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별과 사람과 물고기

by 물구나무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망덕포구에 이르면 섬진강은 흐르던 제 삶을 마감하고 남해의 푸른 바다가 된다. 화개장터를 넘어서면서 걸음은 느릿해지고 비린내를 풍기기 시작하면서부터 강은 얼마 남지 않은 제 시간을 예감한다. 밀물에 막혀 더딘 뒷걸음을 치며 흘러왔던 오백 리 길을 되새김질하기도 하고, 멱살 잡히듯 썰물에 이끌려 바다 쪽으로 끌려가기도 한다. 밀고 당기는 얼마의 시간 동안 강은 제 것인 줄 알고 움켜쥐었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고달팠던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작은 모래 알갱이로 강바닥에 쌓이고 물살에 힘없이 쓸린다. 임종을 준비하는 민물은 서서히 짠물이 되어가며 죽음에 다가가지만, 사람들은 조용한 그 장례를 슬퍼하지 않는다.


57 망덕포구 전어조형물.jpg


포구의 가을은 전어로 시작한다. 가까운 바다에서 기름진 전어가 그물에 걸리기 시작하면 계절은 여름 끝자락이다. 이때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떠들썩한 축제를 벌인다. 찬바람이 일면 전어 무리는 굳이 먼바다로 나아가지 않고 인근 해역을 어슬렁거리다 그물에 포획되어 올라온다. 운명의 순간을 직감한 전어들이 필사적으로 출구를 찾아 몸을 뒤채는데, 이때 바다에는 헤아릴 수 없는 별빛이 부서져 내리고, 노심초사하던 어부의 얼굴에는 웃음이 핀다. 씨알이 적으면 적은 대로 새꼬시 회를 치기도 하고, 어른 손바닥만큼 굵으면 굵은 대로 생소금을 뿌려가며 불에 굽는다. 너무 이르면 고소한 맛이 덜하고 너무 늦으면 뼈가 억세 져서 먹기 사납다. 봄철 산란을 마치고, 여름내 살이 오른 전어는 가을이 딱 제 철이다. 전어를 먹기 좋은 계절이고, 전어가 죽기 좋은 시간이다. ‘제철’이 품고 있는 중의적 의미다. 축제라는 말의 기원이 또한 그렇다. 전어는 잡혀서 어부의 삶을 꾸리고, 죽은 전어가 사람의 배를 불려 왔다. 머리에 깨가 서 말 들었다는 말만큼이나 고소한 그 맛은 신분과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전(錢, 돈)어라는 이름의 유래는 값을 따지지 않고 사 먹었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너무 흔해서 돈이 없던 사람도 먹을 수 있었다는 말도 된다. 많이 잡히면 가격이 싸서, 적게 잡혀 가격이 비싸도 전어는 먹힌다.


요사이 전어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물고기가 되었다. 성질 급한 전어는 바다에서 건져지면서부터 죽어 부패하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뱃전이나 고깃배가 드나들던 포구에서나 활어를 맛볼 수 있었지만, 냉동 기술이 발달하고 교통망이 편리해진 최근에는 하루를 넘기지 않고 도시의 번화가 횟집에서도 어제 잡힌 활어를 먹을 수 있다. 최근에는 양식 산업도 활발해져서 굳이 바다에 나가 그물질을 하지 않고서도 전어를 잡는다. 사람의 입은 무서워서 씨가 마를 때까지 먹는다. 흔히 물고기를 많이 먹는다는 일본이나 노르웨이보다 한국의 해산물 소비량이 더 많다는 뉴스는 새로운 소식도 아니다. 해마다 이 계절이면 서천에서 광양과 보성 그리고 삼천포까지 곳곳에서 전어 축제가 열린다. 강릉에서는 새갈치, 경상도에서는 전애, 전라도에서는 되미, 두애미, 엽삭이라고 이름도 다양하게 불리며 사랑받는다. 전어는.


비단 전어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일찍이 서해 조기가 그러했고, 동해 명태도 그랬다. 사랑받는 물고기는 더 많이 잡히고 더 자주 먹힌다. 흔전 만전하던 조기는 제사 때나 귀한 손님상에나 올리는 존재가 되었고, 노가리까지 구워 술안주를 하던 명태와의 추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 우리 동해에서는 더 이상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


58 전어구이.jpg


전어 또한 물고기다. 생선이나 어류라는 말보다 친근감 있게 들리는 ‘물고기’라는 호칭에 못 박힌 전어의 운명은 가혹하다. 닭이나 소, 돼지와 달리 물에 사는 어류는 살아 있을 때부터 고기라고 불린다. 포식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피식자의 죄를 따져 물을 수 없겠으나 그들의 희생이 아름답다고 말하기 또한 어렵다. 그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운명 지어졌으니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미래의 일을 알 수는 없겠으나 아직 우리 바다에 전어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간혹 하늘의 별들은 종종 떨어지는데, 땅에 떨어지면 꽃으로 피고 바다에 떨어지면 물고기가 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별처럼 꽃이 빛나고 물고기의 몸이 별처럼 반짝거리는 걸 보면 사실 같기도 하다. 사람이 죽어서 별이 되었다는 말도 그렇다.


망덕포구에서, 강은 이제 바다가 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품고 산맥만큼 커다란 너울에 흔들리며 모든 걸 내려놓고서 하늘로 오른다. 더러는 구름이 되어 바람이 이끄는 대로 떠돌다가 때가 되면 비가 되어 내릴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강이 되어 흐를 것이다. 강물이 그러하듯 별과 사람과 물고기는 윤회한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빌어가며 다시 태어나고 소멸하면서. 그러니 죽음도 기쁨이 될 수 있고 다시 태어남이 비극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흰 구름 머무는 땅, 백운