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OO이, OO 이를 입양한 가정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오늘 세 번째 재판에서도 관련 증언들이 나왔는데요, 양부모의 가혹한 학대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었...]
알아.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불행한 아이들이 많다는 거.
지금껏 맞은 것도 훈육이라는 범주에 들만한 것이고, 육체적 가혹 행위는 일절 없었어. 밥이야 뭐, 라면이나 빵, 냉동식품은 늘 있었으니까 딱히 굶은 것도 아니고. 뉴스에 나오는 끔찍한 사건들에 비하면 우리 집은 아무것도 아니야.
‘불행’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상황.
“어딜 나가!”
하지만 ‘행복’과도 거리가 있는 거 같아.
“이거 놔!”
‘이놈의 집구석 나가주겠다’라고 말로만 하더니, 드디어 엄마가 집을 나가려 한다.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상상해 왔던 일이 드디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막상 일이 벌어지고 보니 의외로 침착한 기분이 든다. 아니, 이건 침착함이 아니라 시원함이다.
‘드디어 끝나는구나.’
9년 동안 지겹게 봐왔다. 3살 이전은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아마 평생 봐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싫다면서 우리 핑계를 대며 거기서 벗어날 생각은 없는 엄마. 그런 엄마와 다투고 뒷수습은 우리에게 맡긴 채 집을 나가버리는 아빠.
덩그러니 집에 남은 나와 동생은 그저 엄마의 신세한탄과 술주정이 빨리 끝나기를 비는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끝은 엄마가 곯아떨어지거나 토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제 눈물겨운 걸레질도 끝이다.
“형, 어떡해.”
4살 아래 동생이 내 팔을 붙잡고 울상을 지었다.
‘어떡하긴. 이혼하면 아빠한테 가야지. 엄마의 경제력은 믿을 게 못되니까.’
“으흑, 엄마아...”
부모님의 이혼 후를 계획하고 있는 나와 달리, 아직 순진한 동생은 어쩔 줄 모르고 울먹이고만 있다.
얘는 지겹지도 않나. 하긴, 아직 8살이다. 4년 전이었으면 나도 저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닌걸.
“내 전화기 내놔! 왜 가져가!”
“그만하지 못해!”
“하! 내가 전화기 없다고 못 나갈 줄 알아?”
아빠가 전화기를 빼앗고 방심한 틈을 타 엄마가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나갈 태세를 취했다.
드디어, 드디어 엄마가 집을 나간다.
나는 하나라도 놓칠 세라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보았다.
“엄마! 가지 마아!”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동생이 엄마를 부르며 달려 나갔다. 바짓가랑이를 붙잡힌 엄마도, 엄마 전화기를 들고 서있는 아빠도, 정지 화면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 애들 앞에서 참 잘하는 짓이다.”
조금 뒤 아빠가 누구에게 하는 소린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돌아보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허! 나만 그래, 나만? 이게 다 내 탓이야?!”
“아, 정말... 그만 안 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아빠는 들고 있던 전화기를 힘껏 던졌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현관 벽에 붙어 있는 거울 쪽으로 날아갔다.
“꺄악!”
거울은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졌다. 자잘한 파편이 엄마와 동생이 서있는 쪽으로 튀었다.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거울을 등지고 머리를 감쌌다. 그러나 동생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직 이해를 못 한 동생은 미처 파편을 피하지 못했다.
동생의 얼굴에 가느다란 붉은 선 서너 개가 그어졌다. 동생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오른쪽 눈을 감싸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솔아..!”
뒤늦게 정신이 든 아빠가 동생에게 달려갔다. 아빠는 동생을 안고 눈을 살펴보았고, 엄마는 뒤에서 방방 뛰며 야단을 떨었다.
“솔아, 눈 아파? 어?”
“미쳤어, 미쳤어! 거울을 왜 깨냐고!”
“아 좀, 가만히 있어 봐!”
차마 저 난리 통에 낄 자신이 없었던 나는 그저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아빠는 결심한 듯, 얼이 나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동생을 들쳐 안았다.
“응급실 가자. 당신 차 열쇠랑 내 외투 챙겨.”
“아 정말, 정말, 정마알! 어떡해!”
날 스치고 지나간 엄마는 안방에서 가방과 아빠 외투를 챙겨서 나왔다. 엄마에게서 외투를 받아 든 아빠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성진아, 넌 집에 있어. 혼자 잘 있을 수 있지?”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갈래.”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너까지 챙길 여유 없어. 여기 유리 깨진 데 오지 말고, 얌전히 집 지키고 있어. 아빠 번호 알지?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나도...”
“빨리 가자.”
쾅하고 문이 닫혔다. 아까 그 난리가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집안이 조용해졌다.
이제 잘 시간이니 양치하고 잘 준비를 할까, 아님 거실로 가서 텔레비전을 볼까. 혼자 남겨진 나는 이제 뭘 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흑... 흐흑...”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우는 것 밖에는.
이젠 어린애가 아닌데도.
<5년 후>
드르륵.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엄마는 꽤 당황하신 눈치다. 나는 어두운 병실을 가로질러 동생이 누워 있는 창가 자리로 향했다.
“내가 못 올 데를 왔어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머리와 팔에 둘러진 붕대, 팔에 꽂힌 수액 바늘.
나는 입안 살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애가 이 지경이었는데 난 아무것도 몰랐다. 엄마도 아빠도 내게 알리지 않으셨다.
저번 주말, 웬일로 집에 오지 말라기에 그러겠다 했다. 아무 의심 없이 일주일을 보내고 왔는데 집이 비어 있었다. 어찌 된 거냐 물으니 그제야 아빠가 알려주셨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예요?"
“누구한테 맞은 거 같아. 아마도 학교... 지금 조사 중이야.”
“어디 다쳤는데?”
“장이 파열됐다고...”
“왜 나한테 말 안 한 거야?”
“넌 공부해야지. 수술 잘 됐어. 이제 걱정 없대.”
“하..!”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네. 맞다. 난 공부하겠다는 핑계로 도망쳤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주어진 기회를 죄다 이용해서 하루빨리 그 집에서 나가고 싶어서였다.
-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어쩔 수 없었어. 너마저 무서워져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고. 그런데 내가 집을 나가자마자 이런 일의 연속이라니. 마치 그 집에 널 혼자 내버려 둔 내 탓인 것 같잖아.
“오늘 밤엔 내가 있을 거야. 엄마는 들어가서 좀 쉬세요.”
“뭐? 쓸데없는 소리 마. 네가 그럴 시간이 어딨어?”
“엄마, 나 며칠 쉰다고 못 따라잡고 그런 수준 아니에요.”
“며칠?”
설득의 기술 첫 번째, 처음에 강한 충격을 주고 한껏 완화된 조건으로 협상에 이를 것.
“아니, 오늘 밤만. 그 정도는 괜찮잖아. 어차피 집에 있어도 게임밖에 안 할 텐데.”
두 번째, 내가 원하는 선택지가 가장 긍정적으로 보이게 할 것.
“그래도, 간병이 쉬운 게 아닌데.”
좋았어, 거의 넘어왔다. 이제 마지막 마무리.
“오늘 밤만요. 나도...”
감정에 호소하기.
“나도 가족이잖아요.”
엄마는 잠시 울컥하시더니 내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엄마가 병실을 나가신 후, 나는 병실 안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었다. 그리고 보호자 침대에 앉아 가만히 동생을 바라보았다.
‘넌 왜 이렇게 조용히 자는 거냐. 꼭 죽은 것처럼.’
나는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 제발, 이런 데 나 혼자 내버려 두지 마!
‘... 그렇게 애원했던 주제에.’
<4년 전>
분명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엄마와 밤새 다툰 아빠는 출근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갔고, 엄마는 혼자서 분을 삭이다가 결국 술에 손을 대고 있었다.
여름방학이라 나와 동생은 집에 있었다. 밤에 잠을 설친 탓에 동생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의 상태가 뭔가 이상했다.
“엄마, 솔이가 이상해.”
“뭐어?”
“입술이 보라색이야.”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위험신호. 가슴이 조이면서 숨이 들어갈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재빨리 동생의 코에 내 볼을 갖다 대었다. 그러면서 눈으로는 동생의 가슴이 움직이는지 지켜보았다. 아무 느낌도, 움직임도 없었다.
“숨을... 안 쉬는 거 같아, 엄마!”
엄마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방으로 달려왔다. 엄마는 방문가에 서서 동생을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야.”
“엄마..?”
“내가 죽인 거 아니야.”
“엄마! 어떡해?”
점점 엄습해 오는 절망 속에서 난 깨달았다. 저 사람은 반쯤 취한 데다 정상이 아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해야 한다.
나는 숨을 고르며 최대한 냉정해지려 애썼다. 그리고 책에서 봤던 심폐소생술 내용을 떠올려 보았다.
맨 먼저 의식 확인.
“솔아!”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동생의 뺨을 때려 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숨 안 쉬는 건 확인했고, 기도확보... 그리고 다음은 심박동.’
나는 동생의 목에 떨리는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다행히 아주 약하지만 맥박이 느껴졌다. 그대로 쓰러지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아직은 안도할 단계가 아니었다. 심장은 뛰고 있어도 숨을 쉬지 않는다. 이대로 두면 산소부족으로 뇌사 및 심정지가 올지도 모른다.
‘심폐소생술을 진행하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것.’
동생의 입을 벌려 안에 뭐가 있나 들여다보았다. 입은 비어 있었다. 하지만 목에 뭐가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동생의 코를 손으로 싸쥐고 그의 입에 살살 숨을 불어넣어 보았다. 저항이 느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본격적으로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숨을 크게 두 번 불어넣은 후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엄마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부엌에서 달그락하고 술병이 부딪히는 소리와 비닐봉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쓰레기 정리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엄마! 부탁이니까 제발 119에 전화 좀 해!”
부엌이 조용해지더니, 조금 뒤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 여보세요? 119죠? 저희 아들이... 흑, 저희 아들이 숨을 안 쉬어요. 네, 여기 주소가...”
됐다. 이제 구급차가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나는 인공호흡을 계속했다.
“네? 심폐소생술요..? 저희 아들이 하고 있는 거 같은데...”
“후욱, 흐윽...”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만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눈물을 닦고 눈을 부릅떴다.
‘죽지 마. 살아나야 돼.’
“후욱.”
‘제발, 이런 데 나 혼자 내버려 두지 마!’
“후욱.”
몇 번째 인공호흡이었을까.
“우... 후아!”
동생의 숨이 돌아왔다.
“하, 하하..!”
“쿨럭쿨럭!”
“솔아! 엄마! 솔이가 이제 숨 쉬어!”
“뭐? 정말? 네, 네네. 애가 이제 숨을 쉬어요, 네.”
꿈만 같았다. 스스로가 대견했고, 동생이 살아난 것이 너무 기뻤다.
“솔아, 괜찮아?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 으어?”
처음에는 초점도 없고 발음도 어눌하더니, 동생은 어느 순간 또렷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
“다행이다! 다시 돌아왔어.”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돌아와..?”
동생은 아직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나 분명 바닷속에 있었는데. 고래, 고래였는데.”
그러다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동생이 중얼거렸다.
“아쉽다.”
화가 다 날 지경이었다. 얼마나 가슴 졸이면서 살려놨는데, 아쉽다니.
“뭐? 너 우리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고래가 된 게 그렇게 좋았냐?”
“숨을 쉬러 나오지 않았으면...”
그때 밖에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고, 엄마와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이에요.”
“애가 숨이 돌아왔다고요?”
점점 다가오는 떠들썩한 소음에 동생의 말이 섞여 들어갔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쟤예요!”
“얘, 괜찮니? 이름이 뭐야?”
하지만 나는 또렷이 들었다.
그건 그날 중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
<수년 후>
삐익- 삐익- 삐익-
나는 도망쳤다.
잊고 싶은 기억을 과거에 묻고, 돌아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 속엔 너도 있었다.
삐익- 삐익-
멀리서 너의 괜찮은 모습만 보고 싶었다.
네가 정말 괜찮기를 바랐는데. 알아서 잘 살아주기를, 너만의 행복을 찾기를 바랐는데.
삐익-
결국 모든 건 날 위해서였어.
나는, 난 이기주의자다.
삐------
[코드 블루, 코드 블루. 신경외과병동. 코드 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