 경험이 별로 없이 자랐습니다.

그게 뭐 대수냐 하실 수도 있는데, 의외로 인생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더군요.

  

일단 '나는 충분히 살 자격이 있어'라는 확신이 없습니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계속 스스로를 괴롭히는데요, 우습게도 얼마나 해야 그게 메워지는지 알지 못해요.

"더, 더, 더..? 이것 봐라, 못하네. 역시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증오하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게 되는데, 너무 지칠 땐 그냥 모든 걸 놓고 싶어 집니다.


다른 안 좋은 점은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랑받을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다 필요에 의해 만나고 주고받고 하는 거지'라는 게 제 인간관계에 대한 기본 인식입니다.

그것은 낮은 자존감과 함께 '나 같은 건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라는 불변의 관념을 머릿속에 꽂아 넣습니다.

누군가가 호의를 보이면 의심부터 하고, 다가오면 미리 떠나보낼 준비부터 합니다.


그리고 현재 제가 생각하는 가장 안 좋은 점, 그건 바로 사랑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건 남녀 간의 애정에서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보단 아이가 생겼을 때 특히 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데, 마음 한가운데에 벽이 있습니다. 그 이상 나아가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아이의 아이다움이 전혀 이해가 안 갑니다. 제가 그래본 적이 없으니까요.

전 아이가 셋이 있는데요, 저 때문에 아이들이 저 같은 사람으로 자라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 늘 두렵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늘 가면을 쓰고 모두를 속여 왔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텅 비어버렸습니다. 그야말로 Outis, 아무도 아닌 게 되어 버린 것이죠.


너무 허탈하고 공허해서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진 그 무렵, 제 삶을 돌아보며 막 끄적여댔습니다.

그리고 그 끄적인 것에서 이 이야기가 태어났습니다.


누군가 치열하게 스스로를 어두운 구렁텅이 속에 몰아넣어 왔다면, 꼭 말해 주고 싶어요.

그러지 말아 달라고요. 저처럼은 되지 말아 달라고요.


지금 어딘가 울고 싶은 걸 꾹 참고 웃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꼭 안아주며 말하고 싶어요.

"울어도 된다."고요. 넌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요.


세상에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어린 시절을 아이들에게서 빼앗지 말아 달라고요.

평생을 마음이 자라지 못한 어른이로 살게 하지 말아 달라고요.

지긋지긋한 저 같은 것 좀 그만 만들자고요.


이 소설이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가 되기를, 감히 소망해 봅니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및 트리비아>

- 주인공의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의 배경은 2012년입니다. 당시에는 아직 지금처럼 만 나이를 쓰지 않아서, 작중 고등학교 1학년의 나이는 17세입니다.

- 이번 에피소드에 등장한 텔레비전 대사는 대부분 포켓몬 시리즈에서 가져왔습니다. 주인공이 1996년생이라 어릴 때 볼만한 만화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포켓몬, 너로 정했습니다. 과연 장수 인기 만화답게 명대사도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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